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허 열 웅 “실례지만 부부세요, 아니면 혹시...” 며칠 전 식당에서 아내와 갈비를 굽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고기를 뒤집어주면서 슬쩍 떠보는 눈치로 묻는다. 새로 개업한지 일 년 쯤 되는 깔끔하고 음식 맛도 좋아 주말에 자주 들러 외식 하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내가 일찍 출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므로 내가 전업주부가 되다시피 생활하는 관계로 밥하고 설거지하기가 귀찮아 밖에서 자주 사먹는 편이다.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질문에 아내는 “아니 그러면 우리가 불륜으로 보인단말입니까?” 하며 기분이 몹시 상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게 아니라 저도 장사를 십년 넘게 하다 보니 눈치가 구단쯤 되는데 두 분은 구분이 잘 안돼서요,”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말입니까 하며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조금 위축된 표정으로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부부일 경우는 고기를 주문할 때 비싸지 않은 메뉴로 적당한 량을 부인이 주문을 해요, 그런데 불륜은 남자가 값비싼 메뉴로 시키거든요, 그것도 넉넉하게요, 또 먹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어요, 부부는 말없이 열심히 먹기만 하는 데 불륜은 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대화를 하면서 오래 먹어요, 그 것 뿐인 줄 아세요, 부부는 바삐 먹고 나서 대개 돈 문제나 자녀교육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고 서로 비난하거나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좀 커요,
반면에 불륜커플은 문학이나 영화, 친구이야기를 하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띠며 목소리가 조용하고 부드러워요, 아주 결정적으로 알 수 있는 게 뭔지 아세요? 부부는 저 먹기 바쁜데 불륜은 상추에다 고기를 싸서 서로에게 먹여줘요, 술잔으로 건배도 자주하고요, 그러다가 계산할 때 보면 더 확실해요, 부부는 여자가 영수증을 꼼꼼하게 살피는데 불륜은 남자가 영수증을 대충보고 호주머니에 구겨 넣어요. 늦은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으나 주인아주머니가 다른 테이블을 도와주기 위해 창 쪽으로 가버렸다. 아내와 나는 마주보며 서로 다른 어떤 묘한 감정에 빠졌다. 의무적인 부부처럼 건조하지도 그렇다고 불륜처럼 다정하지도 않은 경계인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깨기 위해 지부지처(지가 따라서 지가 처먹는 것)하던 소주잔을 아내에게 내밀며 ‘한 잔 따라봐, 우리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불륜처럼 행동하며 살면 안 될까?’ 하며 넌지시 던져보았다.
아내는 마뜩치 않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그래 볼까’ 하며 빙그레 웃는다. 그 동안은 반주를 할 때 마다 많이 마시지 말라는 잔소리만 할뿐 술 따라주는 것에 관심도 없었는데 오늘은 잔이 넘치도록 따라준다. 불륜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어그러지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그것이 이성을 향한 달콤한 유혹에 탐익 할 때 죽음보다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고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다. 불륜의 어떤 아름다운 환상도 필연적으로 환멸이 되고야 말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다만 살아가는 그들의 행동은 본받아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부부로 맺어진다는 것은 전생에 몇 억겁의 인연이 쌓여야 된다고 한다.
지난 해 23만 쌍이 결혼을 하는 사이 7만 4천 쌍이 이혼을 했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조사결과 결혼 20년 이상 황혼이혼이 결혼 4년 미만 신혼이혼을 앞질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혼전문 변호사가 호황을 누리고, 이혼전문잡지도 판매부수가 계속 늘고 심지어 이혼전용예식장이 여러 곳에 생겨난다고 하니 참으로 황당하고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혼 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성격 탓이라고 한다. 세상에 나와 똑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부부끼리는 이 당연한 진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원초적으로 남녀는 생각하는 기본개념이 다르다. 신혼여행가서 아내는 낭만적인 미래설계를 원하는 데 남편들은 여기 땅값이 얼마나 될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보완하며 살라는 의미로 남자와 여자를 구조는 물론 성격도 다르게 구분하여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만나 차이점을 이해하며 살라는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며 못마땅한 결혼생활을 ‘네 탓’으로 돌리지 않고 ‘쿨’하게 내 성격 탓으로 인정하면 이혼이 많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 동안 유교사상의 맥이 흐르고 있던 우리 어른들의 결혼생활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했지만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를 감싸 안을 아량이 도사리고 있었다. 때로는 자존심을 세워 상대를 헐뜯기도 했지만 그 뿌리는 사랑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지금은 이런 이심전심도 필요하지만 진솔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도하고 가끔 다정다감한 스킨쉽도 있어야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에 선물도 서로 챙겨주고 문화 활동이나 운동 등에도 함께 동참하여 대화의 공통분모를 소유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아내들이 겪어야하는 갱년기의 흔들리는 중년을 잘 견디고 넘을 수 있도록 남편들이 도와야 무사히 노년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식이 아무리 효자라도 속 썩이는 남편이나 아내만 못하다는 게 현실이다.
서로를 참아내지 못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상, 끝까지 믿고 의지할 곳은 부부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늙고 병든 후에야 깨닫고 있다. 이런 후회는 부고가 죽음 뒤에 오듯 항상 돌이킬 수 없을 때 뒤통수를 치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동안 아내와 외식을 할 때 소주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고 남기고 나왔는데 그 날은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이제껏 못 다한 이야기를 오손 도손 나누었다. 부부로 맺은 인연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변치 말고, 일상생활은 불륜처럼 다정다감하게 살아가야하겠는 생각을 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식당 문을 나오니 마음이 상쾌하고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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