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21]
은행에 같이 근무했던 S라는 상고출신 직원에게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일종의 유통업인데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놀고 있는 차에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만나서 설명을 들어보니 주세법에 위반되는 불법 유통 일이었다. 가령 백화점 할인카드 10만 원 권을 8만5천원이나 9만원에 구입하여 8만5천원어치나 9만원어치의 물건을 할인점이나 마트에서 산후에, 차액 만 오천 원이나 만원은 백화점에 가서, 마트에서 물건을 산 영수증을 제출하면 현찰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입한 물건은 다시 도매상이나 일반 슈퍼에 같은 값으로 되파는 방식의 일종의 불법 유통업이었다. 그런데 주세법에 의하면 개인이 영업용이 아닌 가정용으로 살 수 있는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 많이는 구입할 수 없었다.
S가 하루에 유통하는 소주나 맥주의 양이 백만 원어치나 되기 때문에 정식 사업자 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이 이렇게 많은 양을 구입하는 것은 국세청의 단속대상이 된다. 따라서 국세청 직원에게 현장에서 적발이 되면 물건을 압류당하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 나는 꺼림직 했지만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다, 당시 놀고 있는 답답한 처지라서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루에 두 차례 영등포나 고양시 화정에 있는 XX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입했다. 물건을 구입하는데 있어 주세법의 저촉으로 마트직원과 약간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적발이 되면 개인뿐만 아니라 물건을 판 마트 측에도 벌금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산 물건을 C의 봉고 뒤 칸에 잔뜩 싣고 가서 거래하던 슈퍼에 팔았다. 슈퍼가 이러한 물건을 사는 이유는 첫째 할인점 물건이기 때문에 값이 싸고, 둘째 불법으로 유통되는 무자료거래이기 때문에 부가세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소주는 인기 있는 반면에 캔 맥주와 음료수는 선호도가 떨어졌다. 마트에서도 소주는 통제했다. 소주가 인기 있는 덕분에 우리와 같은 불법유통업자가 아침부터 와서 소주를 대량으로 실어 날랐다. 따라서 마트는 그날 소주 재고가 바닥나는 경우도 있었다. 슈퍼에도 소주는 매출이 좋아 대 환영이었지만, 캔 맥주는 매출부진으로 재고가 넘쳐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때는 맥주나 음료수를 백프로 받아주는 단골 도매상에 갔었다. 그러나 주인은 냉정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어 가격을 낮게 후려쳐 구입했다. 그러면 우리는 구입 한 가격보다 낮게 팔아야 하는 손해도 감수해야 했다. 이 경우도 인기 있는 소주를 몇 박스 끼워 팔면 제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유통업은 소주나 캔 맥주 음료수 박스를 차에 싣고 내려야 하는 노가다 업무였다. 그래서 오전 한차례 고된 작업을 마치면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점심은 영등포 신세계 건너편에 있는 단골 유명 H중국집에서 짬뽕이나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었다. 맛이 꿀 맛 같았다. 항상 오전 작업이 끝날 무렵에는 점심이 기다려졌다. 물건을 사고 난 뒤에는 백화점 경리파트에서 카드할인금액을 되돌려 받아야 하는데, 한사람이 한꺼번에 일정 금액이상을 수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할인금액을 한번 수령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재차 수령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담당직원이 사람을 자세하게 기억 못하는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방법도 여의치 못해 거절을 당하면 다른 곳에 있는 같은 회사 마트에 가서 할인금액을 수령하였다.
하루 100만원 어치 물건을 팔면 하루 수입이 대략 10만 원쯤 되는데 봉고차 가스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반반씩 나누어 가졌다. 우리는 하루의 작업이 끝나면, 마트 계산대 직원, 카드 할인액 환불담당 여직원과의 승강이, 물건운반의 노가다작업 등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두 번 정도 S집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국세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환불도 까다로워지는 등 일이 점점 힘들어 졌다. 또한 소문을 듣고 뛰어든 동업자가 많아져서 상호간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마트가 문을 열자마자 동업자가 오기 전에 신속히 소주를 사가지고 가야만 했다.
