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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 하시다
창세기 39:1~23
성경을 읽어보면 한 사람의 전 생애를 한 마디로 집약해서 말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에 대한 것을 기록했는데, 사도행전 7장 9절에 스데반이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모세에 관해서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신약 성경에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을 보고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혹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됨과 생애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그 사람의 외모에 치우쳐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사람을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신 바와 같이 실제적인 요셉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일생을 생각하면 항상 형통하거나 행복한 형편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그와 항상 함께 계신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 사람을 볼 것 같으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이런 특색 있는 모습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 세상 위에 주가 되신 큰 요셉, 다시 말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부각시켜 줍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주님께 대하여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 관한 말씀과 동일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말로 표현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 성도들을 향한 축복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해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라고 축원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는 “주는 너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실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얼마나 고마운 약속입니까? 요한 웨슬레는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많이 있지만 이 약속보다 더 귀하고 좋은 약속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축복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까? 요셉이 어릴 때 하나님은 요셉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만년에 얻은 아들이었고, 또 요셉에게 좋은 성질이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몹시도 사랑했습니다.
요셉이 17세가 되기 이전에 벌써 하나님은 깊은 밤 꿈속에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의 이 꿈 때문에 그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고 그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젊었을 때 하나님과 은혜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한없는 축복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 그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어려서부터 거룩한 아이가 아니었다면 은혜로운 사람이 되지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요셉이 어릴 때부터 그의 형제들과 다른 사람이 되게 했고 그의 전 생애가 그들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은혜가 넘쳐흐르는 사람이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아침에 주님과 함께 한 사람은 종일 주와 함께 동행하고 또 황혼의 시간에 이르러서는 고요히 평화롭게 주님과 더불어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가정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 후 강제로 집을 떠나게 되어 사랑하는 아버지와 생이별하게 되고 멀고 먼 나라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그를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족장들이 시기로 인하여 요셉을 애굽에 팔아먹었지만 주께서 그와 함께 하셨으며 요셉이 팔리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그를 지키시며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사람 이하의 잔인한 대우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부친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깊은 신앙심으로 요셉의 마음은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돈 주고 산 집 주인도 요셉의 아름다운 인격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성실성과 고결함과 온유함은 그의 주인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업체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이와 같은 위치에서 일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서운 시험을 받았습니다. 젊은이로서 정말 이기기 어려운 시험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생존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으셨으면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가정에서는 사랑을 독차지한 귀염둥이에서 노예로 팔려 가게 되었고 그리고는 노예에서 시험받은 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험을 잘 이기었는데 결국은 이제 한 죄수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감옥은 살기에 편한 곳은 못됩니다. 그러나 옛날 감옥은 문자 그대로 토굴이어서 몸에 얼마나 해로웠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신의 무죄함 때문에 고난 당하는 일을 분명히 비참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처럼 순박하고 순결한 젊은이 요셉으로서는 차라리 전갈의 독침을 맞고 죽는 것이 그런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 나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둠침침한 토굴 감옥에 앉아 있을 때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외부적인 신분은 죄수였지만 그의 거룩한 동행자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불행을 당한다고 해서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아니, 그의 사람이 억울하게 핍박을 받을 때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기뻐하시면서 그들의 비참한 처지에서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친절한 태도, 온유한 성품, 신실한 성격이 전옥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그 감옥 안에서도 다시 높임을 받아 모든 죄수들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가는 곳마다 왕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감옥의 왕국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관할하는 감방에 수심에 가득 찬 두 사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항상 온유한 성품에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꾼 꿈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그 자리에서 해몽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지혜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그를 더욱 높이게 했습니다.
