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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창인(소설가), 사진:류기남(CREATION AD., INC 대표이사, CREATION 발행인)
지난 달 푸궉섬(Hon Phu Quoc)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리조트의 한 스탭이 푸궉섬에 대한 감상을 물어왔다. 필자의 대꾸가 기대에 못 미친 탓일까. 리조트 스탭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세 차례나 방문한 푸궉섬의 아름다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 푸궉은 분명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답다는 수사에는 순순히 동의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풍광에 한정시켜 판단한다면, 푸궉섬은 꼰다오군도의 정취를 뛰어넘지 못한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고 판단이다.
남부 베트남의 두 섬, 꼰다오와 푸궉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고국의 제주도(濟州島)와 울릉도(鬱陵島)에 견줄 만하다고나 할까? 푸궉이 제주도라면, 꼰다오는 울릉도인 셈이다. 푸궉은 섬이면서도 기골 찬 남정네의 모습이다. 반면 꼰다오는 아기자기하기도 섬세한 새색시에 가깝다. 푸궉은 언제나 활기에 넘쳐 있다. 그러나 꼰다오는 고요하다. 해변을 예로 들어도, 둘은 선명하게 구분된다. 푸궉은 장대하고도 시원시원하다. 꼰다오의 해변은 수줍음에 고개를 숙인 새색시처럼 섬 여기저기에 자그마한 크기로 숨어 있다.
푸궉은 섬이지만 고립의 이미지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의 빛깔과 향기로 넘쳐난다. 꼰다오에서 이러한 기대는 곤란하다. 꼰다오는 그야말로 순수의 땅이요, 자연이 지배하는 곳이며,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꼰다오로 향하는 나그네라면, 먼저 욕망의 부피를 절반으로 줄이는 편이 옳다. 한 잔의 술로 여독을 풀려는 의도 따위는 처음부터 버리길 바란다. 세상의 흥청거림이 용납되는 곳이 아니다.
꼰다오는 그렇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볼 수 있을지언정 사람의 향기를 쫓을 수는 없다. 꼰다오에서는 애오라지 자연만을 기대하라. 자연 속에 나를 투영하여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대양 위로 불쑥 솟아오른 육지도, 그 육지를 떠받히고 있는 바다도, 갖가지 산호와 물고기를 품고 있는 바다의 속살도 한결같이 아름답다. 꼰다오는 신이 아름다움을 허락한 땅이다. 아름다움 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베트남의 바다를 볼 때마다 불쑥 서운함이 일곤 한다. 남북의 기다란 해안선에 펼쳐지는 바다의 빛깔이 기대 이하일 적이 많다. 탁한 빛이거나, 암 청색이거나---. 그러나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빛깔이 이곳, 꼰다오에 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 밝은 비취색, 그 자체이다. 내밀한 속살을 훤히 내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마치 대륙에서 아득히 벗어난 외딴섬에 도달한 느낌이다.
푸궉의 쭝비치((Bai Truong), 다낭의 차이나비치(China Beach, Bai Non Nuoc))와 같은 장대한 해변은 꼰다오에 없다. 그러나 기암절벽을 양 옆으로 거느린 자그맣고도 아름다운 해변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늑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인 양 편안한 해변이다.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의 원시 해변이다. 해변에 우뚝 서 있으면 홀로 세상을 다 차지한 듯하다.
한 순간 발가벗고 해변을 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뭐랄 사람이 없다. 스스로의 이성과 판단을 잠시 무시한다면 얼마든지---. 한때 스트리킹(Streaking)이 무슨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이 있었다. 정서적 장애, 정신적 이상 증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꼰다오의 해변을 잠시라도 거닐다 보면, 스트리킹의 이면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속살을 보이고 싶은 충동이 아니라, 자연과 합일을 이루고 싶다는 영적 갈망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지닌 곳, 꼰다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덜 훼손된 곳, 꼰다오. 그렇다. 꼰다오는 서둘러 다녀올 곳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곳의 변화는 시간 문제이다. 세상에 알려질수록 자연의 왜곡도 심화될 터이다. 순수는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이내 인공이 득세할 것이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꼰다오에 엄청난 규모의 위락시설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꼰다오가 속한 바리아성(Ba Ria)에서 베트남 최초의 6성급 리조트 건설 계획을 승인하였단다. ‘CREATION’을 접하는 독자들이여, 제발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꼰다오는 붕따우(Vung Tau)에서 18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16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꼰손(Con Son)이 제일 크다. 대략 4천명의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공항이 있는 꼬옹(Co Ong ), 꼰다오의 중심이자 나그네를 위한 시설이 마련된 타운(Thi Tran), 벤담항구(Cang Ben Dam)로 나눠진다. 벤담은 그리 규모가 큰 항구는 아니다. 그러나 해상 실크로드의 교역지이었기에 역사적 의미는 사뭇 크다.
