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반]
‘현해탄 투신’에
가려진 소프라노 윤심덕의 진면목
슈베르트 가곡 등 음반 19장 남기고…
생존說, 출산說까지 난무
----조선의 첫 소프라노 윤심덕. 1920년 일본 관립
도쿄음악학교 갑종 사범과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성악교육을 받은 첫 소프라노였다----
< 퍼블릭 도메인 >
‘그가 한번 악단에 나서서 두 주먹을
턱 쥐고 긴 목을 내두르며 ‘아아’소리만
치게 되면 만장의 박수소리는 진동하고
그의 몸이 악단에서 내려오면 다시 한번
듣고자 가슴을 졸이는 청중의 박수
소리는 뒤미처 일어나서 그치치를 못한다.
아!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기자가 먼저 그를 소개하기 전에 독자
여러분은 반드시 ‘윤심덕 윤심덕’하고
부르짖을 줄 믿는다.’
(‘조선의 일류 성악가 윤심덕양’,
조선일보 1924년12월16일)
1920년대 음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윤심덕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수준 높은
음악교육기관인 관립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이전에도 음악회에서 노래한 여성은 있었지만
동경 유학까지 가서 성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귀국해 소프라노로 활동한 이는
윤심덕이 처음이다.
1920년대 초반 음악회가 막 성행하기
시작했을 때,윤심덕은 홍난파, 김영환 등
1세대 연주자들과 무대를 누볐다.
특히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1923년 봄부터 1924년 겨울까지가 소프라노
윤심덕의 전성기였다.
당시 윤심덕과 함께 종종 연주한 피아니스트
김영환(1893~1978)은
‘아직 창가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그 때
윤심덕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슈베르트의
가곡을 불렀다’
고 평가한다.
----윤심덕의 마지막 모습. 1926년 7월 말 '사의 찬미' 등
음반 13장을 취입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일동축음기회사에서 녹음하고 있다.
윤심덕 사망 후인 1926년 10월 15일 '일동타임쓰'
제1권4호에 실린 사진이다----
< 현담문고 소장 >
◇왈패지만 무대에 서면 환호 연발
게다가 윤심덕은 ‘왈패’로 불릴 만큼
활달한 평양 여성이었다.
‘6척이나 되어보이는 몸에 옥색치마를
발뒤축까지 끌고 평안도 수건을 맵시있게
눌러쓰고 평양 천지를 횡행하다가
종로네거리에 어떤 청년 남자를 만나서
평안도 사투리로
‘야 오랍아 너 잘있댔니’
하고 손을 잡고 절레 절레 흔드는 것을
보았다.’
(‘조선의 일류 성악가 윤심덕양’)
‘윤심덕은 키도 크고 눈도 크고 입도 큰
요즘말로 바로 현대여성형이었다.
얼굴은 계란형에 희지는 않았고 눈은
쌍꺼풀이 지고 서글서글했다.’
김영환은 ‘서구적인 용모에 표정이 풍부하고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 그가 한번 무대에 서면
남성 팬들은 환호를 연발했고 여성들 중에도
그에게 매혹되어 존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양악백년’ 128~129쪽)고 회고했다.
----윤심덕이 죽은 직후인 1926년10월15일 발행된 '일동타임쓰'
제1권제4호. '사의 찬미'음반을 비롯, 윤심덕 특별호처럼 꾸몄다----
<. 현담문고 소장 >
◇잘못 알려진 윤심덕의 이력
일제시대 최대 스캔들을 꼽으라면
소프라노 윤심덕(1897~1926)과 극작가 김우진
커플의 ‘동반 자살’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20대 한창 나이의 앞길 창창한 모던 보이,
모던 걸이 귀국행 관부연락선상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는 사실은
당대 신문, 잡지들이 연일 톱뉴스로
다룰 만큼, 충격적이었다.
톱스타 윤심덕의 상대 김우진은 전남
장성 지주 집안의 유복한 아들로
장래가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다.
특히 윤심덕이 현해탄 투신 직전 녹음한
‘사의 찬미’
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성기 붐을 일으킨
주역이 됐다.
최근까지도 두 사람의 ‘정사’(情死)를 다룬
TV드라마, 뮤지컬이 나올만큼 타계 100년이
가까워올 때까지 관심이 뜨겁다.
둘의 연인관계에 주목한 정사(情死)설부터
해외에 도피해 살아있다는 생존설,
외국에서 윤심덕이 아기를 낳았다는
출산설까지 당대에 나돈 사실만 봐도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을 줬는지 헤아릴
수 있다.
