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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 극복의 대안들
대학서열화 극복을 위한 대학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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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의 폐해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되어 가고 있으나 그것에 대한 대안 마련은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학벌주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진단이 상이하기 때문에 대안에 대한 시각 역시 차별적이다. 여기서는 필자가 보는 학벌주의의 발생배경을 우선 언급하고 그것의 극복 방안을 몇 가지 제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깊은 사회과학적 연구나 비교연구에 기초한 것이 아니므로 다분히 시론적이며 아이디어 제시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1. '학벌주의'의 개념과 발생배경
학벌주의에 대해 남다른 문제의식을 가진 한완상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학벌주의를 '어느 특정대학을 나와야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신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정의에 기초하여 지난해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벌주의의 개념은 학벌주의를 학벌 문화, 즉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로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벌주의는 가치관, 태도, 사고방식이기 이전에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와 관행, 즉 각종 선발, 입직과 승진에서 졸업자격증, 특정대학 졸업장을 선택하는 제도적 장치들과 반드시 결부되어 있다. 즉 제도와 의식은 분리되기 어려우며 어느 것이 더 선행하는가를 판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벌주의를 의식 혹은 태도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학벌주의는 우선 정치적 지배질서이자, 제도와 관행이며, 동시에 널리퍼진 가치관, 태도라도 보고 있다.
학벌주의는 특정 대학 졸업장이 지위와 보상 획득의 가장 결정적인 수단으로 통용되고, 특정 대학, 고교출신자들이 지배집단 내에 카르텔을 형성하여 그러한 질서를 영속시키고,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그 카르텔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으로 내모는 정치사회적 질서이다.
학벌주의가 우선 지배질서라고 보는 이유는, 지배층의 구성원이 특정 대학의 출신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어서 특정 대학의 입학이 곧 지배층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관문이 되고, 또 그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학벌주의는 학력주의와 더불어 권력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학벌의 취득이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이고, 학벌의 취득과정이 당사자는 물론 패배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구성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승인되고, 그러한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러한 지배체제에 복종하게 된다는 점에서 학벌의 취득이 정치사회적 지배질서의 재생산의 기제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벌주의가 학력사회론, 인적자본론, 전문가주의(credentialism) 등으로 개념화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학력주의 지배질서에 일차적으로 기초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종의 문화자본으로서 학력의 취득은 높은 지위와 보상 등 지배집단으로서 누릴 수 있는 희소재를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인데, 학력주의가 공개경쟁이라는 자유주의의 신화에 기초해 있는 것처럼, 학벌주의 역시 기저에는 이러한 학력주의적 정당화를 깔고 있다. 학력주의가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신화, 능력주의라는 신화, 시험의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신화에 기초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평등과 권력독점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학벌주의도 그러한 신화에 기초해서 정당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와 학력차별은 그 자체로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국가, 사회 차원에서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학력주의에 기초해 있고, 학력사회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학력, 혹은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은 그 자체로 높은 보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재산, 부르디외(Bourdieu)가 말하는 문화적 혹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만약 학교의 졸업장이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한다면 그러한 자본 획득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 자격증을 부여해줄 수 없게 되고, 당연히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일정한 시험, 그리고 자격 획득과정의 수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자격획득을 위한 시험과 수련 과정은 바로 차별을 합법화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적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부여해주면서, 그러한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체제이다. 학력차별이 학벌차별로 되는 과정은 한번의 학력 취득 이상의 평가의 기회가 거의 없고, 일단 특정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내부자와 외부자의 벽을 쌓은 다음, 공개적인 경쟁의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학벌주의는 공개적인 경쟁과 평가의 기회를 박탈하고, 능력에 기초한 인재의 등용의 기회를 차단하고, 특정 학력과 특정학교 졸업자의 자격을 준신분화하는 점에서 학력주의와 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학력차별, 학력 간판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한 차별이 넘어설 수 없는 상당히 높은 장벽을 쌓아두고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도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우선은 그러한 신분을 획득한 사람은 프리미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일단 간판만 획득한다면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지위를 획득할 수 있고, 승진의 사닥다리를 탈 수 있다. 