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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I. 서론
**시인 김현승(1913~1975)**은 1930년대 등단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함.
그의 시는 ‘윤리성’과 ‘고독’ 중심으로 전개되며, ‘양심’을 인간적인 고뇌와 정신적 가치의 상징으로 삼음.
기독교적 구원과 초월에 국한되지 않고, 윤리적 인간 내면과 사회 정의 실현의 의지로 시세계를 구성함.
고독과 양심의 긴장은 내면과 외부, 신성과 인간성의 다리 역할을 하며, 타자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함.
II. 내면을 움직이는 존재론적 동력
김현승은 종교적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문제를 시로 형상화.
기독교는 단지 배경일 뿐, 시적 상상력과 윤리적 지향성이 핵심.
시는 윤리성의 표현이며, 사회 정의를 위한 내면의 ‘양심’과 ‘고독’의 실천적 도구로 작용.
상상력은 융의 집단무의식과 원초적 이미지와 연결되며, 존재와 정신의 구조를 탐색하는 윤리적 매개체.
김현승의 시는 현실비판을 넘어 윤리적 자아 형성의 통로로 기능함.
III. 존재의 소리로서의 양심
유년기부터 내면화된 신앙, 양심, 도덕 교육은 시에 고스란히 반영됨.
시 속 ‘양심’은 고독한 내면에서 격렬한 싸움의 동지이자, 사회적 윤리성을 형성하는 원천.
예: 「良心의 金屬性」, 「옹호자의 노래」, 「인내」 등에서 양심은 내적 갈등과 타자와의 연대를 매개.
4.19 이후, 양심은 불의한 사회에 저항하는 윤리적 무기로 재현됨.
김현승에게 시는 “삶의 본질과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는 행위이며, 윤리성은 곧 시의 본질임.
IV.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
‘고독’은 단순한 정서가 아닌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인 통과의례.
‘신성’과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의 길이며, 신과 인간 사이 경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산물.
예: 「獨身者」, 「푸라타나스」, 「가을의 기도」 등은 고독을 통한 신과의 화해 혹은 대면을 표현.
고독은 실존주의적 자아의 귀환 과정이며, 신앙에 대한 회의와 재확신이 맞물리는 지점.
김현승의 고독은 신앙에서 벗어나 다시 신앙으로 되돌아오는 변증법적 순환 속에서 윤리적 자아를 형성.
V. 결론
김현승의 시는 고독과 양심을 통해 윤리적 자아를 형성하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적 현실과 윤리적 이상을 접합시킴.
그의 윤리성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며, 시는 이를 표현하는 가장 고결한 행위.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연대와 구원의 가능성이며, ‘양심’은 비양심적 시대에 삶을 이끄는 빛이자 무기.
김현승 시의 윤리성은 교훈적이거나 도덕적 계몽이 아니라 실존적 깊이와 시적 상상력이 결합된 고유한 정신의 표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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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의 윤리성에 대한 재고
-견고한 양심을 중심으로-
I.서론
II. 내면을 움직이는 존재론적 동력
III.존재의 소리로서의 양심
IV.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
V. 결론
정숙인
[국문초록]
1930년대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역동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대이다. 이에 김현승(1913~1975)은 1930년대 시단에 등단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자기의 시세계를 독특하게 구축해온 시인으로 평가된다.
김현승의 시세계는 윤리성을 기반으로 '고독'의 문제를 시로 승화시켰으며 그의 신념과 의지는 인간적인 고뇌와 정신적인 가치로서 '양심'을 해명하고 있다. 이러한 윤리성은 내면 중심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정신을 옹호하고 있으며,
고독의 원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인의 사회적 이상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며, 이때의 사회 정의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과 연관되어, 사회 정의와 실현을 위한 '양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내면적인 '고독'이 함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고독'에 대한 천착은 부조리한 역사적 현실을 올바르게 피익하고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투사적 의지의 발로이며, 고독을 통해
서 자신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연대할 수 있는 구원의 통로로서 인간의 본질적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존재의 소리로서의 '양심'은 고독 속에서 신앙과 양심이 공존하면서 신적인 세계와 인간적인 세계를 매개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그의 '고독한 양심'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극복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견제기능으로서 양심은 윤리적 행동을 규율하는 근원적인 원리이며, 그것은 고독의 계기를 통과한 다음에 사회적인 자아의 윤리성을 형성한다.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은 신성을 향한 의지와 자유를 향한 '양심'이 공존하는 것이다.