공항에서 타운까지의 길이 특히 절경이다. 해안 절벽에 기댄 채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만나면 내처 달리지 않길 권한다. 잠시 멈춰 길에서 바다를 굽어보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 파도가 만들어놓은 기암, 수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고깃배의 어울림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타운에서 벤담까지 길도 주목할 만하다.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언덕길이 한적하기 그지없어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다.
꼰손의 중앙에는 해발 5백미터의 산이 밀림으로 이뤄져 있다. 이 밀림을 중심으로 꼰다오의 8십 퍼센트가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안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숱한 동식물들이 산재해 있다. 뭍과 일찌감치 분리된 탓이리라. 144종의 희귀한 동식물이 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함부로 열림우림 속으로 뛰어드는 건 곤란하다. 그만큼 밀림이 깊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3월부터 11월이 적기이다. 등반을 하다 보면 아프리카에만 서식한다는 macaque 원숭이, 검은색 다람쥐 및 작은 동물 등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꼰다오의 바다에는 세계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두 종의 거북이가 있다. 녹색거북이, 점박이거북이로, 1995년부터 세계자연기금(WWF)의 지원으로 체계적인 감시와 장기적인 프로그램에 따른 보호를 하고 있다. 거북이의 산란기는 3월에서 9월이다. 이때가 되면 특별 관리 구역이 되어 거북이의 알을 보호한다. 밤에 모래사장에서 산란하는 거북이를 부화장으로 옮긴다. 부화되어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어린 거북이를 바다로 돌려보낸다.
거듭 말하지만, 꼰다오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섬 밖에서 섬 안쪽을 들여다봐야 한다. 섬에서 섬을 보려는 태도에는 한계가 있다. 산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듯이.
어선 한 척을 대절하여 섬 일주를 해 봄직하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 한나절이면 일주가 가능하다. 그러나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으므로 하루를 꼬박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허리를 굽혀 수면을 바라보면 풍덩 빠져들고 싶을 만큼 투명하다. 각양각색의 산호(珊瑚)와 산호 사이를 유영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 꼰다오는 베트남에서도 첫손꼽을 수 있는 훌륭한 다이빙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산호의 모양새도 다양하고 빛깔도 곱아 마치 고국의 단풍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16개의 작고 큰 섬으로 이뤄진 꼰다오 군도를 음미하듯 감상하다 보면, 뜻밖의 행운과도 만날 수 있다. 이태 전 방문에서 필자에게 찾아왔던 행운처럼 말이다.
거북이와 함께 꼰다오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진귀한 동물이 있다. 듀공(Dugong, sew cow)이다. 듀공은 해우(海牛)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새끼를 가슴에 안고 젖을 먹여 인어라고도 불렸던 듀공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듀공은 대략 2미터의 몸길이에, 몸무게는 4백킬로그램. 하루에 먹어치우는 해초만도 25킬로그램에 달한다. 듀공이 수생 식물을 주식으로 삼기에 난바다가 아닌 뭍에 가까이 접근해 있다. 그만큼 사람의 남획에 노출된 셈이다. 현재 개체 수마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고 있다. 이런 희귀 동물을, 섬 일주를 통해 만날지도 모른다. 필리핀(Philippine)에서는 듀공을 보면 큰 행운을 만나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나그네로서야 듀공을 목격하는 그 자체가 이미 대단한 행운일 터이다.
처음 꼰다오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영화의 대사 하나를 떠올렸다.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라는 영화다. 영화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고, 남자가 대꾸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였죠?”
“지금.”
“가장 불행했던 시간은?”
“그것도 지금.”