반면 그러한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와 동등한 지위에 올라가는 것이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벌주의는 학력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정치경제질서의 산물이다. 즉 전통적인 신분제가 몰락한 이후 사회적 희소재의 배분과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특정한 학력의 취득이 가장 중요한 '자격' 획득 수단으로 등장한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점에서 모든 자본주의 사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력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높은 경쟁을 통해서 획득한 학력과 특정 대학의 졸업장이 객관적인 능력인정 혹은 내부자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서 일정한 학벌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학벌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본의 힘과 더불어 교육을 통해 획득된 학력자격화 논리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력 혹은 학벌이 사회적 화폐로 통용되는 것은 근대적 국가교육 체제, 국가의 보증에 의해서라 볼 수 있다. 학력, 혹은 자격증 소유를 통한 차별과 배제는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에 일차적으로는 최고의 보증자인 국가권력에 의해 보장된다. 현대 사회의 공고육은 바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는 자격증 제도를 실시하여 특정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 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리가 되는 자격증 부여이다. 즉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공무원을 어떻게 선발하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의 질서유지, 물적자원의 배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의 관리 선발 문제는 바로 국가계급, 즉 전통사회의 신분과는 상이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실상 특권 신분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내게 된다.
즉 특정 정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사회에서 누가 지배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가의 문제인데, 그 과정에서 국가가 교육과정에 개입하여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자격자를 미리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자본가 보다는 관리, 정치가가 지배자로서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 관리양성과 정치가 양성 과정에서 특정한 자격이 요청될 경우, 학벌주의가 가장 확실하게 정착할 수 있다.
2. 한국사회의 학벌주의 성립
한국의 학벌주의와 그것의 표현으로서 과잉교육열은 분명 중간층 심지어는 하층민의 사교육 투자까지 강요하는 전국민적인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도 이러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였다. 그것은 과거시험을 통한 관직 진출의 경쟁이었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강력한 중앙집권주의로 특징지위지고, 이러한 중앙집권주의는 억압적 통제와 사회적 원자화, 수평적인 사회관계의 수립을 차단하는 대신 상승을 향한 강한 기류를 만들어내는데, 상승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 과거시험을 통한 중앙정치에의 진출이었다. 그리고 조선조 후기 유교적 지배질서의 위기 속에서 관리등용과정에서 실력과 도덕성보다는 가문과 학벌연고가 더욱 중요하게 되면서 일종의 문벌주의, 문중주의, 가족주의적 지배질서가 수립되는데, 이러한 문벌주의가 오늘날 학벌주의의 전사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벌주의는 일제 식민지 체제 하에서 기초가 마련되었고, 해방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 지배체제는 일종의 파시즘적 근대화, 국가주의적 자본주의화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로 등용되는 관문에서 전통적 신분대신에 학력 자격 취득을 요건화한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든 사람이 빈곤화되어 비교적 동질적인 조건에서 재출발 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동질성이 교육을 통한 지위상승의 열망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과잉 교육열은 한국 근 현대사의 독특한 정치적 지배질서와 맞물려 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획득이 곧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 획득을 보장해주는 한국의 중앙집중주의, 그리고 정치권력의 획득이 곧 경제적 자원 획득의 통로가 되는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의 지배의 역사, 대항적 사회운동와 계급정치의 공간이 폐쇄되고 오직 가족단위의 수직적인 상승전략만이 가용하게된 분단체제의 역사를 통해서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정초과정에서 과잉교육열, 입시위주의 교육은 학력 자격의 획득, 특정 학교의 진학과 졸업이 정치적 물적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매우 확실하고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잉교육열은 분명히 한국사회의 유동성의 산물이며, 계층이동이 가능성을 상징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학력'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자격기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신뢰부재의 사회에서 학력은 물신화되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심각한 좌절을 안겨다준다. 그리고 한번 획득된 학력, 혹은 특정학교의 졸업장이 일단 획득된 이익을 지속시키는 진지구축의 방편으로 작용할 때 학벌주의가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공교육의 역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학력'의 취득이 점점 경제적 자본을 소유한 계층에 유리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교육은 계급, 계층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기제로서 작용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학력과 자격증의 장악의 이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이루어짐으로서 학벌차별, 학력차별이 사실상 준신분적 차별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놓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일반에서 나타나는 학력차별과 더불어 특정 서울대와 비서울대, 서울소재 대학과 지방대, 국내 학위자와 미국학위자 간의 차별이 실재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 카스트는 학력 카스트 못지 않게 우리사회에서는 심각한 상태에 있으며 급기야 서울대 폐지론까지 나오게 되었다.