김현승의 고독은 신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능동적인 행위로서 신과 인간의 경계선상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고독이며, 가장 견고하고도 순수한 경지인 초월적 경험을 예비하는 내면의 고독을 통해서 윤리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듯 여기에서 발현되는 '양심', 특히 고독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양심은 인간다운 삶을 향하여 사회정의를 욕망하는 사람들간의 연대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현재적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무기로써, 비양심이 지배하는 시대의 대응책으로써 '고독'
과 '양심'은 자신을 끌고 가는 힘이다.
주제어 : 김현승, 윤리성, 고독, 양심, 신앙, 구원, 무기
I.서론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1930년대는 역동적이면서도 열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러한 1930년대 시단에 등단한 김현승(1913~1975)은 일제에 의한 절필기간을 거쳐 1970년대 중반까지 자기의 시세계를 독특하게 구축한 시인이다. 1930년대는 근대시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적 경향들이 분출되었으며, 시단 전반에서 순수문학과 서구 이미지즘이 중심이 된 모더니즘 운동은 시인들로 하여금 '미적 근대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김현승 또한 이미지즘의 창작 기법을 고려한 모더니즘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경향성은 그의 시가 현대문학사에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사상적 깊이와 인간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개연성을 제공해 준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김현승에 대한 논의들을 일별해보면 주로 기독교적 종교의 관점,인간적인 고독의 관점, 이미지나 스타일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연구의 범위들을 접근함에 있어서 김현승의 시세계는 한국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고독을 통해 인간적 고뇌를 시로 승화시킨 시인으로서 한국 시의 고독 관련 시편들의 상당 부분을 김현승의 시적 탐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적 종교에서 비롯된 구원의 특성만을 언급해놓은 점을 간과할 수 없으며, 그것은 내면을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김현승 시의 윤리적인 측면을 해명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다. 종교적 믿음이나 기독교적 세계관이 한 인간의 정신사를 규정한다면 그것은 한 시인의 시세계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획일적인 탐구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김현승의 시세계를 깊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작품을 분석하기에 앞서 종교적인 측면과 시세계의 관련성을 아울러 검토해보고 또한 시세계의 지향성을 시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김현승은 인간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신념과 의지1)를 형상화한 시인으로 그 내면에는 세속적인 물욕을 벗어난 정신적인 가치2)를 정결하
게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의 경험이나 한국전쟁, 또는 4.19,5ㆍ16, 유신 등의 민족사적인 사건들이 그의 시에 절제된 언어로 표출되며, 그의 철학적 사색과 주지성에 기인한 실존적 사유가 존재생성의 힘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현실 지향의 역사적, 이념적인 언어들을 '관념' 속에서 자신의 체험이 곧 관념이며 이를 형상화하였고,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시적 방법론을 '양심'으로, 또는 종교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정신적 요소들이 문학적인 양식을 통해 현재화되었을 때 생명력을 갖게 되며, 김
현승의 시적 양상은 언어감각을 통한 삶의 관조적인 태도를 지향3)하는 데 있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관념과 감각이 고도로 융합된 긴장감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김현승의 시는 현실의 비극적 양상을 자각하고 현실에서 기원한 방법적 긴장 의식을 시적 언어에 투사했으며, 욕망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던 시대에 청교도적 자세와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로 간접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김현승의 시적 측면과 사상적인 관점은 그의 본질적인 가치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윤리의식에서 비롯
된 것이며 이를 해명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II. 내면을 움직이는 존재론적 동력
김현승의 시세계를 조망해볼 때 현대문학사에 그 위치와 위상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지점에서 우선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김현승의 종교와 시세계에 관한 논의이다. 그것은 그가 줄곧 신앙과 시,
인간의 관계를 천착해온 관계로 시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 사상과 시적 상상력의 발원지를 탐색해 보는 것이 우선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나는 국한된 종교시를 쓰기 위하여 종교의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다만 나의 삶에서 가장 절실하고 가치있는 문제를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나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기독교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 뿐이다. 뿐 아니라, 종교의 세계는 인간의 어떤 국한된 일부의 세계가 아니라, 삶의 근원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보편
적인 세계라고 생각한다.5)
