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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부 인간은 오랜 기간 그 어떤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가장 활기차 있다.
영원한 인간사랑 ・ 2022. 12. 4. 2:10
30부
인간은 오랜 기간 그 어떤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가장 활기차 있다.
1. 쿠빌라이 칸이 아무도 모르게 마르코 일행의 주머니에 루비와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넣어줬든 것이다.
콜린 윌슨의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A Criminal History of Mankind)를 따라가 보자.
쿠빌라이칸이 몽골 제국의 패권을 장악하던 해에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의 부친과 숙부가 15세의 소년 마르코를 데리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슈가르에 도착하였다.
마르코는 17년간 쿠빌라이 칸을 섬겼다.
폴로 일행이 귀국원을 제출하여 쿠빌라이의 허락받았다.
일행이 베네치아에 도착하기 전 해에 쿠빌라이칸은 죽었다.
마르코는 귀국 후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였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그 남루하고 더러운 옷을 가져와 대 위에 펼쳤다.
그리고는 꿰맨 실을 뽑았다.
『거기에서 루비와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쏟아졌다.
쿠빌라이 칸이 아무도 모르게 마르코 일행의 주머니에 넣어줬든 것이다.』
2.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그녀의 자매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제인 에어의 작가를 언니로 두고 평생 동안 한 작품을 써서 명작으로 남긴 여인, 에밀리 브론테 그녀를 기념하여 수리철학의 단편을 기술하려고 할 따름이다.
영국의 소설가 자매로 유명한 브론테 자매는 3녀인 샬롯 브론테, 4녀인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 5녀인 앤 브론테를 말하는데, 야구경기로 말하면 3. 4. 5번의 트리오에 해당한다.
따라서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그녀의 자매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1845년 가을 샬롯은 에밀리가 미처 간수하지 못한 시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감명을 받아 발표할 것을 권했다.
샬롯의 끈기 있는 설득으로 1846년 세 자매의 시를 모은 시집 커러, 앨리스, 액턴 벨의 시집 을 자비로 출판하였으나 2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1847년 샬롯 두 번째 소설 제인 에어가 런던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미스의 눈에 들어 12월에 출판되어 큰 반응을 얻은 데 자극을 받아 뉴비 사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과 애그네스 그레이를 출판했다.
그러나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그 당시 너무나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을 받았다.
제인 에어로 성공한 스미스 엘더 사에서 세 자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불우했던 브론테 가에 행운이 찾아오는 듯 했다.
1848년 9월 재주는 출중했으나 술과 아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한 오빠 브랜웰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심신이 허약했던 에밀리는 오빠를 잃은 충격과 장례식 때 걸린 감기 때문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해 12월에 거실 소파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3. 미국(1692)의 마녀사냥의 주관자는 새뮤얼 파리스라는 목사였다.
미국 매사추세츠 동부의 세이렘이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미국의 마녀사냥의 대가로 불린다.
그런 류의 목사들은 대체적인 성향은 신경질 적이고, 천국에 가기로 예약이나 한 것처럼 다른 신도들을 악마처럼 대하는 습성이 농후하였다.
파리스의 사과와 같은 이 목사는 사람들이 자기를 피하는 것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는 티토바라는 흑인 하녀를 두고 있었다.
그녀는 바르바도스섬 출신으로 아프리카를 발상지로 하는 원시종교인 부두교를 믿고 있었다.
목자가 아닌 그 목사는 하녀가 아이에게 주문을 걸었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9세, 11세, 12세 의 세 딸들이 몸을 기묘하게 뒤틀면서 귀신이 자기를 꼬집는다고 말하였다.
구타를 당한 타토바는 자기가 마녀라고 자백하였고 그 외에 노부인들도 붙잡혀서 고문을 받게 되었다.
몇 개월 동안에 20명이 재판을 받아 처형되었다. 코레라는 남자는 무거운 물체에 의해 압사되었다. 그의 아내도 목이 졸린 채 살해되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세 딸들은 마법의 전문가로서 추대되었다.
