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길에서 만나는 인물사(겸재로와 추사로) /박철상
2023.4.21.(금) 13:00,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상반기 강좌 “서울길에서 만나는 인물사” 8강 강의를 들었다. 한국문헌문화연구소 박철상 소장님이 “조선 예술의 선도자들 –겸재로와 추사로” 주제로 강의해 주셨다.
서울을 그린 화가 정선과 겸재로
겸재 정선은 한국 회화사에서 첫손가락을 꼽을 만한 중요한 사람이다.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 명성은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해악전신첩, 풍악도첩, 경교명승첩 등 8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 대부분의 명작이 금강산과 서울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런 겸재의 그림을 실제 산수를 화폭에 담았다 하여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부른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중국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던 당시 상황에서 우리 산수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결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겸재정선미술관(강서구 양천로) 사이트
http://amigohula.tistory.com/6748552
겸재 정선 X 사천 이병연의 뜨거운 우정이 만든 걸작🎨! 조선판 교환일기(?) '경교명승첩'|차이나는 클라스|JTBC 220814 방송
https://youtu.be/LRHaSWFmF8E
추사 김정희와 추사로
김정희의 이름 앞엔 늘 ‘추사’란 두 글자가 따라다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추사체’를 떠올린다. 서예는 전통시대 예술의 대표 장르였고, 김정희는 그 서예의 최고봉에 이르렀던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학의 경전을 연구하는 경학의 대가였고, 청나라 고증학을 수용하여 조선의 금석학을 학문으로 정립시켰다. 그림에서도 세한도, 불이선란 등 명작을 남겼다. 김정희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만들었고, 19세기 학문과 예술의 종장(宗匠)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 평안平安)' 미디어 특별전(2020.11.24 ~ 2021.04.04.)에서 세한도를 관람했었는데 오늘 강의 들으며 의미가 더해져 새로웠다.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세한도
https://youtu.be/lpfJr0kbUQY
국보 제 180호 세한도,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https://youtu.be/famHRT9uDeI
추사의 서예작품 및 간찰 등 자료를 평생 수집한 일본인 추사 연구학자 후지츠카치카시(藤塚隣), 1879~1948, 전 경성제대 교수)는 문인화의 명품인 국보 ‘세한도’를 비롯 추사의 자료로는 최고인 1만 여점을 수집, 수장하고 있었다. 그가 별세하자 2006년 초 아들 후지츠카아키나오씨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추사가 말년에 살았던 과천시에 기증했다.(출처 : 강원도민일보 2008년 07월 24일 한영달의 글 중에서 https://cafe.daum.net/prowelfare/Ce8p/1941?svc=cafeapi)
과천시 추사박물관 사이트
https://www.gccity.go.kr/chusamuseum/main.do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순례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 평안平安)' 미디어 특별전(2020.11.24 ~ 2021.04.04.)에서 세한도를 관람했다. 이 또한 감사^^
https://cafe.daum.net/prowelfare/S0yn/284?svc=cafeapi
걸작 “세한도”에 숨겨진 추사 김정희의 굴곡진 삶 - 유배 중 아내와 사별한 추사에게 끝까지 도움을 준 제자 이상적 | 다큐인사이트 “세한” (KBS 210415 방송)
https://youtu.be/ShFq-e302ws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96> 겸재 정선의 한양전도
이연정 기자 lyj@imaeil.com
매일신문 2023-04-17 07:37:19
미술사 연구자
정선(1676-1759), '소의문망도성도(昭義門望都城圖)', 종이에 담채, 37.5×61.4㎝, 삼성미술관 리움
사용하던 부채에서 선면을 떼어내 화첩으로 보존돼 온 '소의문망도성도'다. 그림에는 제목, 서명, 인장 등이 하나도 없고 그림 바깥에 강세황, 김희성, 김윤겸 등의 글이 있다. 세 분 모두 겸재 정선의 그림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모두 화가여서 정선의 필치를 잘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이 화첩의 소장자인 김희성이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고 정선과 만년까지 교류해 작품의 유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 강세황의 글은 이렇다.
'종소의문외(從昭義門外) 망도성(望都城) 내여차(乃如此) 성지궁궐(城池宮闕) 역력가지(歷歷可指) 차옹진경도(此翁眞景圖) 당추위제일(當推爲第一) 표암(豹菴)'
'소의문(서소문) 밖에서 도성을 바라보면 곧 이와 같다. 성지와 궁궐을 또렷하게 가리킬 수 있다. 이 옹(정선)의 진경도(眞景圖)를 마땅히 첫째로 꼽아야 한다. 표암(강세황)'
강세황은 서울의 전모가 이렇게 보이는 지점은 서소문 밖이라고 지목하며 진경도는 정선이 최고라고 했다. 오른쪽 아래 글에서 김희성은 중국 당나라 왕유의 유명한 시구를 인용하며 겸재가 한양도성을 그렸다고 했고, 김윤겸은 중국의 고대 명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극찬한 글을 왼쪽에 써 넣었다.
이들은 모두 실경산수를 그려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한양을 이렇게 부채그림으로 담아낸 '소의문망도성도'가 얼마나 놀라운 작품인지 잘 알았다. 서울지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양도성 안팎을 회화적으로 구성해 실경산수로 그린 한양전도(漢陽全圖)는 정선의 '소의문망도성도'가 처음이다.
운연(雲煙)으로 공간을 압축했고 푸른 선염을 올린 산줄기와 봉우리로 한양을 둘러싼 산세를 나타내며 언덕과 구릉에 의지해 집들과 나무들을 그렸다. 점점이 이어지는 도성의 성곽과 뚜렷한 문루(門樓), 기와지붕이 연이어진 건물군 등이 어디인지를 당시 사람들은 하나하나 짚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성부는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이 사는 궁궐과 종묘사직, 고위 관료들이 근무하는 중앙관청은 물론 수많은 인가가 들어찬 대도시였다. 뭇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산수자연이 아니라 수만의 지붕이 빼곡히 들어찬 한양성은 장삼이사가 모여 사는 도시가 일상이자 이상향이 된 시대인 18세기를 말해주는 것 같다.
금강전도 못지않은 요약력으로 한 컷에 담아낸 한양도성이다. 이 화첩을 펼쳐 본 세 분은 금강전도에 버금가는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날 잊지마오” 가시덤불 ‘감옥’ 8년 갇혔다…그림에 펑펑 울었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추사 김정희 편]
헤럴드경제 2023.03.11. 00:26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310000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