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출5:1-6:1)
갈등
1. 출애굽기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전락하고 세월이 가며 한숨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사람들이 고난이 와야 하나님을 찾아요. 예나 지금이나 공통언어입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 미리 하나님을 찾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네 인생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하나님께서 모세를 이 땅에 보내주셨어요. 그가 자라고 80세가 되어서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다가 순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외롭지 않게 말 잘하는 형 아론도 붙여주셨어요.
모세는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장로들-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4:29-31) 모세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 이야기를 장로들에게 말하고,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어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어요. 오늘 본문에 모세와 아론이 용기를 내어-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 황제를 알현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바로 왕이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광야로 보내주었습니까?
2.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무엇이라고 답했습니까? 2절,“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바로 왕의 말에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그는 먼저 여호와가 누구냐고 반문했어요. 애굽은 범신론-다신론을 믿었어요. 신들이 많았어요. 바로 왕이 여러 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여호와는 처음 들어보는 신이라고 답했습니다. 너희가 말하는 신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나는 이스라엘을 보내줄 의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왕의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3절,“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드리려 하오니 허락하소서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모세와 아론은 처음부터 바로 왕에게 출애굽을 요청하지 않았어요. 광야에 가서, 그 거리는 사흘 길 정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고 했어요.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전염병이나 칼로요. 이 순종은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바로 황제가 순종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3. 모세와 아론의 말에 바로 황제가 허락을 했습니까? 바로는 4-5절,“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기대한 바와 같이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어요. 바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문제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들에 불과했습니다.(노동력 착취)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접견하고 이스라엘의 노역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7-8절) 벽돌에 쓰는 짚도 주지 말고 그들 스스로 짚을 줍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고 했어요.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순종하여 바로 황제를 알현했는데, 이스라엘을 위해 도움은커녕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론도 그렇겠지만, 모세는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론은 모세 대신에 말을 전하는 자였어요. 아론은 모세만 바라보았어요.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시고 왜 이렇게 무력감에 빠지게 하셨을까요?
갈등 심화
4. 바로 황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어렵게 하자, 그들에게서 불평이 터졌습니다. 마땅히 거쳐야 할 상황이 벌어졌어요.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호소했습니다. 15-16절,“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십니까? 노동 여건을 어렵게 하고 동일한 제품 수를 만들어내라고 할 수 있습니까.”사람이 호소를 하면, 보통은 귀를 기울이기 마련인데 바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는 호소하는 이스라엘 기록원들을 향해서 화를 냈습니다.(17-18절) 너희가 게으르다. 너희가 게을러서 사흘 길이나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 너희의 노역 여건이 악화되었지만, 그래도 벽돌 수량은 전과 같이 바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기록원들이 바로 왕의 막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마침 모세와 아론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21절,“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우리가 너희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역에서 건지실까 기대했는데, 너희 때문에 우리가 바로 황제와 신하들에게 미운 물건이나 되었다. 너희가 우리를 애굽인들의 칼에 죽이게 하고 있다. 판단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를-모세와 아론을 벌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정이 고조되고 말이 거칠어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시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하셨을까요?
실마리
5.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바로 황제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가서 출애굽을 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큰 암초에 걸렸어요. 이 일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쉽습니까?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세상만사가 그렇게 쉬우면 인생이 뭐 어렵겠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바로 황제를 알현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부르셨고, 그에게 기적을 행한 일 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모세의 간증)
모세와 바로의 첫 만남은, 바로가 모세와 하나님을 더욱 경계하고 싸움 모드로 만들었어요. 바로는 이스라엘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모세의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22절,“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바로 왕은 마음이 더 완악해지고, 모세와 이스라엘은 큰 기대감에서 허탈한 심정으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6. 출애굽은 모세가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모세는 이미 40년 전에, 자신의 한계성을 경험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무기력하게 지내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바로 황제를 알현했지만, 다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좌절뿐이었어요. 이 상황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6:1,“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출애굽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하셨어요.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요.(3:19-20) 애굽으로는 가는 도중에도 또 예고해 주셨어요.(4:21) 하나님께서 바로 황제에게 강한 손-능력으로 재앙을 내린 후에야 출애굽이 시작됩니다. 출애굽이 일정 기간을 지내야 이뤄질 것입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모세에게 충분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을 읽고 전후를 알기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잘 알지만, 막상 당시 역사 현장에 있었던 모세와 이스라엘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복음 제시
7. 오늘 같은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연약한 피조물인 우리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보면, 마치 바로 황제가 승리자이고 모세와 아론이 패배자처럼 보입니다. 바로가 기선을 제압한 것처럼 보여요.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바로의 마음이 완악할수록 하나님의 손은 강하게-강한 능력으로 바로를 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7장부터 14장까지, 멋진 스펙타클이 이어질 것입니다. 어제 3년 만에 아내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코로나로 보지 못했는데, 어제 처음 시간을 냈습니다. 큰딸이 할인 티켓을 보내주었어요. 8,000원에 볼 수 있는 티켓.(요즘 여러 서비스가 다양함)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그린 영화, 한산-용의 출현. 바다를 배경으로 전투 장면을 잘 찍었습니다. 이순신 장군 이야기는 너무 잘 알고 익숙하지만, 이 멋진 승리의 장면을 TV 모니터로 보는 것과 영화관의 큰 화면과 음향 효과를 통해서 보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역사 현장에 있었으면, 더욱 신나겠지만요. 원균이 놀라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순신은 침착하게 작전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멋진 스펙타클을 충분히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강한 손-능력으로 바로를 상대하지 않아서 잠시 위축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소리 없이 역사를 이끌고 가세요.
기대
8. 우리가 오늘 본문의 상황 속에 있었다면-모세나 아론의 모습으로 또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가 되어-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좌절 속에서 끙끙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들과 오늘 우리의 차이는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강점이에요. 성경이 손에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차이가 큽니다. 또 성경을 제대로 읽고 알고 누리면 더욱 복이 있어요. 성경을 손에만 들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읽고 알고 누릴 수 있어야)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의 손에 있는 성경은 갈6:9,“우리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또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과정이 있습니다. 과정에는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기도 해요. 예상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계획과 꿈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모세와 아론,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려고 광야로 이끄셨고, 40년 동안 배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배움의 과정에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순종을 배우고... 그때마다 갈6:9, 시119:105을 기억하시면 큰 힘이 됩니다. 모세와 아론에게는 이 말씀이 없었어요. 이제 오늘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