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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성령 강림 주일)
민수기 7:1~3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하늘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교리 설교
김규태 목사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이천 년 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므로, 함께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자 이전과는 다르게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는 놀라운 부흥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존 웨슬리의 열정적인 복음 전도사역을 통해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던 영국 사회에 큰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웨슬리의 부흥 운동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세속화의 물결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많은 사람과 자본이 교회에 몰려들게 되었고, 교회는 처음에 가졌던 복음의 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19세기 미국교회의 영적 위기 속에서, 성결한 삶을 추구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여름이면 캠프를 열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일어난 웨슬리안 성결 운동이 한국에도 전파되어 조직된 교파가 한국성결교회였습니다.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성결 운동이 확장되어, 20세기 미국에서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오순절 운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고, 우리나라에도 오순절 운동이 소개되어 순복음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특별히 우리교회가 소속된 성결교단은 비슷한 기독교 복음주의 교단보다 ‘성령 세례’를 더욱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성결교회가 강조하고 있는 ‘성결’을 ‘성령 세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행전 1장 5절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오순절에 모였던 제자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성결교회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받았던 성령 세례를 ‘성결의 은혜’라고 해석하였습니다(행 2:1~4).
그래서 성결교회는 모든 사람을 중생으로 인도하고, 중생한 신자들을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인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성결교회가 중생한 신자들의 성결 체험을 강조하는 이유는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우리나라에 성결의 복음을 전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감동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남자건, 여자건, 유부남이건, 유부녀이건, 노인이건, 아이이건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있어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흰 옷을 입은 천사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까이 서 보았을 때, 그 흰옷들은 세탁이 잘 안 되어서 더러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고 것입니다. 당시 우리의 선조들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성결해 보이나,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근심, 걱정, 염려에 마음을 빼앗겨 거룩하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우리 선조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결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술과 담배, 놀음과 패싸움, 처첩과 음담패설 등 죄의 세력에 붙들려 성결의 능력을 잃고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이야말로 그 어느 민족보다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성결의 복음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제적인 죄의 세력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진실 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법적인 면에서의 ‘죄책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실제적인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구원을 받아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진실하고 친절하게 성경에 기록해 두셨던 것입니다.
성결의 핵심은 ‘성령 세례’입니다. 성결은 내 노력이나 내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이 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거룩한 삶이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하듯이, 성결 또한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가 중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중생한 후에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우리 속에 있는 실제적인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성령의 세례를 통해 성결을 체험한 신자는 삶 가운데 늘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 성결한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오늘 본문은 성령님에 대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1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오늘 본문은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낸 날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장막에 기름을 바르고, 장막 안에 있던 모든 기구와 제단과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장막에 기름을 바르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거기에 깊은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첫째로, 기름을 바르는 행위에는 ‘구별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막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장막의 소유가 거룩하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장막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과 장막에 기름을 부어 세속과 구별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기름을 바르는 행위에는 ‘권위 부여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거룩하게 하고, 그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출 40:13). 아론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는 그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론에게 부어졌고, 장막과 그 기구들에 발라졌던 그 기름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예레미야 31장 1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들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기름’은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제사장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매일 드리는 제사에는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도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매일 제사를 통해 자기 자신과 백성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하나님께 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앞에 나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예배만으로는 우리의 심령에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는 회개가 꼭 필요하지만, 그 회개만으로는 우리의 심령에 만족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름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제사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우리의 심령에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인생의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이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누릴 수 없는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 37절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외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는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29).”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들이 얻게 되는 ‘참된 만족’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 이러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형식적인 종교 생활 수준에 얽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회개만 한다고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회개하고,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의 참된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다양한 사역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귀한 사역들을 감당하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과 능력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4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설교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변이나 설득력 있는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설교를 듣는 청중의 처지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당연히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와 똑같이 말씀을 듣는 청중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말씀을 듣는 청중이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 진리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2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서 요한이 말하고 있는 ‘기름 부음’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성령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의 가르침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게 거하게 됩니다.
‘이롬생식’으로 알려진 황성주 박사는 2008년에 극심한 영적 침체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는 안식년 기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해외 사역에 너무나 많은 욕심을 낸 결과, 극심한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황성주 박사는 다른 한 분과 대화하던 중에 그분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성령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네 힘으로 뭐든지 다 하는데,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
황성주 박사는 그동안 건강과 청소년, 신앙에 관한 명 강사로 소문이 났고, 그 후 평신도 사역자로, 목사로 수많은 세미나와 집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책망을 듣는 순간, 자신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황성주 박사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고,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던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는데, 그제야 주님이 주시는 깊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영적 자만심으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에게 반드시 항복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연약한데도 자신을 크게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출처: 황성주, 「킹덤 드림」 (규장, 2010); 「생명의 삶」 (두란노, 2017년 5월 호), 109에서 재인용.
저는 오늘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성령님에 관한 주제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장막과 그 기구에 기름을 발라 장막을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또한, 모세는 아론에게 기름을 발라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할 권위를 부여하였습니다. 장막과 그 기구들에 발랐던 기름은 ‘성령님과 성령님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성결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 세례를 통해 성결하게 되고, 성령 충만을 통해 성결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성결케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성령님은 전도자에게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세상 곳곳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설교자에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역사하셔서 말씀을 듣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좋은 선생이 되셔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성령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인정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은혜를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시면 성령님은 여러분 안에서 거하셔서 여러분 안에서 놀라운 일들을 베푸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