김우진과의 동반자살과 ‘사의 찬미’에
쏠린 뜨거운 관심탓에 ‘조선 첫 소프라노’이자
‘레코드 가수’ 윤심덕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한 소프라노로서
한국음악사에 기록된 윤심덕의 이력과 관련,
최근까지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
1915년 일본 청산학원(靑山學院) 유학설,
도쿄음악학교 성악과 졸업 등이 그렇다.
윤심덕이 남긴 레코드 목록과 발매 일시도
불충분하거나 정확하지 않다.
소프라노 또는 가수 윤심덕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현해탄 동반자살을 보도한
조선일보 1926년 8월 5일자----
◇아버지는 야채장수,
어머니는 ‘전도부인’
먼저 윤심덕의 출신이다.
윤심덕은 평양 출신으로 아버지는 야채장수,
어머니는 평양 서문 광혜여병원 사무원으로
일했다.
부모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특히
어머니는 ‘전도부인’으로 지낼 만큼 열심있는
신자였다.
이 때문에 윤심덕과 여동생 윤성덕,
남동생 윤기성 등 3남매는 모두
어려서부터 서양음악을 접했다.
윤심덕을 비롯한 3남매가 모두 음악가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윤성덕은 피아니스트로서 이화여전을
나와 모교 교수로 일했고, 윤기성은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
바리톤으로 활약했다.
윤심덕은 사립 숭의여중, 평양여자고보,
경성여자고보 사범과를 나와 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다 1920년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3년)에
입학했다.
매일신보 기사에 의거, 윤심덕이 1915년
도쿄 청산학원에 유학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1918년 경성여자고보 졸업 기사에 윤심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청산학원 유학은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23년 관립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3년) 졸업
당시 신문에선 종종 윤심덕이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것으로
소개했지만 윤심덕은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를 다녔다.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3년제 과정이다.
성악부는 본과에 설치돼있었다.
윤심덕이 다닌 사범과는 음악전문가 과정이
아니라 음악교사 양성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전문 음악가로서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887년 설립된 도쿄음악학교
(현 도쿄예술대학)는 당시 유일의 관립음악학교로
문부대신 관할이었다.
선과, 예과, 본과,사범과, 연구과(대학원)로
나뉘어져있었다.
윤심덕이 들어갈 당시 갑종사범과는 사범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수업연한 4년 이상인 학교)
졸업자가 지원할 수있었다.
윤심덕의 유학은 조선총독부 추천으로
이뤄졌다.
조선인 유학생의 도쿄음악학교 입학은
총독부 추천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총독부는 우수한 조선 학생을
선발해 일본에 유학을 시켰다.
‘조선융화회’라는 단체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다.
1920년 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한 이는 윤심덕 말고도 한기주(갑종사범과)
가 있다.
◇'天才가 풍부한 독창을 위시하여…'
1923년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한 윤심덕은
그해 6월26일 오후 8시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졸업후 데뷔무대를 가졌다.
종로2가에 있는 동아부인상회 창립 3주년
기념음악회였다.
‘금년 봄에 동경음악학교 성악과를 우등의
성적으로 졸업한 후 경성의 악단에는 아직
한번도 나오지 아니한 윤심덕 양의 천재가
풍부한 독창을 위시하여…’
(‘3주년을 迎하는 동아부인상회의
기념적대음악회’,동아일보 1923년 6월25일)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는 알 수없으나 기사에서
가장 먼저 소개될 만큼 비중있는 출연자였다.
그달 30일 오후8시30분 조선여자청년회 주최로
역시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동기생 한기주와
함께 도쿄음악학교 졸업생 리사이틀을 가졌다.
유학으로 쌓은 실력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무대였을 것이다.
이후 윤심덕은 베토벤 탄생 150주년 기념
음악회 등에서 홍난파 김영환과 함께 무대에
서는 등 전국을 누비며 1세대 성악가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1년 반 뒤인 1924년 12월 돌연 하얼빈으로
떠나버렸다.
‘부호와의 동거’
‘실연’ 등 각종 소문을 낳은 탈출이었다.
윤심덕이 1925년 6월 다시 경성에 나타나자
‘스타’의 실종과 내력을 둘러싼 기사가
줄이었다.
윤심덕은 더러 음악회에 출연했지만
이듬해 2월 배우 선언을 하면서 또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토월회 연극 ‘동도’(東道)에 배우로 출연한
것이다.
여배우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탓에 다들
외면하는 배우에 음악계 스타가 자원해서
나선 사실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조선인 첫 오페라 음반
‘라 트라비아타’?
성악가, 가수 윤심덕의 활약은 레코드로
옮겨갔다.