역설적이면서도 엉뚱하게 들리는 대사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을 한몫에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꼰다오가 바로 그렇다. 꼰다오가 지닌 이중성이기도 하다. 가장 참혹하고도 고단했던 역사의 현장이, 이 아름다운 꼰다오의 자연 속에 숨어 있다. 신이 빚은 선함과 아름다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악과 추함이 공존하는 셈이다.
꼰다오는 베트남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을 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체포되어 꼰다오 형무소에서 유형생활을 했다. 열악한 시설의 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참혹한 고문 속에서 베트남의 광명을 그리워하며 죽어가야 했다. 딘비엔푸(Dien Bien Phu)전투로 독립을 획득한 이후에도 꼰다오의 피의 역사는 그치지 않았다. 남베트남 정부는 이곳에 반체제 인사를 가두고 고문하는 장소로 계속 이용하였다.
꼰다오는 스스로를 위한 성지이다. 신이 지상에 허락한 아름다움이 그곳에, 인공을 외면한 채 자연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꼰다오는 인간을 위한 성지이기도 하다. 베트남인들에게 꼰다오는 성스러운 땅이다. 독립을 위해 산화해 간 혁명가를 향한 추모의 땅이다. 실제로, 꼰다오를 방문하는 베트남인들은 자연보다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대사를 떠올려본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한 면만으로는 온전한 동전을 이룰 수 없듯, 삶도 그러하다. 애로라지 행복만을 소망하는 것도 욕심이다. 고난이 때로 유익이다. 고통이 인생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깊게 한다. 꼰다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새삼 기억하게 한다.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암시한다. 인생의 또 다른 면에게도 눈길을 주라고---.
-꼰다오에서 가 볼만한 해변
바이 녓(Bai Nhat)
섬의 서편에 위치해 있다. 바이 녓(Bai Nhat)은 썰물 때에만 모래사장을 드러내는 매우 아름다운 해변이다. 모래입자가 부드럽고 완만한 수심을 갖고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벤 담(Ben Dam)
꼰 손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외지에서 온 대형어선과, 꼰다오의 대부분 어선이 정박해 있는 어항이다. 어항임에도 물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부두에서 내려다보면 수 백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어항의 맞은편에는 섬에서 유일한 사우나, 맛사지, 가라오케가 있는 Seaman’s Club이 있다. 반드시 어부들의 초대가 있어야만 이곳에 출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 2km 정도를 더 가면 마지막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온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모습이 장관이다.
바이 덧 족(Bai Dat Doc)
코끼리를 닮은 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해변이다. 해초가 자라는 해저층이 고루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듀공의 서식처로 알려져 있으며, 운이 따른다면 실제로 듀공(Dugong)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이깐 섬(Hon Bay Canh)
꼰 손의 동쪽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맑고 깨끗한 해변과 정글, 산호초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매력적인 섬이다. 꼰다오는 산호의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산호의 층도 잘 발달되어 있고, 색도 대단히 다양하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아 보존도 완벽에 가깝다.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다 보면 바다 거북이의 유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바이 담 짜우(Bai Dam Trau)
꼰 다오의 여러 해변 중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섬의 북동쪽, 꼬 옹 공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해변의 길이는 대략 1.5킬로미터에 달한다. 산자락이 흘러내려 해변을 양분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양분된 작은 해변을 바이 뇨(Bai Nho)로 부르기도 한다. 바이 뇨는 흘러내린 산 자락과 수중 암초로 인해 대단히 아름답다. 낚시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다.
-꼰 다오의 역사와 비극을 볼 수 있는 장소
혁명 박물관
월요일~토요일(7am~11pm, 1:30pm~5pm)
베트남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반식민지 저항운동 관련 사진과 기록이 있다. 또한 꼰다오 섬에서의 베트남전 당시의 남 베트남의 공산주의자 및 정치범들에 대한 가혹행위에 관련한 사진, 박제된 동물들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항 즈엉 묘지(Hang Duong)
꼰 다오에는 2곳의 프랑스 식민치하와 베트남전 희생자 묘역이 있다. 이 두 곳 중에서 가 볼만한 묘역이 항 즈엉 묘지이다. 프랑스 식민치하와 베트남전으로 20,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꼰다오 곳곳에 있는 형무소와 포로 수용소에서 숨져갔다. 항 즈엉에는 1994기의 희생자들의 묘지가 있다. 이중에서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는 700 기뿐이다. 묘역의 우측 입구에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기념비가 서있다.