결국 문화자본으로서 학력이 '학벌사회'의 기반이 된 배경은 초기단계에서의 분단 국가의 체제유지,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위해 특정 국립대학 육성 전략을 택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저발전과 국가가 공공성을 독점하는 사회체제 하에서 국립대학 졸업장, 특히 서울대학교의 졸업장이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한 문화화폐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국립 서울대학교, 전통있는 오래된 대학의 졸업생이 사회의 지배층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들의 연고가 하나의 기득권 구조로 정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인재의 양성, 지배층의 육성의 초기적 과정이 완성된 이후 자본주의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기업 및 모든 사회조직에서 '특정 졸업장'이 평가의 절대적 기준으로 활용되었으며, 이것을 대체, 보완할 수 있는 다른 평가체제의 부재한 가운데, 국가공인의 시험이 배차적인 기준으로 작용하여 대학입학 여부를 좌우하고, 사회적 신뢰의 결여 상황에서 국가가 입시 및 대학교육에 계속 개입함으로써 이러한 시험/학력/학벌의 물신화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지배질서, 사회적 재생산 메카니즘에 익숙해진 학부모와 학생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러한 학력/학벌을 취득하려고 경쟁하게 되면서 학벌주의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과 실천에 자라잡았다.
3. 학벌주의 극복의 방안
앞에서 언급한 학벌주의의 발생의 배경을 고려하면 그것의 극복은 사실상 자본주의 지배질서나 재생산 구조의 개혁, 혹은 기회의 균등성 보장 등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한국의 학벌주의는 현상적으로는 '학벌 간판'에 대한 과도한 추구, '학벌 간판'이 입직과 승진과정에서 다른 조건을 압도하는 관행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만 주목하면서 극복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학벌주의 극복의 이상과 단기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조작적으로 정의해보기로 한다.
학벌주의 극복의 이상
1. 학벌이 아닌 능력에 기초한 지위 획득의 사회적 기제 마련( 인재의 합리적 등용)
2. 교육의 정상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차단. 대학을 공부하는 곳, 학문하는 곳으로
3. 대학의 공공적 기능 확보, 대학교육의 정상화, 대학의 경쟁력의 강화
4. 수도권과 지방의 이분화, 지방대학의 낙후 개선
5. 궁극적으로 사회적 형평성, 사회적 민주화가 확보된 사회 건설
학벌주의 극복의 단기적 과제
1. 단극적인 대학서열화 구조 타파
대학의 '간판'을 보고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특성, 교수진과 학교의 교육
서비스 질, 그리고 장래의 직업 선택의 기회 등을 골고루 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2. 학벌, 학연 회로에 의해 지위와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막는 것
3. 특정대학 입학이 일생의 보상과 지위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시키고, 계속되는 능력
발휘와 평가의 기제를 확보하는 것
그 동안 학벌주의 극복(대학서열화 극복)으로 주로 제시된 안은 국립서울대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없애고 서울대 독점구조를 해체하자는 안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다른 시각에서는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 자기 자식 출세를 지향하는 이기주의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국가의 특정대학 특혜지원이 문제인가, 학부모의 과도한 경쟁이 문제인가?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그 동안 국가가 국립대학 특히 국립서울대을 특혜적으로 지원하여 대학간의 공정경쟁이 부재했다는 점은 사실이나, 여기서 서울대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거나 서울대를 민영화할 경우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서울대에 대한 지원은 문제의 하나이지 전부라고는 볼 수 없다. 설사 서울대 지원이 축소되거나 없어지더라도 사회적으로 서울대라는 학벌 화폐, 서울대 연고는 그대로 살아있을 것이고, 서울대를 진학하려는 강력한 동기가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편 학부모의 과도한 서울대 진학 열의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결과.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점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학벌사회에서 학벌을 얻기위한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의식개혁으로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영화, 혹은 지원축소를 통해 대학간 공정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은 재벌에 대한 정부의 특혜지원 축소를 통해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 지난번 IMF 위기 이후 재벌개혁 조치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듯이 탈규제는 오히려 재벌의 독과점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이미 대학간의 서열이 상당히 굳어져있고, 대학간의 재정적 여건의 극심한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기능축소( 혹은 기여입학 등의 방법을 통한 대학 자율화)는 반드시 대학의 극심한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고, 그것은 몇몇 큰 대학만 살아남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경우 살아남는 대학은 우수한 교육서비스를 