위의 인용문을 정리해보면, "국한된 종교시를 쓰기 위하여 종교의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며, "가장 가치 있는 문제가 시의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다 "기독교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
리하여 "종교의 세계"는 "삶의 근원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또한 "시인들은 왜 시를 쓰
느냐?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절실한 것을 표현하려고, 이것을 강렬하게 나타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고 시를 쓴다."6) 여기에서 박두진의 경우에도 "나에게 있어서 신앙시와 신앙시가 아닌 시의 구별이 불가능한 시, 시가 곤 종교적 신앙에 바탕하고 그 미학을 성취하는 것, 종교적 신앙 체험이 곧 시적 체험, 바로 그것일 수 있는 궁극적 일치의 시를 원하고 있다."7)이처럼 자신의 시적 체험이 종교적 체험과 일치하는 것으로 시인들 또한 가장 가치 있는 세계가 시의 대상이며, 종교의 세계 또한 가치있는 삶과 함께 융합된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 특정 종교와의 관련성을 가질 때 그것을 통칭하여 '종교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종교 문학의 하나인 기독교 문학은 역사적, 이념적, 윤리적 기반 위에 문학이라는 감각적이고 체험적 양식이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되어 인간관이나 우주관, 그리고 이념 등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기독교는 항일민족운동이나 자주독립, 근대지향적인 영향 아래 한국 민족사를 드러낸다. 이러한 변천과정 속에 외래 사조의 모방과 답습으로 인해 한국적 정체성은 혼란이 오기도 하고, 기독교는 지적 성찰보다는 감성적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하지만 김현승은 관념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사상과 형상을 통한 시적 지성을 천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정과 감
각을 주지의 시로 표현하였으며, 정지용, 김기림, 엘리엇, 릴케, 발레리, 엘리아르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종교적 상상력에서 배태된 김현승의 시세계는 진정한 존재 생성의 체험을 의미하며, 그러한 지향점은 보편적인 이미지로써 융의 집단무의식8)과
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는 우리가 오랜 경험을 통해 저장된 기억으로써 생득적인 양식의 일부이며, 김현승 시가 가지고 있는 시적 상상력으로써 문학 텍스트 안에 내재된 창조적 가치이기도 하다. 문학적 사유에 있어서 상상력이야말로 인간과 세계의 차원이며, 물과 정신을 비롯하여 이성과 감성의 매개적 능력을 발휘하는 근원적 요소이며, 김현승 시에서 발견되는 의미의 다층성9)은 이러한 원초적 이미지가 발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현승의 시세계는 일관성을 좌우하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정신을 옹호하기도 했으며, 신을 떠난 고독의 세계의 원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품에 내재된 윤리의식의 변이인 윤리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리성은 올바른 "존재 방식의 추구에 의한 것이며, 행위의 지혜"10)를 뜻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김현승 시에 있어서 시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본연의 윤리의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살펴보면 "시인만큼 그 사회 안에서 이상을 동경하고 이 세상에 접근하려는 철부지도 없을 것이다. 문학은 이 이상의 척도로서 사회 안의 온갖 불합리와 불의를 비평하고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11)는 사회적 이상으로써 사회 정의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써 이러한 행위의 근저에
'양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윤리는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선험적 능력이자 동시에 판단의 궁극적인 원리"12)라는 바디우의 말처럼 김현승 시는 실천적 존재를 선의 표상에 종속시키는 이른바 사회 정의와 실현을 위한 양심,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윤리의식이 내부와 외부에서 변증법적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김현승은 일제 강점기에서부
터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현실에 더욱 적극적 관심을 표명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이때부터 그는 역사와 윤리의 문제를 탐구하게 되고, 민중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그 결과 그의 시는 더욱 사변적인 면을 강조하게 된다. "양심은 너무도 존귀하고 너무도 신성에 가득 차 있"13)어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양심과 순수함으로 대처한다
는 아도르노의 말처럼 "서정시는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순간을 그 자신에 내포한다"14)와 같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것은 자신의 끊임없는 물음을 통한 이상을 실현하려는
'양심'의 표현이며, 인간성 회복의 근본적 조건인 '신성'과 '자유'를 상기하고 있다.15)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신성'과 '자유'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이 살아 있음을 입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김현승의 시에서 자연에 투사된 내면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독'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진다. '고독'의 경험은 부조리한 역사적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투사적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의 '고독'은 인간적 세계와 신적인 세계를 동시에 포괄하는 장소이며, 거기에는 '신성'을 지항하는 신앙과 '자유'를 향한 인간적 양심이 갈등의 형식으로 공존하게 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하여 오히려 '고독'을 통해서 자신 안에 같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넘어선 구원의 통로가 개방되는 것이고, 타자와 연대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III.존재의 소리로서의 양심
