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 광릉 오거리는 신작로에 차가 다니질 않습니다. 추석이라고 물류도
배달도 모두 휴무나 본데 저는 신한에 가서 밥만 먹고 가게 문 열려고요.
7시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신발 끈을 질근 묶었습니다. 도로가에 돌아다니는
인간이 저 하나 뿐인 줄 알았는데 버스 정유 장에는 간헐적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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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둘쯤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광릉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넘어 뒷편으로 다시 샛길이 있을까봐 정문을 통과했는데 운동장에도,
뒤뜰에도, 수위실도, 숙직실도, 개미 세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습니다.
확실히 초등학교보다 중학교 건물이 무겁고 전체적으로 꽉 찬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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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추석빔을 입은 것인지 오두 오렌지색입니다.
땅도 싼데 운동장도 넓게 하고 화단도 좀 만들지 어째서 도심 속 단과 대학원을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축구부 유니폼과 축구화가 벤치 앞에 널 부러져
있고 벤치 위에는 야구 클럽이 내 동댕이 쳐져있습니다. 이놈들이 정리정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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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고 추석 새려 다 집에 들 간 모양입니다. 나도 얼른 집에 가야겠습니다.
간판가게도 휴무, 직거래 장터 정육점도 휴무, 경복 대 앞 ‘쉐프의 정원’도
금일 휴업입니다. 학교 앞 정거장에 공사가 끝나는지 벌써 분식집이 오픈 했고
골목길에 아스팔트가 말끔하게 깔렸습니다. 개강하면 학생들로 북적거릴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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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네 공장이 있는 지점만큼 오는데 울밑에선 봉숭아가 꽃이 만개되어 있었고
오른 편에 귀성한 식구들이 마당에 나와 감나무를 둘러보는 것이 벌써 차례를
지내고 성묘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골 마을에도 감나무가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 땡감이어서 큰 관심은 없었지만 감꽃을 주워 실에 매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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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걸고 다니거나 꼬마 땡감을 소금물을 넣고 장독 안에 담아 놓으면
떫은맛이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과일 중에 감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어릴 때 땡감으로 입맛이 길들여져서 그럴 것입니다. 저는 단감, 홍시, 곶감까지
다 좋아한답니다. 올해는 아직 곶감 밖에 못 먹어 봤지만 반 건조 된 곶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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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맞은 홍시는 물리지도 않고 기똥차게 맛있습니다. 아, 먹고 싶다 홍시.
집에 들어 와보니 썰렁합니다. 어머니, 막내, 사랑이, 아버지 네 명이서 아침 먹기
전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칼국수를 좋아하냐고 물어서 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팥
수제비라고 하셔서 무르고 게장에다 물을 말아 먹었습니다. 소싯적에는 팥 칼국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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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었습니다. 큰 양푼 한가득 반죽을 만들고 일일이 방망이로 밀어 자른 다음
마른 밀가루로 엉키지 않도록 뿌려놓고서 끓은 팥물에 면발을 넣는 팥 수제비를
몇날 며칠 입에 물리도록 먹었습니다. 요새는 송편도 압축 팩에 담아서 팔던데 과거에는
추석 전에 송편 빚는 것이 일이었답니다. 송편도 칼국수도 즉석에서 해먹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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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맞이 있지요. 오후에 사위들오면 송편도 먹고 팥 칼국수도 이빠이 한그릇
먹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나의 여자들은 추석 새러 외가에 갔겠지요.
일주일이 멀다하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처가를 안 간지 8년이 되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장덕리도 남양주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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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 밥그릇을 넣어 두던 시절,
울 어머니가 남은 생활비로
밀가루 한 포대를 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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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으깨어 팥물 먼저 만들어 놓고
밀가루 반죽해서 디딤돌로 문지르면
큰 눈덩이 익반죽이 연신 동그라미를 그리며
상 바닥에 뒤덮입니다.
눈 깜빡할 사이 둘둘 잘려나간 면발이 눈꽃을 털며
펄 펄 끓는 솥단지 속으로 들어갈 때
벌써 모인 우리 육 남매는
그만 꿀꺽'하고 침을 삼키었습니다.
2007.9.24.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