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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중보 기도자 (렘2-14)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찬양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본문 : 예레미야 14:1-22절
삶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때로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 무거움이 사실은 살아갈 이유와 보람을 주는 일이란 사실을 조금씩 느껴가게 된다. 이제 라마나욧선교회에서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은 이사장을 세우는 단 한 가지가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주일을 준비하는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충성되게 살아가야 하고, 예배자로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자로 준비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예레미야 14장은 이스라엘이 당한 극심한 가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1절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절한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비와 풍요를 준다고 믿으며 바알을 따른 결과가 어떠한지 똑똑히 보라고 말씀하신다.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쩍쩍 갈라질 때, 바알은 물 한 방울 내릴 수 없는 가짜 신임이 철저히 폭로된다. 이 가뭄 앞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귀족(귀인)들조차 우물에서 물을 구하지 못해 '빈 그릇'으로 돌아와 부끄러워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심지어 갓 낳은 새끼를 버리는 암사슴, 눈이 멀어 헐떡이는 들나귀의 비참한 모습까지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지금 이 가뭄이 단순한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계'임을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지형을 고려하면 이 가뭄이 왜 국가적 대재앙 수준이 되었는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나일강이나 바벨론의 유브라데강처럼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큰 강이 없다. 그야말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일컬어지는 하늘의 은혜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천수답(天水畓) 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늘이 닫힌 이 가뭄은 온 국가의 멸망을 뜻하는 애통이 되었고, 부자들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심각한 재앙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 가혹한 징계의 현실을 예레미야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리고 이 완전한 절망의 순간,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어떤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를 깊이 묵상하게 된다.
예레미야의 처절한 기도를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7-9절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이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첫 번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예레미야는 인간의 그 어떤 공로나 자격을 말하지 않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7절 하반절에 고백하는 대로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자백하면서, 이스라엘은 100%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즉, 내 안에는 구원받을 자격이나 근거가 단 하나도 없다는 철저한 '자기 절망'이 담긴 기도다.
그러기에 그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그분의 명예와 영광뿐이다. 예레미야는 "우리는 멸망받아 마땅하지만, 주님은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만약 우리를 이대로 다 진멸하시면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조롱할 것이니, 당신의 거룩한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엎드린 것이다.
특히 예레미야의 기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굳게 붙들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 쪽에서는 그 언약을 깨뜨리고 도망쳤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 쪽에서는 여전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계심"을 믿고 매달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 끔찍한 심판의 현실을 미리 말씀해 주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하나님의 본심을 헤아려 제발 이 심판을 막아서 달라는, 그들을 위해 중재해 달라는 애타는 호소가 아니었을까. 이 말씀이 생각난다. 겔 22:30-31절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식을 때리기 위해 몽둥이를 들면서도 누군가 내 손을 붙잡고 말려주기를 바라는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채고, 예레미야는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이 처절한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 깊은 본심을 아는 예레미야는 8절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이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이어지는 9절에서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마치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라며 아버지의 본심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러면서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매달린다.
그는 굳게 믿고 있다. 이 끔찍한 심판과 가뭄의 한가운데서도 주님이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비록 매를 드셨지만,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이 백성을 결코 버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애타는 본심을 말이다.
주일을 준비하는 목사로서, 나는 지금 어떤 중보자로 서 있는지를 돌아보는 아침이다.
신실한 자들이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현실을 목도한다. 또한 이 땅이 하나님을 거절하며 심각한 죄악으로 무너져 내리고, 14장의 묘사처럼 십자가의 회개 없이 '거짓 평강'만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가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런 영적 가뭄의 때에, 나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가?
17절에서 하나님은 멸망해 가는 자기 백성을 향해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라고 탄식하신다. 나는 이 주님의 찢어지는 마음을 품고, 예레미야처럼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우는 사람으로 서 있는지 깊이 묻게 된다.
이제 라마나욧선교회라는 사역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이 때에, 주님께서 굳이 예레미야서를 깊이 묵상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이 '눈물의 중보자' 자리로 새롭게 초대하시는 부르심이 아닐까?
사역의 직임은 내려놓을지라도, 무너져가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밤낮으로 눈물 흘리며 엎드리는 그 기도의 자리는 지켜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슴에 새겨본다.
주님, 이 종이 나의 남은 생애 예레미야처럼 그치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종으로 서기를 구합니다. 이 종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주사 기도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사역의 직임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무너진 영혼을 끌어안고 우는 중보의 기도는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적용 질문 :
1. 내 안에는 구원받을 공로나 자격이 단 1%도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주의 이름'과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2. 나는 무너져가는 이 땅과 교회를 보며 징계하시면서도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품고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우는 중보자입니까?
3. 삶의 특정한 사역이나 역할이 끝나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나를 어떤 새로운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시는지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