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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예리 항, 열두굽이 고개, 상라산, 정약전 유배지 등)
떨어져 있어 옛날에는 많은 인물들이 유배생활을 하던 섬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이자 조선후기 문신인 정약전(丁若銓) 선생은 유배생활 중 15년간의 노력으로 어류도감인 ‘자산어보’를 남겼고, 유배지였던 사리(沙里...성당 앞 안내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흑산도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일원이었던 정약전(丁若銓)이 신유박해(辛酉迫害) 당시 황사영(黃伺永, 알렉시오)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온 지역으로 19세기 초반부터 천주교와...
흑산도 정약전 유배지. 정약전 유배지 흑산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수산생물을 집필.
대학 3학년 때인 71년도에 7~8시간 타고 멀미나며 여행했던 그 시절
생각하면 추억이 만연했던 꿈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던 42년전의 그 시절이었습니다.
많이 변했더군요.
300톤급 페리오 배가 약 60KM속도로 2시간에 걸쳐 도달한 홍도의 전경은 초가집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도회지나 다름없는 새로운 모습이었답니다.
70년대 비좁은 산길에 집을 짓고 살던 서울의 창신동, 청구동과같은 답답한 골목길의 정겨움이
옛길을 회상하며 등산하는 등산로와 같은 1구에서 2구로 넘어가는 홍도의 모습이었답니다.
하루 3,000명의 내왕객들을 수용한다는 홍도의 옛모습은 사라졌더군요.
주역 도반들이 공부가 끝나자마자 인적교류없는 나날이
15년이 흘렀건만 한번도 1박이라는 외박을 통하여 情을 나눌기회가 없던
이번의 홍도여행은 딱딱한 주역 도반들에게는 경이로운 여행이었고
개인의 휼륭한 품성과 능력의 재주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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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곳에 다녀오셨군요
때와 장소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한 듯하네요.
유배지에서 옥고를 써 내려간 삶을 보면서...
흑산도~~
저도 가보고 싶어요..
저도 주역해서 도반맹길어 홍도가고 싶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