김현승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또는 4.19를 거치는 동안에 겪게 되는 사회 부조리를 감당하기 위해 내면에 일렁이는 양심의 소리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기독교 신교의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배웠고, 현세보다 더 내세가 더 소중함을 배웠다. 신이 언제나 인간의 행동을 내려다보고 인간은 그 감시 아래서 언제나 신앙과 양심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꾸준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아마도 비교적 단순하고 고지식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먹은 뒤에도 이 신앙과 양심과 도덕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키려고 노력하여 왔다.16)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과 '양심', 그리고 도덕'을 배웠고 이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여 양심과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실
제적인 현실은 양심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서 양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와 윤리의식에 더욱더 관심을 갖는다. 그는 해방 이전에는 낭만적 성격을 강하게 표출했던 것에비해 해방 이후에는 절제된 언어와 함축미를 강조하게 된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일종의 '정신의 융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17)그것은 자연에서 비롯된 거대한 침묵이 존재의 '울림'이 되고, 그리하여 실현의 기능인 상상력은 몽상18)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고독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데, 그의 고독에는 '신앙'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양심'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음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연소되고 취하여 등불을 향하여도,
너만은 물러나와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
너의 차거운 금속성으로
오늘의 무기를 다져가도 좋을,
그것은 가장 同志的이고 갹렬한 싸움
-「良心의 金屬性」부분
김현승에게 있어서 '양심'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경험에서 기원한다. 양심은 본질적으로 '호올로 눈물을 맺는 달밤'처럼 '모나고' '차거운 금속성'으로 그의 육체를 '쉬지 않고 찌'르는 내면적인 세계이다. 육체를 구성하는 세속적인 세계에서 오로지 '고독'을 경험하는 사람만이 '양심'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면세계에서 갈등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양심으로 인해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 또한 인간적 욕망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독이 신적인 세계와 인간적 삶의 갈등관계를 경험하는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그의 '양심' 또한 '고독'
속에서 내면적 갈등관계를 형성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의 고독에는 이처럼 신앙과 양심이 공존하면서 신적인 세계와 인간적 세계를 매개하는 통로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독한 양심'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극복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 견제기능으로 까지 수행한다. 일반적으로도 '양심'은 윤리적 행동을 규율하는 근원적인 원리이긴 하지만, 김현승에게 있어서 그것은 '고독'의 계기를 통과한 다음에 사회적인 자아의 윤리성을 형성한다는 데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양심'은 현재적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무기가 되는 것이지만, 내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가장 동지적'으로 일치하면서도 가장 '격렬한 싸움'을 경험해야만 하는 이중적 상대가 되는 것이다. 다음 시 옹호자의 노래. 에서도 볼 수 있다.
날마다 날마다 아름다운 저항의 고요한 흐름속에서
모든 약동하는 것들의 선율처럼
모든 전진하는 것들의 수레바퀴처럼
나와 같이 노래할 옹호자들이여,
나의 동지여, 오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 옹호자의 노래 부분
'양심'이 고독한 내면에서 육체와 대립하는 '동지'인 것처럼, 그는 그러한 양심의 소유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4.19 이후 불의한 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양심의 중요성이 더욱 강하게 부각하게 된다. 그 무렵 그는 모든 '언어', '사조, '침묵', '꽃향기', '무형의 것들, '신앙'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소중한 것들이 겨우 존재하게 되는 '역사적 가을'의 경험이기도하다. 그의 작품이 가을이라는 계절에서 신적인 세계에 대한 비전을 보았던 것처럼, 절망을 안겨주는 시대적 한계지점에서 그는 다시 시대의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나와 같이 노래할 옹호자들'을 '동지'로 삼아서 "모든 전진하는 것들의 수레바퀴"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양심은 비록 고독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고독 속에서 오히려 타자와 연대하고 신적인 세계로 개방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인내는
이 어둠의 이슬 앞에
내 칼을 부질없이 녹슬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칼날을 칼집에 꽂아 둔다.
