2년이 훨씬 넘은 것 같다. 내가 최진* 학사를 못 만난 게 말이다.
그릉 안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내가 제대했었던 26사단 불무리 성당에 미사에 참예하러 가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었던 것이다. 나는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어정쩡한 나이의 할아버지로서 거만하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던질 정도다.
퍽 조심스럽게 다가선다는 건 마음뿐이었다. 오히려 겸손을 그에게서 배워야만 했다. 그가 제대하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영등포 역 앞에서 만나 50년 전통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돈은 그가 냈다. 그의 부모가 기어이 그렇게 하라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필리핀에 갔다. 몇 번이나 카톡이 오고가는 등 연락이 되었다. 현지에서 봄사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사진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그와의 약속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정말 훌륭한 사제가 되셔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건강을 약속하십시오."
그도 노력하고 나 또한 그걸 지키려고 애쓴다. 그가 사제복을 입는 날쯤 나도 이승을 떠날지 모른다. 내 나이 올해 일흔일곱이다. 상처 투성이의 영육을 급하게 봉합한 수준에서 다시 일어섰었는데, 다행히 잘 견뎌 내고 있다.
오늘 학사의 강론이 있었다. 나는 그가 존경스러웠다. 신학생이라 해서 주님의 아들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도 아니란다. 물론 사랑 실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그는 최진* 학사처럼 겸손했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훌륭한 사제의 조건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정곡을 찌르는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신자들에게 들려 주었다. 난 신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10점(100점 만점)이 될까말까 한데, 그를 통해 희망을 얻었다. 내가 죽거든 '선종'이라 하지 말고 그냥 별세 정도로 여겨달라고 소원했는데, 오늘 이름도 모르는 그 학사를 통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본당 학사 둘에게도 박수를 보냄은 물론이다.
교우가 숨을 거두면 善終이라 한다. 착하게 살다가 하느님 품에 갔다는 뜻이다. 신부도 주교도 마찬가지. 천주교 신자 중에 딱 예외인 분이 있으니 교황 성하다. 바티칸의 국가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선종이 아니라. '逝去'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했다. 나 같은 게 선종쯤이면 감지덕지이고말고. 그런데 근래 죽은 어느 인사를 서거라 했으니 천주교 신자로서 생각했다. 過猶不及!
오늘 두 학사에게 한갓 장삼이사가 칭찬을 하다니 그것도 오히려 교만이다. 아니함만 못 한 것 같은 의아심도 든다. 좀 전에 최진* 학사에게서 온 카카오톡 내용을 옮긴다.
용기를 내어 모든 학사들에게 은총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더운 여름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청년대회 봉사 일정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연락을 주셨는데, 깜빡하고 늦게 지금 생각나서 안부인사 드립니다.
내 대답도 있었다. 아주 간단히 적고 그 끝에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할아버지 올림이라 적었다.
* 본문/ 압존법에 의해 존댓말을 생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