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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MgjU9qbi3vI?si=HTNet6tIaJPZgxOp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 말씀까지 23:1~9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열 번째부터 열세 번째 말씀까지 23:10~16
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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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관원과 함께 먹을 때 음식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며 사사로운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기는 미련한 자에게는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거나 고아의 밭을 침범하면 안 됩니다. 아이의 영혼을 위해서는 채찍으로라도 훈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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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 말씀까지 23:1~9
지혜자는 모략과 지식이 담긴 서른 개의 말씀을 가르칩니다(11월 25일 본문 해설 참조). 본문에서는 여섯 번째부터 다룹니다. 여섯 번째, 높은 자리에 있는 관원이 음식을 베풀 때 주의해야 합니다(1~3절). 그가 베푼 음식을 함부로 먹다가 그의 속임수에 빠지면 옳지 못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부자가 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거나,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4~5절). 재물은 날개 달린 독수리처럼 언젠가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덟 번째, 악한 눈과 악한 생각을 가진 자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6~8절). 결국 먹은 것을 토하고 그에게 한 말도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 어차피 못 알아들을 미련한 자에게는 지혜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9절).
● 더 깊은 묵상
힘 있는 사람, 악한 사람이 주는 음식을 분별 없이 먹고 마시면 어떻게 되나요?(1~3, 6~8절)
내 마음속의 탐심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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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부터 열세 번째 말씀까지 23:10~16
열 번째, 옛 지계석을 옮겨 선조에게 물려받은 땅 또는 현재 거주민의 땅을 빼앗거나,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힘 있는 구속자가 상황을 듣고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10~11절). 열한 번째, 훈계에 마음을 쏟고 지식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12절). 열두 번째, 아이를 훈계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13~14절). 강하지만 사랑이 담겨 있고, 일시적 감정이 아닌 분명한 목적이 있는 훈육은 아이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할 것입니다. 열세 번째는 훈계하는 목적을 알려 줍니다(15~16절). 훈계를 통해 자녀의 마음이 지혜롭게 되고, 그 입술이 정직을 말하게 됩니다.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 부모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부모가 아이를 훈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13~16절)
다음 세대가 지혜로운 마음과 정직한 입술을 갖도록 나는 어떻게 교육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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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향한 바른 조언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세우셔서 고대 서아시아의 대대적인 흉년을 구제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은 육체의 생명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생명까지 포함한다. 우리 자녀들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라는 말이 부모의 훈계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성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이 사회가 좀 더 아름답고 따뜻해지도록 네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이것이 아름다운 삶이고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이 신앙의 부모가 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자녀와 진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너는 어떤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래?”, “누구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네가 번 돈을 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 것을 구체적으로 결심하고, 이 결심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결재를 받는 아름다운 부모와 자녀가 되기를 기도한다.
사춘기 자녀 웃으며 키우기 / 김성중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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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장 3, 16절
사람은 자극적이고 당장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또 온갖 미디어는 인스턴트 음식과 같은 세상 쾌락으로 하나님 백성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순간적이고 불완전하여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참된 만족과 기쁨은 가장 정직하고 옳은 말인 하나님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완전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의 보고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두려움 가운데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 프란시스 첸
오늘의 기도
하나님,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삼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깨우쳐 주소서. 제 삶을 의롭게 비추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불의를 탐하지 않고 절제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누고 섬기며 하늘에 보화를 쌓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49 예수 따라가며)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음식과 재물을 탐하지 말고, 약자의 것들도 탐하지 말기를 바라시며,
우리의 아이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훈육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음식과 재물을 너무 과하게 탐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보다 앞서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고, 주의하자
항상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잘 돌아보면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이웃 사랑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말씀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훈계를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 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
오늘 본문은 지혜라는 커다란 주제하에 삼십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잠언 중 여덟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은 탐욕에 대한 교훈으로 음식에 대한 탐욕 즉, 식탐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은, 사회 약자와 자녀에 대한 교훈으로 조상들이 정한 땅의 경계를 함부로 변경하지 말고 자녀들의 훈계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 ‘너는 인색한 사람의 빵을 먹지 말며 그가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탐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문장에 나와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 즉, ‘그런 사람은 네게 ‘먹고 마셔라’라고 할지라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한 의도가 있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베풀고 먹을 것을 권하지만 실상은 음식을 통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요구를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 ‘옛날의 경곗돌을 옮기지 말고 고아들의 밭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문장 즉,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는 말에서 잘 나와 있습니다. 곧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분께서는 강하시니, 그들의 침입자들에 대해 탄원을 그대로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잠언으로, 오랜 기간 지켜온 땅의 경계를 권력과 돈의 힘으로 고아와 같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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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 부자가 되려고 잔머리 쓰지 말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나 계획을 멈추라는 말입니다. 다음 문장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라 가리라’ 즉, 새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날아가는 것처럼, 재물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니 그런 없어질 것에 정신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속성이 있는 재물을 위해 애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금언입니다.