이 어둠의 연약한 이슬이
오는 햇빛에 눈부시어 마를 때까지...
- 인내 부분
외부의 적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칼을 외부의 적을 향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 칼이 '부질없이 녹슬게' 될 것을 우려한다. 오히려 그 칼이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칼을 외부의 적을 향해서 사용하지 않고 주로 내면세계를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즉 '내 칼날을 칼집에 꽃아' 두고 어둠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침이 오면 '오는 햇빛에' 한밤의 '이슬'은 말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자신의 칼을 휘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하는 동안 그의 칼날은 내부에서 자신의 '양심'을 감시하고 찌르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인내는 어둠 속에 문힌 현실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에서'눈물의 열매'를 만들고 더 밝은 빛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윤리의식에 기반을 둔다. 그는 그러한 '양심'이 견고하고 날카로울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의 가치체계 또한 견고하고 떳떳한 양심으로 인한 윤리성으로 무장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으로서는 단점도 많지만 시
에서만은 시를 쓸 때만은 참되고 정의롭고 양심적이려 한다."19)와 같이 김현승 시인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바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삶을 지탱하는 기본정신이자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양심의 표현이 시의본질에 근접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김현승은 자연을 통해 신성을 지향했고, 또한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탐구하였으며, 당대의 사회상으로 인해 부정적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시 창작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대를 같이했던 박두진의 경우도 "시는 그의 행동이며, 그를 지탱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20)가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하여 4.19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아울러 미래진행형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그의 시(r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에서 밝히고 있다.21)
1960년대 이후 한국의 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체제가 종식되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대립과 혼란으로 뒤덮였고, 분열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부정의 정
점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4.19를 통해서 분출되었던 것이다.
김현승은 사회적으로나 역사적 사태에 직면하여 대부분의 종교와 문학적 행위는 그 대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적 본질의 회복을 향한 의지를 드러낸 것도 사회적 발언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 김현승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리와 압제로부터 옹호하려는 예술보다 더 순수한 예술이 있을 수 있는가!"22)라고, 그는 이미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의 구분의 무의미성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수예술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행위야말로 그것 자체가 가장 순수한
예술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를 통해서 문학과 삶의 구별이 사라지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4.19 이후 시인은 시대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 실현과 사회적 정의의 확립을 향한 적극적 의지를 형상화하는 작품을 통해 그의 실천
적 면모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처럼 인간적 세계와 신적인 세계로 통하는 통로가 시인의 내면세계에 마련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김현승 특유의 '고독'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고독은 신앙과 양심이 터하는 자리이면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현실적인 절망과 초월적 희망 사이에서 번민하고 갈등하는 정신적 현장이기도 하다.
IV.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
인간은 본래 자연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이러한 불안의 존재 방식을 '욕망'을 통해서 설명하는데, 그 욕망의 대상은 신기루처럼 잡는 순간 저만큼 물러나며, 인간은 그 대상을향해 가고 또 가23)며, 소유할 수 없는 타인에게 위협을 느끼고 거기에서 내면적 갈등을 느끼게 된다24)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은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고독의 양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러므로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 [절대고독]시기에 전면화되는 '고독'의 정신이 바로 이러한 불안의 변형된 형태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고독'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며, 자기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의 원인에 의한 결과이다. 그것들이 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지점에서 근원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때 원초적인 자아로 회귀하게 된다. 이런 의미의 실존적 물음, 즉 모든 인간이 견며야만 하는 존재론적 경험인 '고독'에 대한 물음이 근원적인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고독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는 제 4시집인 절대고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인간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사회적 임무까지도 깨달아 알게 되므로"25)이처럼 "존재자가 존재하려면 '고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6)김현승의 글에서 고독이란 것은 일차적으로는 신앙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적, 윤리적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 객관적으로 투사된 어떤 대상으로서, 그렇게 대상화된 존재가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게
되며, 인간은 이를 통해 더욱 자신의 본질로부터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27)이다. 이렇듯 고독을 적극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신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능동적 행위가 될 것이다. 인간이 고독을 경
험하는 방식에는 '고립자'와 '단독자'의 구분이 적용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28)는 단독자로 진입하는 경험으로서 절망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때의 절망을 자기 자신으로 있으려 하지 않는 것과 자기 자신으로 있으려는 것의 두 가지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서도
무덤 밖에 있을 것이다.
