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 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 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쩡댄다
[정월대보름]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음력 1월 15일은 대보름, 음력 1월 14일은 작은 보름으로 불린다. 농사력(農事曆)으로 볼 때 이 시기는 대보름에 이르기까지 걸립(乞粒)을 다니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다가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이며, 마을공동의 신격(神格)에 대한 대동의례· 대동회의·대동놀이 등이 집중된 때이기도 하다.
* 고은(高銀 1933.8.1-) 1933년 전북 군산시 출생 미룡초등학교 졸 1951년 부터 해인사 승려(1951년~ 1962년까지)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 등으로 추천을 받아 등단 1960년 시집 <피안감성> 발간 1970년대 지식인의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 여러 차례 옥고를 치름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현재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