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007기 격추 사건의 뒷면
당시 최고 정상은 미국이 '로널드 레이건', 소련이 '안드로포프'였습니다. 레이건은 이 사건을 개기로 군사용으로만 쓰던 위성항법 시스템을 민간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시키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GPS인 것입니다.
당시 KAL 007 격추사건의 비행기에는 한국인 76명뿐 아니라 미국인 62명, 일본과 중국인 51명도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도 이것은 큰 문제였어야 했는데, 그에 비하면 국제적 비난은 약했습니다. 뒤로 군축 협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소련과 "핵개발 경쟁 억제를 위한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 군축 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 때문에 이 협상이 불발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 강력한 제재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현장을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그대로 묻혔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사과하고, 드디어 블랙박스를 전달했습니다. 이것으로 소련 KAL 007 격추사건의 진실이 드러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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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칼기 격추사건 - 소련의 KAL 007 격추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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