통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기득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고도 살아남게 되므로, 이 경우 살아남는 대학이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즉 대학의 질적인 향상을 수반하지 않은 채 독점, 과점 체제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대(국립대)에 대한 지원철회를 통한 경쟁체제 방법이 아닌 국립 혹은 공립 대학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미국식 사립대학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국립대학의 공공적 기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대학교육에 대한 비용은 전형적인 시장체제인 미국보다도 더욱 심각할 정도로 수요자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은 시장의 채찍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공성을 강화하되,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경쟁을 통해서 질 향상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는 오히려 국립대학에 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한 학생들이 더 많이 진학을 하고, 사립대학에 더욱 가난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 계층별, 부문별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주립대학보다도 한국의 국립대학들이 더욱더 시험을 통한 경쟁( 그것이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다)에 기초하여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중등교육의 파행, 대학의 연구와 교육 질 저하는 모두 잘못된 대학서열구조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서열구조는 중고등학교까지는 평준화되어 있으나 대학은 서열화되어 있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특히 단극적인 대학서열구조를 없애고, 대학간의 경쟁을 통한 대학의 질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울대 학부폐지, 국립대 평준화/특성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전국의 국립대학을 하나의 대학으로 통합하고, 교수와 학생의 이동의 문호를 넓혀놓음과 동시에 자기 출신지역의 국립대학을 진학할 경우 일정한 정도의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등록금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 한편 모든 국립대학은 평준화 상태에서 특성화의 길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예를들면 충남대학교는 대덕단지와 연계하여 자연과학 기초과학 분야를 특성화하고), 교수들의 이동을 통해서 대학이 보수화 폐쇄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국립대학은 학부, 혹은 학과별 평가를 매년 실시하여 지원을 차등화 할 수 있고, 이러한 지원의 차등화를 통해 특성화와 질 경쟁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대는 당장 시장의 수요에는 부응하지 못하지만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분야, 그리고 인문학 및 자연과학의 기초분야 등을 중점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사립대학에서 위기를 맞는 이들 분야의 교수와 학생들을 국립대로 이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립대 전형에서는 지역출신자, 계층별(농민, 노동자 출신), 경력자( 사회경험을 가진 사람) 할당제를 실시하여 국립대 본연의 설립취지를 살리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것은 지방대학의 위기를 막고, 국립대의 본연의 기능을 살리며, 나름대로의 경쟁를 통한 특성화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각 지방의 국립대 졸업자, 그리고 그 지방의 사립대 졸업자에게는 지방자치 단체에서 인원 선발시 약간의 할당제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 할당제가 시장적 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와 같이 지방대학이 존폐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지방대학, 지방 국립대학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울대의 학부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대는 학벌주의/대학 서열구조의 정점에 위치에 있는데, 이것은 서울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단극체제와 과도한 학벌경쟁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울대의 학부는 폐지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대학원 대학으로 육성하되, 단지 현재의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예술계 등의 응용분야는 분리하고 기초학문 분야만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대가 대학원 대학으로 될 경우 대학의 서열화가 대학원의 서열화로 이전될 것을 우려하는 경향도 있지만 그것은 기우이다. 