17세부터 30세까지 13년간이란 긴 세월 동안 요셉이 겪은 어려움은 이로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 청년으로 우상이 가득한 궁전에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대한 증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참신이신가를 증거하는데 조금도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요셉은 말했습니다.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말을 통해 참으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음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드디어 요셉은 전 애굽의 통치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바로 왕은 큰 깨달음이 있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하면서 놀라워 했습니다. 인류가 기근으로 인하여 멸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요셉과 함께 역사하셨기 때문에 풍년이 드는 해에 곡식을 저장하는 그의 경제정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바로 왕은 요셉을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해 주었고 요셉은 바로를 부강케 했으며 또 동시에 한 나라를 기아로부터 구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이 자기의 부친과 가족을 애굽에 오게 해서 고센 땅에 머물러 살게 하는 데도 함께 하셨고, 그가 임종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항상 떠나지 아니하셨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하기까지 하나님은 늘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가령, 요셉이 시험받은 일을 생각해 보세요.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보디발 장군에게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이 여인에게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처럼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오직 범죄한 사실을 하나님께 인정한 것처럼 요셉도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유혹하는 여인에게서 도망치면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범죄합니까?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으로 여겨져서 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마음이 깨끗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요셉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늘 근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으므로 그는 그의 외적 환경이 어떠하든지 선한 일을 착수하였습니다. 그는 캄캄한 구덩이에 빠져 있었지만 그 구덩이도 그를 두렵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노예로 끌려가면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 대상들 사이에서도 조금도 위험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 환경의 변천이 있었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만 충실했고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는 이렇게 부당하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닙니다.” 하면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변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므로 다가오는 모든 운명에 순응하여 기꺼이 일하러 갔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집에서 가장 천한 일을 했겠지만 나중에는 가정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신령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말단 직책에 한숨을 내쉬지 아니하고 그가 처한 형편이 어떠하든지 불평 없이 응했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거기서 충성했습니다.
물론 요셉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절망에 빠져 기력을 잃지 않고서 괴로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그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비탄에 빠져 애통하지도 않았고 보디발에 대한 고소장을 쓰느라 공연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보디발에게 변명하며 애걸복걸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고 바로가 온 애굽의 통치권을 그에게 부여했을 때 요셉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는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지 아니하고 직접 자기 자신이 일에 착수했습니다.
창세기 41장 45절에 “요셉이 나아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했습니다. 그 다음절에 보면 “그가 바로 앞에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했습니다. 총리의 직책을 맡게 되자 즉시 그 직무에 몰두해서 전국을 순찰하러 나서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친히 전국을 다니면서 곡식을 저장할 창고를 건립하고 곡물들을 거둬들이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의 놀라운 경제정책으로 인해서 온 국민들에게 기근의 때를 면케했고 바로의 권력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자신이 누리게 된 명예에만 현혹되지 않았고, 자기에게 부과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오직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대업을 거머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생활 모습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또 하나의 증거는 요셉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것은 요셉의 깊은 침묵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비행에 대해서 요셉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위해서 그녀의 나쁜 소행을 밝힐 수도 있었겠지만 요셉은 그 여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어도 그대로 두었고 그 여자의 양심과 그 남편의 냉정한 판단에 모든 것을 맡겨 두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요셉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남자는 자기의 명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훑어보아도 그가 불평의 말을 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비록 몸과 마음은 괴로웠겠지만 그런 말을 입밖에 한 마디도 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팔아먹은 그의 악한 형들이 자기 앞에 섰을 때도 그들을 한 마디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면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이 태도는 남을 엿보고 다니며 약점이나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 일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조그만 허점 하나를 발견만 하면 “자, 보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구요” 하면서 떠들어 댑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세상에 흠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의 눈에는 들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남의 결점을 잘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와 같이 모가난 사람입니다. 저는 남의 결점을 잘 보는 눈을 가지고 남을 나쁘게 평가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의 결점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요셉처럼 지혜로운 침묵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불평하지 마시고 삽시다. 환경이 나쁘다면 요셉 이상 나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입에서는 불평 한 마디 나온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시는데 그가 거기서 불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얻어진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미움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세상은 오히려 그를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그가 시험받는 대상에서 면제된 것도 아닙니다. 요셉이 당한 시험은 정말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가장 선한 사람은 가장 악한 시험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비방 받는 일을 막아 내지는 못했습니다. 요셉은 섹스 스캔들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악한 여인이 요셉을 모함했지만 보디발이 거짓말을 믿게끔 하나님은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요셉은 누명을 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요셉의 고통을 덜어 준 것도 아닙니다. 넝마를 걸치고 토굴로 된 감옥에서 고통을 당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처럼 모든 일이 불행스럽게 진행되는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에게 어떤 좋은 결과를 주셨습니까?
요셉은 큰 죄악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고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영광스러운 삶을 영위했고 놀라운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요셉의 위대한 가슴은 온 인류를 끌어 안았습니다. 히브리 청년이 큰 나라의 식량 정책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일생을 되돌아 볼 때 그가 불행하게 산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생애는 길이 빛나고 위대한 그리고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 이와 같은 삶의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