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의 <날개>
이 책을 읽은 이유이기도 한 이 첫마디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책의 끝 이 문장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수 있었다.
보통 ‘박제한다’ 하면 죽은 새의 모양을 본뜬게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속은 아예 비워두고 겉의 아름다운 외형만을 남겨두는 것.
그런의미에서 더욱더 날지 못하고 세상에 의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비통한 최후를 말할려는건가?라고 짐작해보려 했으나
음…
난 솔직히 너무 뜬금없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왜냐하면 다시 날기를 바란다는 사람치곤 앞서 보여준 주인공의 모습들이 많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앞서 행적에 대해 한단어로 표현보자면 그야말로 ‘페인'이다.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는 몸을팔아 돈을 벌었고 주인공은 그저 자신의 방에 누워 아내가 주는 돈을 받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과 죄책감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햇빛 하나 들지않는 방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것 같다 말하고, 아내가 출근하자 아내의 방에가서 거울과,화장품으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밤에 혼자 밖을 나가지만 비를 쫄딱맞아 감기에 걸리고 돌아와선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할 뿐이다.
아 당연히 아내가 준 돈을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변기에 돈을 버리기 까지 한다..
아무튼 이런 이해하지 못할 행각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실 앞뒤 전후사정에 관한 이야기도 없어서 그저 내가 추측 해볼수 밖에 없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앞서 적었던 문장의 앞 부분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라는 말을 봐선 날개가 쭉있었거나 없었던게 아닌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듯 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이라는 문장을 보니
그 날개는 머릿속에 희망과 야심이 피었을때 같이 생기는것같다.
그래서 과거에 마치 날개같은 희망과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주인공?...이라기엔
도대체 어느부분에서.. ? 라는 느낌이라
이번엔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중해보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는 아내에겐 진심인듯 보였다. 아내가 오해할까 다른 여자와는 인사도 안하고, 자신의 아내가 가장 이쁘고,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조차 아름답다 말했다. 그럼 왜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가 그런 일을 하도록 왜 내버려두는걸까?
난 여기서 두가지의 추측을 할수 있었다.
첫번째, 아내가 무슨일을 하는지 진짜 모름
‘나는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왜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내가 왜 돈을 받는지 의문이다. 내 아내는 직업이 무엇일까?
책에서 적어도 세번 이상 나오는 문장이다. 그래서 나올때마다 의문을 갖게하는 문장이기도하다
과연 진짜 주인공은 아내의 직업을 몰랐을까?
아 참고로 주인공은 2층 그리고 아내는 1층에 각방 생활을 한다. 그리고 2층인 주인공방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1층을 거쳐 올라가야하는 구조이다.
앞에서 아내에게 돈을 주는 내객은 그야말로 아내에게 찾아오는 손님을 말하고, 그들은 자정이 되면 돌아간다.
그래서 밖을 떠도는 주인공은 자정이 넘어가는걸 확인하곤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걸 지키지 못한 날이 있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1층 아내의 방을 열었을때 주인공은 보게된다.
자신의 아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처럼 주인공은 그 현장을 바로 앞에서 보았다! .. 모른다는건 말이 안된다.
그럼 두번째 추측 , 남(?)이라 생각해서?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여기서 ‘미망인'이란 ‘남편을 여읜 여자를 뜻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여인은 본질적으로 미망인 이라 말하고있다. 뭐 어찌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이기전에 우리는 그저 한명의 사람이니. 특히 자신의 이름보다 ‘~의 엄마’ , ‘~의 아내’라 불리는 시간이 더 길었던 예전의 여자들에겐 더욱 말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또한 ‘미망인'이라 생각한것 아니였을까?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아내라기 보단 남편을 여읜 여자 라고 즉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죽어 이젠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이라 생각한것 아닐까?
그래서 방음도 안되는 밑층의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무슨일을 하는지 알고있지만 자신의 아내는 저 1층의 미망인이 아니기에 그저 자신의 머리맡에 돈을 두고가고, 밥을 차려주는 그 여인만이 자신의 아내라고 믿은것이다.
이 책이 수록되있기도 한 책 <한국단편문학선>을 다 읽진 않았지만 김동인의 <감자>나 이상의 <날개> 두 책 모두 주인공의 아내같이 몸을 파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은걸로 묘사된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저 ‘진짜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흔했기 때문에'가 아닐지 싶다.
이 책들이 쓰여진 때를 보면 1920년부터 시작된다. 즉 일제강점기부터 6.25를 겪은것이다.
전쟁이란 인간의 욕망이 낱낱이 보여지는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위선 따윈 없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보여진 그 상황 속에선 어쩔수 없는 일이였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첫과 끝을 장식하는 이 ‘날개' 즉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대해 다시 말해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날개'가 일제강점기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이라 하기도,
작가의 삶을 반영해 병들어 삶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도 다시한번 날아보려했던 ‘의지'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날개' 즉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는 주인공이 아닌 그의 아내와 그 시대 여자들을 가르키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안에 가지고 있던 꿈과 야심은 도려낸채
여자로서의 신체와 외향만이 박제되어
날개 한번 피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아내이기 전 미망인이였을 그녀들에 대해
어쩌면 천재였을수도 있었던 그녀들에 대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말해주고 싶었던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그런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날수 있길 바란다는 응원과 위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