우선 전문대학원을 분리할 경우, 서울대 대학원은 이제 간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학문활동에 뜻을 둔 학생들만이 진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 입시 역시 필답고사 방식보다는 학부에서의 논문, 학문적인 활동 등을 기초로 선발하면 되므로 서열화의 폐해가 대학원으로 이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국립대가 평준화되고, 서울대의 학부가 폐지되어도 사립대학의 서열구조는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고, 사립대학 중의 하나가 서울대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학부폐지가 갖는 상징적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서열구조 하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사립대학들이 본격적으로 교육에 투자를 하여 신흥명문으로 상승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립대학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거나, 등록금을 자율화하자는 요구는 당장은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러한 제도를 허용할 경우 결국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이 돈을 독식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대학의 양극화, 서열화, 수도권 대학의 독점 체제를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은 대학이 스스로 혁신을 통해서 자기발전을 도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정규모가 튼튼한 수도권의 대학과 나머지 사립대학과의 공정경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열화를 완화시키거나 질을 향상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와 같이 자생력 없는 사립대학의 난립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사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고, 국가의 지원은 현재와 같은 대학평가에 기초하기보다는 대학간 통폐합과 컨소시엄 구성을 유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오래되고 규모가 큰 사립대학의 독점구조를 강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생사립대학들이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대학간의 연계망 구성, 교수와 학생 이동, 도서관과 학교시설 공유, 학부 및 대학원 공동 학위제 등을 통해서 대학간의 통폐합과 연계체제 구축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대학간 학점 교류제도는 대학별 행정편의주의나 유인동기가 결여되어 있어서 제도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인근대학간에 이러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와 같이 자생력없고 학생의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사립대학의 난립은 대학교육의 미래를 암담하게 할 따름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사립대학의 특성화와 등록금 자율화를 통해서 일부 사립대학이 스스로 우수한 대학으로 발전해가려는 전략을 취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는 고등학교의 자립형 사립고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오늘의 대학서열화는 중앙집권국가의 관료제적 교육통제인 획일화된 수능시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비고사보다는 본고사가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던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여러대학이 나름대로 특성있는 학과를 자랑하고 있었다는 점(건국대의 축산학과, 서울시립대의 도시행정학과, 항공대 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입시로 졸업이 보장되고, 또 이후의 삶이 거의 결정되는 현재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현쟁 대학입시 제도를 다양화하는 방식(수시모집, 특별전형 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선 전국의 학생들을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하여 그들을 서열화하는 수능시험 제도는 자격시험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의 전형은 대학의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대학자율 혹은 본고사의 도입이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앞에서 말한바 국립대 평준화/서울대 학부폐지 등의 제도적 변화를 수반하는 조건에서라면 입학 전형을 대학으로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와 같은 국가주도의 평가체계는 대학 및 고등학교 자체평가체제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고 있는데, 전국적인 수능을 실시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대학과 고등학교로 이전하여 대학과 고등학교가 자체의 평가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 한번의 대학 수능시험이 거의 장래를 결정하는 이러한 잘못된 평가체제는 국가주도의 획일적 평가 외에 학생 및 신입사원들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데 기인하고 있다. 기업은 자신이 투자해야할 평가 시스템 개발을 국가에 의탁하고 있어서 수능시험의 성적( 대학의 간판)을 가장 신뢰할만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가 상급학교를 위한 준비기관의 성격을 벗어던지고 독자적인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신뢰성 있는 평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학급당 학생수를 더욱 줄여서 학생들의 모든 학생들을 교사들이 면밀하게 관찰하여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평가를 위해 수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평가권을 갖게되면 초기단계는 다소 혼란이 있겠지만, 대학에서 그들의 평가를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여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고,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입학 시점의 성적이 장래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고, 대학을 학문하는 곳,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입학의 문호를 넓히되 졸업의 문호를 좁혀야 한다. 1982에서 1987년까지 실시된 졸업정원제는 실패하였다. 