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10. 충북지구 청주교회 활동과 부흥 - 1 1 충북지구장으로 시무하고 있던 남편은 교회 행사 참석 차 상경하여 태어난 지 보름 지난 딸을 처음 보았다. 행사 후 다시 급히 청주로 내려갔다.
2 시집에서 아기 100일이 될 때까지 있다가 청주로 내려갔는데, 예배실 한 칸이던 청주교회는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딸린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3 당시는 나라의 경제도 어려웠지만 교회 살림은 더욱 어려워 아기가 아파도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었다.
4 어느 날 아기가 너무 고열에 시달렸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친정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며 늘 지니고 다녔던 시티즌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들고 갔다.
5 결혼 패물조차 없었던 우리는 전당포에 들고 갈 수 있는 물건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50원을 받아 병원에 갔는데 그 후로도 형편이 못되어 시계는 찾지 못했다. 6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교회 살림을 맡아주셨던 이상분 집사님(현재는 권사님)은 잊을 수 없는 가족 같은 분이었다.
7 첫아이 다음에 춘숙, 훈숙, 진구가 연년생으로 계속 태어났지만 이유식도 없어 밥알이나 미음 정도가 고작인 형편에 배가 고파서 보채기도 하는 아이들을 같이 돌봐주시며 청주에서 8년을 사는 동안 힘이 되어 주셨다. 아이들이 ‘집사님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제2의 어머니 역할을 해 주셨다.
8 또한 지구본부의 여러 부장들과 사업 대원 언니들, 청주교회 식구들과 수많은 지구 수련생들을 뒷바라지하는 데도 같이 헌신해 주셨다.
9 지구본부에 상주하던 헌신 요원들은 지구수련회가 계속 실시된 덕분에 식생활에 도움을 얻었고 그때마다 수련생들의 취사 책임을 늘 집사님께서 맡아 헌신하셨다.
10 그러면서 식구들과 지구 발전을 위한 기도 생활에도 정성을 들이신 청주교회 초창기의 주춧돌 역할을 하신 식구 중의 식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