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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14장 9-13절 성도에게 인내가 필요한 이유
세상 전체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 그 세상 가운데서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피를 말릴 정도로 힘든 일들이 계속해서 생깁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동성애가 합법화되는 주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로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던 목회자나 성도들이 온갖 괴로움을 겪는 일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 일을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냐 하면 얼마되지 않으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미국 아이다호 주에 거주하는 목사 부부가 코들레인 시 관계자들을 상대로 “동성결혼식 주례 강요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했는데요. 그 이유는 히칭포스트 웨딩채플을 운영 중인 도날드 냅과 그의 아내 이블린 냅은, 지난해 시 관계자에게 동성결혼식 주례를 서 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주례를 서지 않을 경우 교도소에 수개월 투옥되거나 수천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로인해 자유수호연맹 소속 변호사들이 두 사람의 이름으로 코들레인 시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코들레인 시(市) 측은 “전통적인 개념의 결혼을 인정하는 주의 법을 법원이 기각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에 따라 두 사람이 동성결혼식 주례를 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법률대리자인 자유수호연맹의 수석법률상담가 제레미 테데스코 변호사는 “정부는 안수 받은 사역자들이 투옥과 벌금의 위협 아래서 그들의 신앙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목회자가 자신의 신념과 완전히 반하는 결혼식 주례를 강요받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미국 크리스천 포스트지는 말하고 있습니다.
고소장에 의하면, 60세인 이들 부부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성직 서약에 위배되는 동성결혼식 주례를 서든지, 신념에 따라 이를 거부하고 180일간 투옥 및 1,000 달러의 벌금 납부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동성결혼식의 주례를 거부한 날마다 별도의 경범죄가 부과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주일 동안 동성결혼 주례를 거부할 경우, 이들의 투옥일은 3년이 되고, 벌금도 7,000달러로 올라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앞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지난해 레즈비언 커플의 웨딩 케익 제작을 거부해 전 미국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오레곤 주 빵집의 주인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15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습니다. 허핑턴포스트 US의 보도에 따르면 빵집 주인인 아론 클라인과 멜리사 클라인 부부는 지난 9월 2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보수진영 유권자 모임 `밸류스 보터 서밋`에 참가해 15만 달러의 벌금이 그들 부부와 다섯 자녀를 파산으로 밀어넣을 거라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멜리사 클라인은 서밋에서 "이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경제적 악영향을 끼쳤고,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가 우리를 더욱 강하게 키워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9월, 클라인 부부는 결혼을 앞둔 레즈비언 커플에게 웨딩 케익 팔기를 거부했고, 이것이 논쟁을 불러일으키자 "웨딩 케익 판매를 거부한 것은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며 가게 문을 스스로 닫았습니다.
부부는 빵집 문을 닫은 이후에도 동성애자를 종교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 'Restored Hope'를 위한 케익을 제작한 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서 또 한 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성애자들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반응은 어떨까요? 바티칸은 동성애자들을 가톨릭 교회가 환영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로마카톨릭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인데요. 허핑턴포스트US가 인용 보도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바티칸의 동성애자에 대한 엄격한 기존의 태도가 완전히 돌변한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문서가 현지시각으로 지난 2020년 10월 13일 월요일 발표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5일부터 바티칸에서 개최되고 있는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3차 임시총회에 참석한 200명의 주교들이 가족, 전쟁 등의 주제를 놓고 논의한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카톨릭주교들이 “동성애자들도 크리스천 공동체에 기여할 은사와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며 "우리에게 그런 이들을 환영할 마음이 준비되었는가? 우리 공동체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이들이 바라는 것은 가족처럼 맞아주는 교회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동성애자들을 환영하고 우리 커뮤니티 속 형제간의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다. 가족과 결혼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타협하지 않고도 동성애자의 성적 취향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번 시노드에 참여한 주교 중에서는 동성애자를 '본질적인 장애'라는 말로 비하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질적인 장애'는 이전 교황인 베네딕트가 썼던 표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 보고서에는 12억 명의 신도를 주관하는 가톨릭 교회가 신자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입장을 보다 개선하는 과정을 '중요한 교육적 사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동성결혼에 대한 내용도 있다. 보고서는 교회가 동성애자의 결합을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과 동등하게 여길 수는 없지만" 동성애자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의 결합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그런 관계가 성립된다면 그것도 매우 귀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고 했고, 또 “물론 기본적으로는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원칙에 완전히 배척하는 내용은 없지만, 다른 교황 체제 하에 나온 어떠한 문서보다도 동성애자에 덜 비판적인 동시에 적극적인 용납과 포용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혁명적인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고 이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로마 카톨릭이 이렇게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지 아십니까? 