당시의 졸업정원제가 실패한 이유는 우선 도입과정에서 학생운동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대학의 서열구조가 엄연히 존재하고, 일단 입학한 명문대학을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사활적인 요구를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절대시하는 학부모가 존재하고, 탈락한 학생이 다른 대학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단 정원 외로 입학한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국립대 평준화와 학생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조건이 마련된다면 졸업정원제를 다시 고려해 볼 수 있다. 유급제도도 활성화하여 대학에 들어와서 전공공부를 하지 않고, 오직 간판만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설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대학평가는 대학단위의 평가보다는 학과단위의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평가는 현재와 같이 대교협 등의 기관보다는 민간에 의존하는 것이 좋은데, 예를들면 중앙일보에서 시도하는 등의 평가를 보다 본격화하여 언론사와 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현재와 같이 서열구조가 고착화된 경우는 별로 의미가 없다.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앞의 조건들과 수반하여 학과별, 학부별 평가를 시도하면 대학들도 자기 학교에서 우수한 학과를 많이 보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대학의 특성화가 진척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도 이러한 민간차원의 평가를 사원을 뽑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4. 기타 논의
국립대 평준화/서울대 학부제 폐지/사립대 컨소시엄 유도/졸업정원제로 집약되는 이러한 방안이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른바 '대학의 경쟁력 강화', 국제적 수준의 '엘리트 교육'을 어렵게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서열구조가 나름대로 우수한 학생을 한곳에 모아서 엘리트 교육을 가능케해 준다는 부당한 전제 위에 서 있다. 현재의 대학 서열화 구조 하의 대학교육은 단시 수능시험 우수자를 한곳에 모아둔다는 의미 외에, 이들에 대한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현재의 한국 대학에서는 공급자의 교육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오직 입학생의 성적이 대학의 서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이 육성되기 위해서는 대학이 연구하는 곳이고 교육하는 곳이어야 한다. 현재의 대학은 연구하는 곳도 교육하는 곳도 아니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연구와 교육이 실종되어 있다. 학문은 주로 수입되고 있으며, 교육은 학점부여를 위해 극히 형식적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대학서열화는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교수들의 연구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어떠한 순기능도 없다.
오히려 대학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고등학교 교육도 정상화시킬 수 있고, 망국적인 학벌주의를 없애는 조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만약 국립대가 평준화/특성화되고 사립대학이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그 중에서 진정으로 세계적인 대학이 만들어질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약간의 혼란과 진통이 있을 수 있다. 기업 측으로 본다면 인재 선발에서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대학 자체의 평가기준, 기업자체의 평가기준 확보를 통해서 극복되어야 하지 언제까지 국가가 실시하는 수능시험에 기초한 평가에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혼란을 이유로 서열화 극복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학벌주의 극복/대학서열화 극복은 국가적 대 사업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제도의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인재등용 체제의 변화,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체제의 변화를 수반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것은 철학적으로는 교육에서 '시장원리'의 적용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야하는가의 논란으로 집약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시장 논의 이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지난 50여년 동안의 국가관리 교육체제 하에서 형성된 잘못된 서열구조이다. 조선시대 말기의 문벌주의, 씨족주의가 결국 조선을 붕괴시키고 일제 식민지로 전락시켰듯이 한국의 학벌주의도 한국사회를 정체시키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망국병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문벌주의의 수혜자가 개혁을 반대했듯이 오늘날 학벌주의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의 반대를 물리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반대를 물리치지 못할 경우 70% 이상의 국민들은 계속 낭비적인 교육투자에 내몰리고, 열등감과 좌절감을 갖고서 살아가야 한다. 한국사회의 혁신의 고리가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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