누구의 품안에도 고이지 않은
나는 지금도 알뜰한 제 몸 하나 없다.
-「獨身者」부분
이 시에서 '고독'은 '무덤'에도 가둘 수 없고, '그림자'도 동반하지 않는 고독이다. 그것은 영적인 자유를 구가하면서 순수와 자유를 지향하는 영혼의 상태의 고독이다. 여기에서도 그의 영혼은 천상과 지상에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적 신성의 추구와 더불어 세속적 욕망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고독을 통해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화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처럼 김현승 시인의 고독은 신성과 세속 사이의 경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신적인 세계를 지향하다가도 다시 신'을 떠나 고독에 침잠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죽어서도 무덤 밖에 있을 것이다"는 자유의 선언, 그리고 "누구의 품안에도 고이지 않는" 철저한 고독은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않겠다는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자연을 통한 화해의 가능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먼길에 올 제
홀로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푸라타나스 부분
여기에서 자연은 인격화된 대상으로 표상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대화 장면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동등한 지위, 그러나 신적인 존재 아래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적인 것 아래에서 인간의 모습은 고독하다.
고독은 신적인 것을 지향하게 하는 인간의 본질적 성향으로 그려지며, 인간이 고독 속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신적인 세계와 자연으로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내면의 독백적 어조를 통해서 "푸라타나스"와 대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연, 인간, 신과의 공존의 관계를 동시에 설정하고 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 전문
이 시에서는 가을이 주는 정취와 생애에 대한 갈망이 연결됨으로써 육화된 관념의 서정성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가을은 낙엽 지는 쏠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안으로 스며드는 고요와 사색과 홀로 있음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자연의 외적 현상으로부터 깊은 내면의.의식 속으로 고요의 참맛이 담겨 있으며, 자연은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
게 하는 곳이며, 호젓한 가을날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사랑을 채우는 시간이다. 가을은 일시적이고 지상적인 가치가 사라져가는 계절임과 동시에 그 안에 숨은 본질이 들어있는 계절이며, 꽃과 열매의 순환의 연관성 앞에서 겸허하고 견고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숙연함이 담겨있다. 고독에의 갈망, 이것은 '굽이치는 바다'로 표현되어 인간적인 애증과 파란을 거쳐,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만나게 되는 고독이다. 고독의 표상인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까마귀"는 곧 신과의 대면을 나타내는 것이며, 김현승 시에서 까마귀'는 '고독'의 상징적 의미39)로 그의 다른 작품 [겨울 까마귀]., [산까
마귀 울음소리], [마지막 지상에서]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책을 덮게 한 고독이여!
비록 우리에게 가브리엘의 성좌와 사탄의 모든 저항을 준다 한들
만들어진 것들은 고독할 뿐이다!
인간은 만들어졌다!
무엇 하나 우리들의 의지 아닌.
이 간곡한 자세- 이 절망과 이 구원의 두팔을
어느 곳을 우러러 오늘을 벌려야 할 것인가!
- 인간은 고독하다 부분
위의 시에서처럼 고독은 이중적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절망'이면서 '구원'이다. 인간에게 육체와 영혼, 지상과 천상이 동시에 주어진 것처럼, 양자의 화해는 필수적인데 그는 그것이 사실상 고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다. 따라서.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존재, 자유로운 존제이면서도 자신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30)이 따른다. 한편으로는 신앙인으로서의 고독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과 무관하게 인간의 본래
적 고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현승의 고독은 궁극적으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의 고독'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직 신앙 안에서 서성이는 갈등이며, 인간을 고독의 경험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이다. 신앙은 본래 인간적인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것이지만, 김현승 시인은 오히려 고독을 통해서 신앙을 떠나면서도 다시 신앙으로 되돌아오는 변증법적인 사유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승이 모든 인간적 사변으로부터 자신의 고독을 애써 분리하려고 시도했던 것31)은, 생득적으로 그의 시의 출발이 기독교적인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실존주의와 연관된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적으로 그것이 기독교적 지향점으로 환원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현승에게 있어서 '고독'의 경험은 신과 인간의 경계선상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적 고독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로부터 출발이며, 결국 자기로의 귀환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몰두하고자 하는 존재의 얽매임이며, 이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자신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더 이상 자유롭지 않는 내면의 고독이다. 특히 내면에 깊이 자리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갈등에서 비롯된 고독이며, 기독교 신앙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을 포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느님은 유일신이 아닌 것 같다. 만일 유일신이라면 어찌하여 이 세상에는 다른 신을