이곳에는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 여성 영웅 보 티 싸우(Vo Thi Sau 1933~52)의 묘역이 있다. 그녀는 꼰 다오에서 프랑스 정부에 의해 총살로 처형된 첫 여성으로, 혁명 박물관에는 당시의 장면을 그린 그림과 그녀의 사진이 있다.
푸 하이 형무소(Tu Lao Phu Hai)
이 섬에 있는 11개의 형무소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큰 곳이다. 1862년에 건설된 이 형무소에는 여러 개의 대형 옥사가 있다. 그 중의 한 옥사에는 150여 개의 마네킹으로 수용 당시의 충격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별도의 독방들과 교회, 간수들을 위한 바와 식당, 성당 등의 시설이 있다.
호랑이 우리(Lao Ho, Chuong Cop)
1940대에 프랑스인들이 만든 것으로, 1957년부터 1961년까지 2,000여명의 정치범들이 항시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천장과 지붕 사이에는 쇠로 만든 창살이 있어, 창살을 통하여 간수들이 죄수를 감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호랑이 우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호랑이 우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는 호랑이 우리가 120여 개, 지붕이 없는 방 60여 개가 있다.
푸 빈 캠프(Can Cu Phu Binh)
일반인들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형무소로, 1971년에 미국이 지은 포로 수용소로 제 7 캠프(Can Cu 7)로 불렸다. 총 384개의 감방이 있으며, 이곳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포로들에 대한 고문이 이루어진 것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1973년에 폐쇄되었다. 1973년 파리조약 이후에 푸 빈 캠프로 명칭을 변경했다.
-꼰 다오에서의 레저
낚시
꼰 다오 바닷가 곳곳에는 갯바위가 많이 발달되어 있어 낚시 할 장소들이 많다. 각종 돔 종류의 어류와 열대어, 작은 상어종류를 낚시로 잡을 수 있다.
자전거 하이킹
꼰다오에는 자전거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적당한 코스가 제법 많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코스를 권하고 싶다. 첫 번째 코스는 해변 뒤쪽에 있는 마을로, 경사가 없고 꼰 다오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상과 농어촌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두 번째 코스는 톤 득 탕(Ton Duc Thang) 거리에서 시작해 바이 녓(Bai Nhat)을 거쳐, 어항이 있는 벤 담(Ben Dam)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16Km의 멋진 코스이지만, 어린 아이들이 참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어항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2km 정도를 더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닷가로 걸어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난다. 이곳은 꼰 다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다.
레인보우 다이버 (Rainbow Diver Vietnam: snorkelling+scuba diving)
베트남 최고의 스킨 스쿠버 다이빙 네트워크를 구축한 레인보우 다이버(5 스타, PADI)가 스쿠바 다이빙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꼰다오 섬의 다이빙 코스는 환상적이다. 천혜의 다이빙과 스노클링 포인트를 가진 꼰다오 군도의 곳곳을 안전하고 흥미롭게 안내하여 준다. 꼰 다오의 바다속에는 1,300여종의 바다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등반
자그마한 섬과는 어울리지 않게 꼰 손(Con Son)에는 훌륭한 산악등반 코스가, 바이 깐(Hon Bay Canh)에는 아름다운 산책 코스가 있다.
꼰 다오를 그리워하며
글:조 창 인(소설가)
베트남은 필자가 가장 즐겨 찾는 나라다. 벗들은 묻곤 한다. 왜 그토록 베트남을 좋아하는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꼽자면 허다한 이유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 베트남인들의 천진한 웃음, 소수민족의 다양한 생활상, 베트남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조국의 옛 모습---. 그러나 어느 하나도 정답이 아닌 듯하다.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이라던가. 이태백의 시처럼 그저 웃으며 대답치 않으니 마음 홀로 한가로울 뿐이다.
꼰 다오에 가리라 마음먹은 건, 본지인 ‘CREATION’에 소개된 연유였다. 몇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설렜다. 랩탑 컴퓨터와 칫솔만 달랑 챙겨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꼰 다오에 3주를 머물렀다. 그 동안 신작 소설 집필에 매달렸고, 매일 꼰 다오의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렸으며, 틈틈이 꼰 다오의 자연을 둘러보았다.
