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주의 뜻(약4:13-17)
2025.8.31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나이에 상관없이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꿈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그 꿈이 오히려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인생에는 재수(再修)가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매순간이 결승전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일생을 돈만 쫒다가 거부가 되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숨을 쎅쎅 거리던 어느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간신히 비밀계좌의 비번을 말했다.
“아들아……. 비밀계좌의 비번은……. 영어로……. 영어로…….”
아들은 아버지를 흔들면서 안타깝게 말했다.
“아부지 영어로, 영어로 뭐예요? 그 다음을 말씀하세요!”
그러나 아쉽게도 노인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들은 장례가 끝난 후부터 아버지가 정했을 가능성이 영어단어나 아버지와 관련된 각종 이름들을 입력해 보았다. 그러나 다 허사였다. 아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오직 비밀번호 찾기에만 몰두했다. 그런다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아들도 노인이 되고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이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비밀계좌 사이트를 접속하고, 암호 란에 “영어로”라고 입력했다. 그랬더니 마침내 비밀계좌가 열렸다. 그 화면을 본 아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수십 년을 비밀번호를 알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했는데, “영어로”로가 비밀번호였다니……. 아들은 그 자리에서 쇼크사를 하고 말았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모두 헛된 것들을 인생의 목적과 방향으로 삼다가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일생을 망쳤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나)들의 모습은 아닐까?
그런데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 4장 13-17절 말씀에도 이와 유사한 한 사람이 등장한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약4:13)
일단 여기서 지칭한 “너희”란 일차적으로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하가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의 불신자들은 둘째치고라도 심지어 성도들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떤 우리가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13절)라고 말했다. 이 사람의 말을 보면, 이 사람은 최소한 그 당시의 실물경제에 대해 상당한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다른 도시에까지 가서 장사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면, 사업수완도 꾀나 뛰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말 속에는 그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짐작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이익”이라는 표현이다. 쉽게 말하면 “돈”이다.
그러면 이 사람의 문제가 뭘까?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은 것일까? 사업을 하고 이익을 남기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익을 남기거나 돈 버는 것이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해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사람의 문제는 이익이나 돈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이 모습이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가장 흔히 모습이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두 주인”(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모습이다(마6:24).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당연히 삶의 목적과 방향이 그 이전과는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지(직장, 사업, 공부, 예체능, 기타 등) 그 목적과 방향을 영원하신 주님께 두라고 강조하는 것이 본문 말씀의 주안점이다.
이것은 15-16절 말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같이 15-16절을 읽자.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5-16)
이 말씀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우리들의 남은 생의 목적과 방향도 당연히 “주의 뜻”이 되어야 한다. 성도란, ‘주님의 뜻’을 내 삶의 목적과 방향으로 삼는 존재들이다.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슨 말씀이나 명령을 하시든지 상관없이(“이것이나 저것이나”), 설령 때로 그것이 내 생각과 차이가 나더라도, 순종(복종)하는 것이 제자도(弟子道)의 첫 번째 덕목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익이나 돈을 목적으로 삼고, 심지어 “허탄한 자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오늘 본문이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나)는 어떤가?
그러면 왜 이렇게 성경은 우리는 세상 것들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할까? 그 이유가 14절 말씀에 나온다. 다같이 14절 말씀을 읽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우리가 세상 것들을 살아가는 목적인 방향으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은 바닷가이므로 바다안개를 자주 볼 수 있다. 그 장면들을 상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한 없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세월의 물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교회에 나이에 비해서 젊게 보이는 성도님이 계셨다. 그분은 나이가 6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옷이나 헤어스타일이나 심지어 몸매까지도 세련된 40대 중후반처럼 보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외모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분을 보았던 어떤 분이 “멀리서 볼 때는 젊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세월은 속일 수 없네요”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단지 나그네일 뿐이고, “잠깐 자는 것”같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을 뿐이다. 우리의 외모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사라지는 들꽃 같다. 그것도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세는 “평생이 순식간에”, “신속히” 날아간다고 했다(시90:5-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우리의 삶은 매순간이 결승전이고, 단판승부로 끝나는 인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 “주의 뜻”을 내 삶의 목적과 방향으로 삼고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내 삶으로 주인으로 모신 성도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15절 말씀처럼 주님의 뜻이라면, 살기도 하고, 무엇이든 순종하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약4:15)
또한 결국 이처럼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는 것이 역설적으로 내 뜻을 이루는 길이기도하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때가 가장 “복(바라크, 찬양한다)”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세팅해 놓으셨기 때문이다(창1;27-28). 그러므로 우리들이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 목적과 방향을 “주의 뜻”에 두자.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들을 누리며 살아가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