믿는 유력한 종교가 따로 있겠는가?32)에서처럼 제목.이라는 시가 발표되던 1964년을 기점으로 기독교적 신에 대한 회의로 나타난다. 이것은 실상
많은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통과해야 했던 신앙적 갈등의 보편적인 현상에 속한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한국의 기층종교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한국인의 심성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의미하며, 초월적
유일신을 향한 경배와 간구의 종교가 아니라 세속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락한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김현승이 몰입하였던 '고독'이란 결코 감상적이거나 허무의식으로 치장된 '고독'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경험인 것이다. 가장 견고하고도 순수한 경지인 초월적 경험을 예비하는 고고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면의 '고독'을 통한 윤리적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 견고한 고독 부분
이 작품은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자연'을 비유적인 방식으로 취하면서 관념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는 이미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견고한 칼날'을 통해 고독을 표현하고 있
다. 가을이 되어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마른 가지'로 남았다 할지라도 '고독'이라는 '굳은 열매'를 믿기 위해 애를 쓴다. 이 작품의 관념성을 보면 시는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한 개
인적인 표현이며 지식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김현승의 시는 고독한 자아를 통해서 도덕적 양심, 역사의식 등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신앙으로 통로를 만들고 있다. 고독한 자아는 신과의 결별을 마음으로 다지면서도 기독교적인 맥락을 염원하는 역설을 꿈꾸며, 자아와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이성적 공간을 작품을 통해서 성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독은 이미 신과의 소통과정을 통과하면서 얻어낸
인간적 고뇌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김현승의 '고독'은 더욱더 단단해져서 영원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V. 결론
우리는 앞에서 김현승의 시에 나타난 윤리성에 대한 재고를 중심으로 내면을 움직이는 존재론적 동력과 존재의 소리로서의 양심, 그리고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 등의 항목으로 시적 상상력이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지 검토해 보았다.
김현승의 시세계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쳐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를 경험하면서,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으로써 내면의 윤리성을.인간적 관념의 투사체로 만들고 인간적 해석의 통로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사회의 질곡에서 비롯된 내면화된 감수성은 견고한 양심과 고독으로 나타나며, 한편으로는 그의 시에서 관념 편향을 불러내기도 하지만 이러한
내적 갈등으로 빚어진 시적 상상력은 김현승만의 윤리의식을 지향한다. 이러한 김현승의 시세계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정신을 옹호하며, 거기에
서 비롯된 견고한 양심은 존귀하고 신성으로 가득 찬 존재에 대한 물음이며 확인이다. 이처럼 김현승의 시작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실존적인, 고독 속의 자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본래적 자기의 회복
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시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인 양심과 고독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세계는 신성과 양심, 그리고 고독이 내재되어 있다. 해방 이후 김현승은 자연에 투사된 내면성에서 벗어나 자연이 인간의 삶과 신성한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이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내면적 '고목'의 발견이다. 고독을 통해서 신성을 향한 의지와 자유를 향한 양심이 공존하는 것이다. 또한 김현승의 고독은 신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능동적인 행위로써 그가 도달한 고독의 세계는 진정한 종교로 거듭나기 위한 신앙인의 결단을 촉구하는 행위와도 통
한다. 김현승이 몰입하였던 '고독'이란 결코 감상적이거나 허무의식으로 치장된 '고독'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경험이며, 가장 견고하고도 순수한 경지인 초월적 경험을 예비하는 고고한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내면의 '고독'을 통한 윤리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발현되는 양심은 현재적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무기이며, 내적으로는 가장 동지가되는 상대로서 늘 갈고 닦아야 하는 것으로, 비양심이 지배하는 시대의 대응책으로써 양심은 자신을 끝고 가는 빛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김현승의 시세계는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정당한 자질이 도덕적우월감이 아닌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의 내면에 깊숙
이 내재된 윤리성은 끊임없는 자기탐구를 위한 인간적 진실이며, 그 안에 양심이 내장되어, 양심의 소리로서의 고독을 경험하는 것으로써 이러한 고독은 우리의 내면을 자극하여 성찰하게 하는 견고한 메시지를 제공하는 것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