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총연장 1,005m인 한강에 가설된 최초의 인도교로1916년 3월에 착공하여 1917년 10월 준공하였다. 교량 형식은 타이드 아치 강구조로 교량과 강판형교로 하였다.
이 교량은 한강철교를 준공하고 남은 자재를 이용하여 가설했으므로 小橋였고 폭이 좁아 중앙차도 4m, 좌우측 보도는 각 1m에 불과한 응급적인 시설이었으므로 한강가교라고도 하였다.
1925년 대홍수 때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 길이가 짧은 용산 쪽의 다리는 1927 년 5월에 착공하여 1929년 9월 18일 개통되었으나,
노량진 방면은 길이가 길어 복구하지 못하고 종전의 다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후 1934 년에 노량진 방면의 다리를 넓이 20m로 보수공사에 착공하여 1937년 5월에 준공하였다. 다리 가운데 섬(노들섬)이 있기 때문에 섬 남쪽과 북쪽을 모두 합하면 길이가 1,036m이다.그러나 6·25전쟁으로 타이드 아치 3경간과 판형교 일부가 파괴되어 1957년 1월부터 복구공사에 착수, 1958년 5월 준공되었다.- (단기4291년 )
공사의 주관자는 조선총독부 총 공사비 250만원에 연인원 28만명이 동원되었다. 1950년 6월 28일 한국전쟁으로 다리가 폭파되었고, 서울 수복 후 부교 또는 가교가 놓여졌다. 1957년 9월 시멘트와 철근을 이용한 공사가 착공되어 1958년 5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제1한강교라고도 불리었던 이 다리는 서울의 인구와 교통량이 크게 증가됨에 따라 새로운 다리가 필요하게 되자, 1979년 1월 4일 다리의 폭을 20m에서 40m로 늘리는 확장공사에 착수, 1981년 12월에 준공하였다. 그 결과 쌍둥이 교량으로 탈바꿈되면서, 이름도 ‘한강인도교’에서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다리의 역사 만큼이나 크고작은 사연이 많은 한강대교는 전쟁의 아픈 상처를 고스란이 담고 의연히 그 자리에 서있다
자동차로 쉽게 는 건너다녔지만 동작구 본동을 출발하여 용산구 이촌동으로
중간에 노들섬을 돌아보고 용산구 다리까지 걸으면서 느끼는 감회는 잊을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내용이 별 볼일 없지만 사진이 나에게 준 큰 선물 이다
일요일 이른아침 비가 조금 뿌리는 날씨 동작구본동에서 교량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가는데 입구부터 좀 한기가 느껴졌다
땅과 물길이 만나는 자리에도 특별한 氣 가 있다는 것을 이번 다리기행중 터득하였다
다리를 찍기위해 내려갈때부터 스산한 분위기 그때 의 한기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내 마음을 진정하고 겨우 사진을 찍고 젠걸음으로 다리위로 올라 왔다 휴 하고 긴 한숨을 쉰다
인도교 난간에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들이 붙어 있다
왜 꼭 이다리위에서 세상을 버리려 할까하는 의문이 조금 플린 것 같다
땅밑에서부터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기운이 서려 있는 곳 이니까
이제 이다리를 다시 인도교로서 제몫을 하게 노들섬과 연계하여 건설한다는 소식이 있다
정말 잘하는 일인 것 같다 어떤모양일지 무척 궁금하다
다시 만들어 지면 몇 번이고 걸어서 한강을 건너고 싶다
한강대교는 한강에 세워진 2번째 다리이다
첫댓글 한강대교
다리밑 부분도
튼튼함과 견고하겠지만
3번 사진은 색감도 멋있고
유럽의 어느 다리를
연상케 합니다.
한강대교에서
기(氣)을 느끼셨다는 표현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각이 돌쌓기 구조라는 것....
당시만 하더라도
콘크리트 구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늘 강력하게 응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전문가 이십니다
한강다리중에서 유일하게 돌벽돌로 쌓은 구조 입니다
왜 이렇게 하였나 의문이 생겼는데 말씀 듣고보니 수긍이 갑니다
항상 세심하게 지적해 주시고 격러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감사 합니다
한장 한장이
작품입니다
작품마다
정성이 묻어 납니다
배우며
철교에 대한 상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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