1926년 초 윤심덕은 일동축음기회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음반 취입을 했다.
이 회사에서 발행한 음반잡지
‘일동타임쓰’
에 따르면, 그해 6월까지 독창 음반 4장을 냈다.
이중 주목을 끄는 것은 6월에 낸 독창음반이다.
‘너와 나’ ‘아 그것이 그사람인가’
(음반번호 B83)
‘그 사람인가’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아리아
‘아, 그이인가’(Ah, fors’e lui) 와 비슷하다.
작가 이서구가 발행한 음반소식지
‘일동타임쓰’(1권3호, 현담문고 소장)에 실린
가사를 보면, 더 그렇다.
‘저 잔치에 홀로 있는 그이가/
과연 나의 사모하는 애인인가/
그의 아름다운 형상/
그림자같이 내맘속에 삭여있네/
부드러운 그의 팔에 /
내 몸이 안겨있을 때/
근심걱정 사라지고 애정이 불탄다/
사랑이 없이 살 수 없는 이 세상/
이상하게도 내 가슴 산란하다/
아 얼켜나오는 것은 목숨과 또한 기쁨일세/
목숨과 또한 기쁨일세 아-, 아-’
한국 음악사 연구자들의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음반을 들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장자가 나서길 기다릴 뿐이다.
◇슈베르트 예술가곡 ‘보리수’, ‘들장미’ 발매
한국대중가요사1
(한국대중예술문화연구원, 2003)에
따르면, 윤심덕 음반 발표곡은 34곡이다.
하지만, 일동축음기회사가 낸 음반잡지
‘일동타임쓰’에 따르면, 윤심덕 음반은 모두
19장, 38곡을 수록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의 찬미’에 가려
나머지 음반들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윤심덕의 음악세계를 살펴보는데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슈베르트 가곡 ‘들장미’를 옮긴 ‘방긋 웃는 월계화’,
‘보리수’를 옮긴 ‘옛꿈’이 눈길을 끈다.
‘메기의 추억’ ‘기러기’ ‘산타 루치아’ 같은
민요나 칸초네, ‘어여쁜 색시’ ‘시들은 방초’같은
유행가부터 ‘찬미가’(찬송가)음반 2장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특히 메가셀러 ‘사의 찬미’는 같이 수록된
곡이 부활절 찬송가인 ‘부활의 기쁨’인 것도
의아하다.
◇여성해방 연극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로
음악사연구자 박정숙은 윤심덕이
도쿄음악학교 졸업공연으로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를 맡은 사실을 주목한다.
여성 해방의 대명사격인 노라 역을
다른 일본 여학생을 제치고 윤심덕이
맡았다는 것에서 그가 여성으로의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있다는 것이다.
윤심덕은 토월회 연극 ‘동도’에 출연한
직후인 1926년 2월24일 김을한 등과 함께
토월회를 탈퇴, 백조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조선극장에서
‘인형의 집’
을 올리려고 했는데, 윤심덕이 주인공 노라로
예정돼 있었던 모양이다.
(‘백조회 신극운동의 첫 걸음, 초공연은 인형의 家’,
조선일보 1926년3월31일)
하지만 공연은 올려보지도 못한 채, 단체는
해산했다.
윤심덕은 그해 7월 새 음반 취입차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8월4일 귀국길에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윤심덕이 귀국해서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로
무대에 섰다면 그 후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윤심덕은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배우로
데뷔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힘을 다하여 새로 지으려는 조선
예술의 전당에 한 모퉁이의 무엇이라도
되려는 당돌한 발걸음이 이에 이르게 된
것뿐입니다.
금후의 나가는 앞길의 험로가 나로 하여금
어떠한 피로를 주고 어떠한 권태의 기분을
던져 줄런지는 아직 아득한 바입니다.’
(‘예술을 탐하야 배우생활’, 동아일보 1926년2월6일)
윤심덕은 험로를 헤쳐나오지 못하고
피로와 권태에 지쳐 허망하게 스러진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121879
그시대에 다시 놀랍고 귀한 기사 감사합니다.
HappyJoe
윤심덕이 부른 이바노비치 다뉴브강의 잔물결
원곡인 사의 찬미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음원이
남아있는데. 들어보면 정통 소프라노라기 보다
교회 찬송가식 창법으로 들린다.
당시 한국의 성악 수준이 그런듯.
more4more
현대 자살의 시조? 조선일보는 자살 예찬론자.
사실과자유
윤심덕의 부모직업을 보니 조선시대의 천민출신
같아 보인다.
근대화가 시작된 일제시대...이 기사를 보니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시대였음도 확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