한번은 S가 전에 같이 동업하던 20대의 체구가 큰 청년이 우리 일을 방해하려고 했다. S에 의하면 그는 유도선수 출신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 때문에 자신의 일이 방해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소주가 한정되어 있는데 우리가 먼저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그가 가져갈 것이 부족해진다는 점과, 동업자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경리파트 직원의 태도가 점점 까다로워지기 시작해 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를 힘으로 제압하여 자기 구역에 못 오게 하려 하였다. 그는 덩치가 적은 S에 대해서는 전에 같이 일했던 친분이 있는데다가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타깃으로 삼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영등포에 있는 XX마트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자리에 S는 없었고, 그와 동업자가 있었다. 그는 마트 내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물건을 나르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나에게 접근해 왔다. 그는 나에게 앞으로 이곳에 나타나지 말고 이 일에 손을 떼라고 명령하듯이 요구했다. 나는 나이가 어린 그에게 불손한 행동을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자 그는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나의 뒤 목덜미를 잡아당기면서 유도로 나를 제압하려고 하였다. 그는 팔팔한 20대이고 나는 50대의 나이였다. 그러나 나도 젊었을 때는 공부는 신통찮았지만, 운동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대학시절 때는 신촌 바닥에서 국가 대표 급 운동선수들과 한때 어울려 놀았던, 힘에는 관록(貫祿)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즉시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엘리베이터 구석에 그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서로 잡고 겨뤄보니 힘은 내가 우위에 있는 느낌이 왔다. 나는 순간 그를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릴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빌미를 잡힐까? 저어되어 자제를 했다.
이 모든 일은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순식간에 벌어졌었다. 나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를 잡아 밖으로 세차게 끌어당기면서 마트 종업원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의 기세가 꺾였다. 힘으로도 그는 나에게 밀린데다, 먼저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비굴한 태도를 취하며 용서를 빌었다. 나는 아들 같은 나이의 젊은이와 소위 “나와 바리(관할구역)”를 두고 신체적으로 다퉜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곤혹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하는 일이 불법적인 일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유통업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에 차를 S의 아파트에 주차해 놓고 우리는 단골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음악애호가인 가게주인이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전축이 있었고, LP레코드판에서는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노래가 처량하게 흘러나왔다. S는 나의 기분을 풀어주면서 계속 일을 하기를 권유했지만, 나의 결심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노래제목 “철새는 날아가고”처럼 이로서 우리의 쉬운 돈벌이는 철새처럼 날아가고 말았다. 우리는 밤늦도록 맥주를 통음했다. 나는 다음날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
첫댓글 참 돈 벌기 힘들어요..ㅠㅠ
서울시의 SKY대 출신이시고
금융기관에 근무하시고..
화이트칼라이셨던
다저스님이 험난한 일도 하시며 굴욕감도 당하시고..
모진 일을 다 하셨다니
지나간 옛날 얘기이지만
마음이 안좋으네요..
이제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게
노후에 노래하시며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불법유통업 일은 제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네요ㅡ 잠간 동료의 유혹에 빠져 해 봤지만 금방 그만두고 말았습니다ㅡ 이 일 외에는 그릇된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ㅡ요즘은 파도가 지나가고 난 후 고요처럼 평화롭고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ㅡ
엘리트이신 다저스님이 삶의 질곡을 수 차례 경험하셨어도,
올곧은 성품과 현명하심으로 다 잘 이겨내심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늘 건강하실 일만 남았네요.
늘 건강 건필 건승하시어요.
올리시는 글마다 정독하며 응원합니다. ^^
항아리님 언제나 제게 힘을 불어 넣어주시는 글 ㅡ 너무 감사하고 과분합니다 ㅡ
저도 다저스님의
군대 이야기에 이어
은행 퇴직후
삶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마다의 굴곡진 삶들이
있겠지만
책임감과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하는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들에 숙연한
마음과 함께 잘 이겨오신
다저스선배님께
박수드립니다~~👏👏👏
저도 다른 인생 사는 이들처럼 파란이 만장한 인생곡절을 겪었는 것 같습니다ㅡ보라님의 항상 타인을 배려하면서 심사숙고하고 차분하고 따뜻한 마음씨에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