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목에 추를 달아 놓은 듯 무겁다. 말수를 줄여야 하는 불편함보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소통마저 잃어버리게 될까 봐 조바심 나고 초조해지는데, 문득 깊은 내면의 강을 따라 기억 하나가 흘러온다. 흥이 많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엄마는 고향동네 명가수였다. 접히고 펼쳐지는 노랫가락이 구수한 사투리처럼 구성졌다. 눈썹 아래 관자놀이를 움직여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노래 부르면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고향 집에 홀로 지내는 세월 동안 지칠 때마다 노래로 위안을 얻었다.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길이기도 했다. 건강에 이상 징후를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고 뇌출혈이 진행된 상태로 엄마는 도시 병원으로 왔다. 초조함과 팽팽한 긴장감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남은 것은 후유증이었다. 나는 박하에 쏘인 듯 화하게 목이 메었다. 엄마의 언어는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미처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물속같이 고요해 보이는 엄마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드러났다.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병세는 조금 나아졌다. 수족을 마음대로 쓸 수 없지만, 화장실 출입이 혼자서도 가능해졌다. 찬바람 속에 햇살이 스며들듯이 엄마의 마음에 온기가 들어섰다.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엄마를 따라가서 뒷바라지할 수 없어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눈꼬리가 축 처지면서 고개를 떨구던 엄마는 힘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신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는 현실 앞에서 더는 우길 명분이 없었다. 고향에서 갖던 일상을 접으면서 삶의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고향 집처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와 한식구로 융화되어 갔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따르며 좋아했고, 할머니는 아이들을 잘 챙겨 주었다. 맥없이 널브러져 헐거워진 마음이 촘촘히 되살아났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동요책을 꺼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유치원에 다니던 동생이 율동을 하며 재롱을 떨었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어둔하게 손뼉 치며 아이들을 칭찬하자 할머니도 노래 한번 불러 보라고 졸랐다.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치는데 검버섯 핀 손등에 파리한 핏줄이 드러났다. 나는 엄마의 어깨를 살며시 만지며 좋아하는 노래 한번 불러보라고 채근했다. “산 너울에 두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내가 선창을 하며 따라 부르기를 유도해 보았으나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당신 자신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사는 듯해서 내 마음의 풍선에도 바람이 빠져나갔다.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왔다. 주방에서 나는 흥얼거리는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가수가 부르는 선율에 옥타브가 낮은 음성이 실려 있었다. 하던 손길을 멈추고 수돗물 스위치를 가만히 내렸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흥겨운 가락이 거실 가득 넘쳐 났다. 엄마의 반응을 살펴보느라 잠자코 있었다.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따라 불렀으나, 애처로운 곡조는 입 안에서 우물거렸다. 잃어버린 노래를 되찾으려 시도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수그리며 후르르 한숨을 내뱉었다. 부르지 못하는 노래는 그어 놓은 선 안에서 떠돌다가 마음에서 영영 놓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엄마의 흥얼거림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엄마의 쉼표는 길어졌다. 체중이 늘어나면 병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음식을 절제시켰던 일도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는 먹는 즐거움마저 잃어버렸다. 침묵과 생략으로 소통하던 엄마를 고향에 모셔다 드렸더라면, 어눌한 입놀림으로 고르지 못한 노래를 부르며 삶의 즐거움을 찾고 이웃과 소통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병이 더 깊어지지는 않았을까? 엄마의 노래에는 쉼표가 길어졌다. 흥겨운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하다.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나갔다. 악보를 챙기며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처연해 보이던 엄마의 눈빛이 나에게 꿰어졌다. 일렁이던 눈동자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 어제의 기억을 묻고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엄마를 두고 내 즐거움을 찾으러 집을 나섰던 그 발걸음이 얼마나 우둔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가만히 불러 본다. 쉰 목소리에서 새어 나온 음이 고르지 않다. 굴곡 많은 우리네 삶처럼 거칠다. 다행히 성대 결절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당분간 휴식은 필요하다. 악보 위에 쉼표는 그 길이만큼 충분히 쉬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영원한 쉼표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