그들이 자문한 앤도버라는 마을에서는 40명이 체포되었다. 치안판사자신도 마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마법의 전문가는 총독 부인을 마녀로 지목한 것이다.
매사추세츠의 총독은 인디언과의 싸움에서 돌아와 재판을 중지시키고 대부분의 피고를 석방하였다.
새뮤얼 파리스 목사는 가족과 함께 세일메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4. 마법 전문가 세 여인은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마법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다같이 400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파리스의 세 딸인 마법의 전문가들을 만나려가자. 아니다, 취소하고 보야이를 불러오기로 하는 것이 좋을 성싶다.
마법 전문가 세 여인은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마법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마법 공간은 크기도 위치도 무게도 없는 공간이 아닌 공간이다.
그런 공간은 유클리드 공준 5개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없는 것이 아니라 없다 것 자체가 없는 것에 해당한다.
유클리드 원론의 제1권에는 5개의 공리(공준)가 열거되어 있다.
그 중 제5공리는 평행선의 공리이다.
『한 직선의 바깥의 어떤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평행한 직선은 하나가 있다.』
이 공리는 다른 네 공리와는 달리 자명하지 않아, 이 공리를 다른 네 공리에서 유도할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 의문이 이어왔다. (평행선의 문제)
19세기에 접어들어, 가우스, 보야이(János Bolyai), 로바체프스키 등에 의해, 유클리드의 최초의 4개의 공리가 성립하면서, 제5공리가 성립하지 않는 기하학 체계(쌍곡기하학)가 구성되게 되었다.
제5공리를 가정으로 발전된 기하학(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하여, 쌍곡기하학 처럼 최초의 4개 공리는 만족하나 제5공리를 만족하지 않는 기하학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부른다.
5. 기원 400년경에 중국에서 온 여행자는 일본인을 왜인(倭人) 이라고 불렀다. 몸집이 작은 종족이라는 뜻이다.
콜린 윌슨은 1931년 6월 26일 영국 레스터(Leicester) 지방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24살 때 역사속의 이단아들과 그들의 철학을 평가한 [아웃사이더]를 발표, 토인비 등 당대 석학들의 서평으로 극찬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윌슨의 명저들을 따라 역어보았다.
기원 400년경에 중국에서 온 여행자는 일본인을 왜인(倭人) 이라고 불렀다.
몸집이 작은 종족이라는 뜻이다.
일본 땅은 중국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만의 특성도 많이 있다.
신도(神道)라는 기본적으로는 자연숭배의 한 형태인 단순한 종교를 믿고 있는데, 기창조성에서는 일본인이 중국인보다 다소 떨어진다.
일본인은 침착하고 조용한 민족이다. 그래서 이웃의 난폭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이웃의 난폭한 정복자 쿠빌라이 칸은 조부 칭기즈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기울였다.
그는 일본 정복까지 시도하였다.
1274년 몽골 함대가 규슈 북쪽의 하카다만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무사단은 배멀미로 아직 다리를 휘청거리는 몽골군에게는 너무도 강하였다.
몽골족은 중국에 오기 전에는 바다를 본 일조차 없다.
고려는 40여년간 대제국 몽골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몽골에 항복을 하게 된다.
고려를 반식민지 상태로 만든 몽골은 마지막 남은 땅인 일본을 점령하기 위해 일본원정을 계획하였고 『정동행성』을 설치해 일본원정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은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1차원정은 1274년 10월에 이루어졌다.
8천 여 명의 고려군과 2만5천여명에 육박하는 몽골군은 9백여척을 동원해 정벌에 나서 대마도와 이키섬을 점령하였으나 태풍 때문에 실패하였다.
6. 병사들 중에서 체력이 있는 자는 헤엄쳐서 배로 돌아가 본국으로 도망쳤다.
여몽연합군의 1차원정 7년 후 14만 명의 몽골 대군이 다시 일본을 엄습하였다.
그러나 지난번과 같은 만으로 상륙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일본 측은 그 사이에 하카다만에 견고한 방벽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다.
몽골의 대군은 이 만에서 오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태풍이 불어 닥쳤다.