필자는 ‘가시고기’ 이후의 모든 작품들을 베트남에서 마무리했다. 작업 막바지에 이르면 한 통의 전화조차 방해였고 부담이었다. 각종 매체의 기자와 출판 관계자, 심지어 벗들을 피해 한국의 집필실을 떠나 홀연 베트남 행 비행기에 오르곤 했다. 소설‘ 등대지기’는 판티엣(Phan Thiet)의 팔미라 리조트(Palmira resort)에서, 소설 ‘길’은 투이펑(Tuy Phong) 인근의 베트남 스쿠버리조트(Vietnam scuba resort)에서, 수필집 ‘사랑으로 나를 버리고’는 푸궉 섬(Dao Phu Quoc)의 사이공푸궉리조트(Saigon Phu Quoc resort)에서 끝을 냈다. 베트남은 최후의 도피처였고, 최고의 집필실인 셈이었다.
외딴섬에서의 3주.
시간은 물리적 잣대일 뿐이다. 마음의 흐름까지는 잴 수 없다. 물리적으론 결코 짧지 않은 3주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웠고, 시간은 병 속에 담아둔 듯 고요했다. 어찌하여 그리 평화로웠고 고요했을까. 그랬다. 꼰 다오는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이자, 베트남에서 가장 눈부신 곳이었다.
꼰 다오에는 16개의 크고 작은 섬이 흩어져 있다. 그 중 꼰 손(Dao Con Son)이 가장 크며, 섬 주민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한다. 상주인구는 대략 4천명. 꼰 다오까지는 호치민(Hochiminh)에서 비행기로 40분, 붕따우(Vuong Tau)에서 30분 가량 소요된다. 붕따우에서 여객선을 이용할 경우는 15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꼰 손(Dao Con Son)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항이 있는 꼬 옹(Co Ong ), 꼰 다오의 중심지인 타운(Thi Tran Con Dao), 벤담 항구(Cang Ben Dam). 여행객을 위한 숙박시설은 대부분 다운타운에 마련되어 있다.
여행은 머물고 있는 이곳에서 떠나온 저곳을 생각하는 것이다. 막상 떠나왔지만 우리네 일상과 고민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더 많이, 더 깊이 두고 온 곳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꼰 다오에서는 떠나온 저곳은 아예 잊어도 좋다. 아니 절로 잊고 만다. 꼰 다오는 나그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고, 나그네는 그 품에 안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꼰 다오는 아름답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섬 전체가 한 몫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바다는 코발트에서 암청색으로 빛나고, 해저에는 형형색색의 산호들이 산재해 있다. 꼰 손(Dao Con Son)을 둘러싼 섬과 섬의 배치가 절묘하다. 또 산은 어떠한가. 바다에서 곧장 융기한 산은 높이에 비해 자못 웅장한 모습이다. 중턱까지 발을 내딛기 힘들 만큼 빽빽한 열대우림이며, 정상에는 도봉산 인수봉처럼 수려한 직벽을 이루고 있다.
꼰 다오의 자연 중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해변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에서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해변까지 다양하다. 산호해변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모래의 입자가 상당히 곱다. 완만한 경사도의 수심과 따뜻한 수온은 해수욕을 위한 천혜의 조건이다.
꼰 다오의 여러 해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바이 담 짜우(Bai Dam Trau) 이다. 섬의 북동쪽, 꼬 옹 공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에서 해변까지는 2킬로미터의 비포장이다. 오토바이로 접근하는 편을 권한다.
바이 담 짜우는 인적을 찾기 힘들 만큼 호젓한 곳이다. 해변의 길이는 대략 1.5킬로미터에 달하고 산자락이 흘러내려 해변을 양분하고 있다. 가족 나들이라면 오른쪽 해변을 이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온통 바위인 산자락을 넘어서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 담 짜우 해변의 백미는 왼쪽 해안에 있다. 해안 끝이 곶 부리를 형성하고, 그곳에서부터 홀연 산호 지대가 나타난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또 완벽하게 보존된 산호가 마천루처럼 곁을 이루고 있다. 산호 아래 산호였고, 그 밑에 또 다른 산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울울창창한 밀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다양한 모양새의 산호 속을 유영하는 천연색의 물고기. 크고 작은 물고기를 두 팔 벌려 보듬은 듯한 산호를 보고 있노라면, 파우스트의 대사가 절로 읊조려진다.