진리보다 자기들의 존재와 존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수호하시기 위해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성경보다 자기들의 회의를 통해 발표된 결과가 성경보다 훨씬 우월하게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의 실체며 로마 카톨릭을 음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물론 카톨릭 내에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백성아 그 속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신교도 역시 로마카톨릭처럼 교회의 존속을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하고 정의를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면 이 세상의 죄악을 수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멀지 않아 교회에는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버리면 그 순간부터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에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없어집니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은 이러한 발표로 인해 세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온갖 마피아와 폭력집단들뿐 아니라 수많은 위선자들, 그리고 이제는 동성애자들까지 카톨릭이라는 종교 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예전에 한 남자연예인이 자기는 동성애자라고 하는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음지에 숨어서 범죄를 저지르던 동성애자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물론이고 서울시의 지지를 힘입어 동성애자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 축제에는 별 지저분한 일들이 다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과 지각있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그들을 막자, 그들은 이제 여기 저기 전국의 다른 장소로 옮겨가면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노방전도나 개인전도는 물론이고 대중적인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만일 노방전도를 하다가 걸리면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게 법으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차별금지법 역시 이런 하나님을 등지는 사회로 가는 과정임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알고 진리를 지킬 때 이 세상은 그나마 부패가 지연되고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고 이 세상을 지켜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러한 죄악은 만연화될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제는 짐승의 표가 없으면 이 세상에서 거래를 할 수 없는 날이 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지 오늘 말씀은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9-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들은 이 땅에서 편안함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짐승이 준 표만 받으면 삶이 보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녀가 따라주는 대접에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짐승의 요구를 따랐고 음녀가 주는 향락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거래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조차 처음에는 그들을 따르지 않다가 수많은 압력에 의해 모두 다 짐승을 지지하고 짐승의 표인 육백육십 육의 표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그 표를 받는 것을 거부한 사람들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만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넘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조차 이 짐승의 표를 받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날에 임할 일과 그 때를 살면서 가져야만 하는 믿음을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이 가슴 속에 없이 세상에 맞추어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지혜롭게 여겨지고, 또 온 세상에 만연해질 때가 옵니다. 그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진리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인내입니다. 사람들이 그릇되다고 비난하고 놀려도 말입니다.
이 성도들이 지켜야할 인내에 대하여 14장 1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에서는 몇 차례 이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2장 2절을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하시면서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인내를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장 19절에서는 두아디라교회가 가지고 있는 인내를 칭찬하고 계십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리고 3장 10절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하시면서 빌라델비아교회를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13장 10절을 보면 짐승이 통치하는 시대에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가 믿음의 승리를 갖기 위해서 가져야할 마음이 바로 인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교회의 박해때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순교를 당해도 역시 승리자입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알아야 하고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인내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 여러분들이 들으셨던 성도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던 두 가지의 열쇠와 동일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을 조금씩 다르게 여러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자체가 동일한 것을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들이 많은 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도 역시 동일합니다. 우선 요한계시록 1장 2절을 보면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1장 9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다가 환난과 나라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요한 자신이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그리고 6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그들이 가진 증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12장 17절을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장 4절을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하면서 예수님의 증거를 이번에는 예수를 증언함이라고 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명을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말씀한 것이 19장 13절인데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있는 옷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성도들이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내로 승리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모든 승리한 성도들이 죽기까지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상은 이제는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안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말씀은 뒤에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믿음을 지키는 과정이 매우 힘들 때가 오는데 그때의 승리의 신앙은 단순히 영적인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를 믿는 그 믿음이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없는 세상이나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누구나 다 우상에게 경배하며 짐승의 표를 받을 수 밖에 없고,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과 천사들 앞에서 영원토록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이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