함대의 절반이 가라앉고 몽골군의 사기는 순식간에 시들었다.
병사들 중에서 체력이 있는 자는 헤엄쳐서 배로 돌아가 본국으로 도망쳤다.
나머지는 일본의 무사단에게 살해되었다. 절반만이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고려는 1281년에 이루어진 2차원정에서 4만명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두 번 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 건가?
아니면 도착해서 상륙하고 싸우러 가다가 일본군한테 백병전에서 밀려서 후퇴하고 배안에서 정박해 있다가 태풍만나서 전멸했다.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강대한 쿠빌라이 칸은 죽을 때까지 13년간 중국을 계속 지배하였다.
쿠빌라이가 죽은 지 겨우 74년 뒤에 칭기즈칸의 위대한 제국은 드디어 소멸되었다
7.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인간을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동물로 만들었다.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말하고 있는 패러독스이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홀려 있는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다. 성공하여 안락해지면 그때가 인간으로서는 최악의 때이다.』
로마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에 대한 에피소드는 「페르시아인 몇 사람이 왕에게 이렇게 진언하였다」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살기 좋은 따뜻한 땅으로 옮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자 키루스 대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온화한 땅은 인간을 유약하게 만든다.』
필자와 함께 콜린 윌슨의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를 따라가 보자.
토인비의 인류의 역사를 큰 패러독스는 아래와 같다.
토인비에 의하면 본능적으로 그는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느낀다.」
열차가 떠난 뒤 플랫폼에 홀로 남겨진 승객과 같은 느낌이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인간을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동물로 만들었다.
8. 실존은 주체성이다.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이다.
실존철학이란 인간이 자기초월에 의해서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이요, 위기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본래적 자기를 되찾으려는 자기회복의 철학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에서 인간의 실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다른 하나는 실존은 주체성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게 되어있다.
잠시 후에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이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실존은 주체성이다.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이다.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이다.
9. 미국은 학년 전담제와 교과 전담제를 실시하여 교육과 관리를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미국 교육 현장과 우리 교육 현장은 큰 차이가 없으나 있다면 학년 전담제와 교과 전담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담제는 교과과정 운영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교사들에게 교과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많이 부여하고, 매년 학습 자료와 학습 지도 경험을 측적해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국의 교실환경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년 전담제와 교과 전담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료 구입비를 행정기관이 아닌 교사 개인별로 주정부에서 지급받고 있다.
그러므로 교과 운영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기구나 재료를 적절하게 직접 구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관료들로부터 학습요건 조성을 위한 경비를 지급받는 관료주의적인 행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교육과 관리를 엄격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운영 책임자의 수당이 200$이고 교과운영 교사의 수당이 150$이라고 하면, 운영자는 수업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학교 운영자의 급료가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보다 적은 것으로 되어있다.
10.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교원에게는 학생들이 낸 수업료를 지급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대학도 일본과 같은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교원에게는 학생들이 낸 수업료를 지급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연구비를 많이 지급받는 교사나 교수는 법적으로 주어진 한도 내에서 일종의 급료를 지급받으면 충분하다.
실제로 한 강좌도 강의를 하지 않는다면 강의료의 일정부분은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을 이어가면 일 년간 출장으로 강의를 하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강사료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것이다.
1. 활동 중심의 교육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소집단 활동과 개별 활동을 전개하는 교수-학습이 강조되고 있다.
2. 실생활의 학습 소재를 학습에 끌려 들여 흥미를 주는 생활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3. 교과 과정의 운영에 대하여 교사들에게 상당히 많은 자율권이 주어지고 있다.
4. 컴퓨터와 계산기를 수업 시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5. 학생의 개인차를 고려하여 개별화 학습 지도를 지향하고 있다.
6. 지역 사회 여건과 학교에 따라 차이가 많고 교사의 개인적 성향이나 능력에 따라서도 학습 지도 방법에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면이 있다면 학생들의 활동을 강조하여 학생들 상호간의 질문과 발표가 매우 활발하였다.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여 풀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며,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계산은 계산기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