‘아, 이 시간이여, 영원하라.’
베트남, 특히 꼰 다오의 산호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필자 개인으로는 바이 담 짜우에서 생애 최고의 산호 숲을 만났다. 하와이의 산호는 장대하지만 수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리핀의 산호는 지나치게 화려해 깊은 맛이 없었다. 하지만 꼰다오의 산호는 아름답고도 그윽했다. 앞으로 이곳에 얼마나 많은 다이버들이 몰려들지 가히 짐작이 된다. 꼰 다오 산호에 감격한 필자는 ‘레인보우다이버(Rainbow Diver Vietnam)’ 강사에게 물었다. 산호지대가 얼마나 되느냐고. 안내원은 고개를 저었다. 꼽을 수 없는 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꼰다우에 머문 지 2주째.
본지의 발행인이 취재차 꼰 다오에 들렸다. 필자는 그와 함께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로 현장을 누빈 적이 있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부분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국내외 언론매체에서 앞 다퉈 게재하곤 했다. 그런 그가 불쑥 베트남 행을 선언했을 때, 동료들은 만류했다. 그의 사진을 쉽사리 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특히 필자와는 기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는 필자의 청을 수락했고, 필자는 최고의 결혼사진을 얻으리라 들떠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사흘 전 뜻밖의 일이 터졌다. 그의 이름을 신문 사회면에서 본 것이었다. 시위 현장 사진을 촬영하던 사진기자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입원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여의도 성모병원이었다고 기억한다. 달려가 사연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그날의 시위는 격렬했다. 여느 기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망원렌즈를 사용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24밀리 광각렌즈를 사용해야만 현장성을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대한 시위 현장에 접근했다.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의 판단은 적절했다. 그리고 원하는 앵글의 사진을 얻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직격 발사된 최루탄을 얼굴에 맞아 광대뼈가 함몰된 중상을 당한 것이었다. 비명횡사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그는 즉각 대꾸한다. ‘억울하면 다시 결혼해’라고---.
필자에게는 여행의 원칙이 있다. 넓게 본 연후에 깊게 느끼자.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꼰 다오에는 섬 전체를 둘러볼 일주도로가 없다. 섬 크기의 절반에 못 미치는, 공항에서 벤담 항구까지 밖에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섬 전체를 보기 위해 어선을 대절하는 편이 좋다. 흥정 능력에 따라 상당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꼰 다오는 한국의 거제도 크기와 비슷하다. 섬을 일주하는 데 꼬박 한나절이 걸린다.
다운타운을 떠난 어선이 벤담 항구를 막 지나쳤을 때였다. 느닷없이 엔진이 멎었다. 재빨리 닻을 내리며 선원이 전했다. 수리하는 데 족히 1시간은 걸릴 것이란다. 조바심을 내야 소용없는 일, 느긋한 마음으로 다우 족(Dau Doc)으로 시선을 돌렸다. 벤담 항구에서 2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다우 족은 꼰 다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우 족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들을 배경이 되어 서산 간월도 낙조에 옮겨놓은 듯하다.
2십 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수면에 희끔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2미터는 족히 될 크기의 물체가 점점 어선 쪽으로 접근했다. 아, 그것은 말로만 듣던 듀공(Dugong)이었다.
가슴에 새끼를 안고 젖을 먹여 옛날부터 인어라고 지칭됐던 바다 포유동물. 현재 개체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만큼 희귀하다. 듀공이 멸종 위기에 있는 까닭은 돌고래 등과는 달리 초식동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수중식물을 먹기 위해 얕은 바다로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사람들의 남획에 노출되어 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뜻하지 않는 엔진 고장이 놀라운 행운을 가져온 셈이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듀공을 목격하면 엄청난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꼰 다오에서 작업한 신작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려나---. 필자는 빙긋이 웃었고, 듀공은 유연한 몸짓을 뽐내며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평화와 고요가 깃든 꼰 다오. 신이 내린 은총인 양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외딴섬. 하지만 이곳에 베트남의 고단했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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