돈보다는 시간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랍비들입니다. 사람들은 금전을 시간보다 더욱 소중하게 여기지만, 돈으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랍비들은 그래서 일생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고 시간이라고 합니다. 돈이나 재산은 욕심껏 손에 넣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생명이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유대인은 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그들의 전통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랍비들의 가르침, 보다 가치 있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돈 필요한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고 어떻게 보면 가정의 평화도 그것이 있어야 지켜질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걱정도 그만큼 느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재산이 없으면 걱정거리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는 쫓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속담처럼 쫓으면 더 멀리 가는 것이 부일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물의 속성을 독수리와 같은 새로 비유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새롭습니다. 그렇게 불투명한 것들을 쫓지 말고 확실한 것을 쫓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속도는 나이에 정비례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지 않는데 어른이 되면 쏜 살처럼 시간이 가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를 바랍니다.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 쓸데없는데 낭비하지 말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일에 전념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돈은 아무리 모으려 해도 날아가버리는 허무한 것입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5)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 되기에 애쓸 것이 아니라, 예배자 되기에 애써야 할 것입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부자 되기에 애쓰는 자들은 관원들과 친해지려고 먹고 마십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잠23:1~3)
관원들과 친해지려고 먹은 음식은 토하게 되고, 관원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내뱉은 아첨은 헛된 데로 돌아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잠23:8)
그런 자들은 앞에서는 선한 말을 하나 그 마음은 결코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함께 먹을 일이 아닙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잠23:6~7)
그러나 지금도 많은 기독교 종교인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눅16:14)
그러나 세상도 돈을 사랑합니다 같은 것을 사랑하면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 되기에 애쓰는 자가 아니라 예배자 되기에 애쓰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그리하면 우리를 기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시18:19)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고 우리의 걸음을 견고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2)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내 마음도 기쁠 것이다(14절)’
식탁에서의 예절, 삶의 현장에서의 관계나 재물에 관한 내용에 대해 부모는 자녀들에게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늘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때 이미 삶의 경륜을 가진 아버지로서는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나름대로의 터득한 기준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별것도 아닌 것(5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매달리지 않으며 썩어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도록 이미 그 길을 경험한 선배로서 도움을 주기를 아끼자 않으며 때론 매를 들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없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그 영혼이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까지 사랑하시고 또 훈계하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는 이들은 그 부모의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기뻐하게 할 것입니다. 그 은혜와 구원을 날마다 기억하며 매 순간 죄에서 돌이키며 하나님 주시는 회복을 경험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0,11절 약자들의 재산을 탈취하려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의 경계(지계석)를 허무는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구속자’(11절)는 레위기 25:25의 ‘고엘’과 같은 단어로, 연약한 친척을 대신하여 기업을 되찾아주는 자를 가리킵니다. 악인들은 편이 되어줄 가족이 없는 고아를 표적으로 삼겠지만, 하나님은 약자의 가족이 되셔서 친히 복수하실 것입니다. 땅과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닌 ‘부동산’으로 여김받는 오늘날, 세상 구조에 영합하는 일과 연약한 이웃의 가족이 되어주는 일 중 나는 어느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신앙인입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절 식탐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식사예절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특히 중요한 논의와 결정이 이뤄지는 자리에서 허기만 채우다 일을 그르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4,5절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마 6:19,20). 내 힘과 처세술로 축적한 이 땅의 부는 독수리처럼 날아갈 테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 사랑으로만 우리는 평가받을 것입니다.
6-8절 인색한 자(‘악한 눈이 있는 자’)가 베푼 진수성찬은 위선적인 친절과 뇌물일 것입니다. 음식과 접대에 현혹되어 악하고 미련한 일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시다.
9,12절 지혜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쓴소리라도 업신여기지 말고 마음과 귀를 열어 충고하는 훈계를 내 것으로 만드십시오.
13,14절 ‘체벌’을 ‘죽음’과 연관시키는 점이 당혹스럽지만, 강조점은 분명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영원한 죽음에 비한다면 훨씬 안전한 체벌을 사용해서라도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벌을 정당화하고 권면하는 게 아니라, 자녀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할 부모의 엄중한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부모가 먼저 아버지 하나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변화되는 모범을 보일 때 훈계의 권위와 효과도 나타날 것입니다.
✔ 지혜롭게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 영원한 가치를 붙잡는 삶이어야 합니다(1~5절).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라...’(1절). 관원과 함께 하는 식사는 단순한 식탁이 아니라 복잡하고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 있는 신중한 행동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대접한 주인의 마음 속에 불의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3절)입니다. 음식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은 일을 범할 수 있기에 목에 칼을 두어 절제하라고 명령(2절)하고 있습니다. 재물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4절). 왜냐하면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리기 때문...’(5절)입니다.
보이는 현상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언제나 신중함과 슬기로움으로 직면한 현실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헛된 수고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힘쓰는 삶을 통해 생명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제든지 놓아야 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그리고 화려한 집에서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이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원한 가치를 붙잡아 육체의 욕심을 제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불의한 것들을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6~9절).
‘...인색한 사람의 상에서 먹지 말고, 그가 즐기는 맛난 음식을 탐내지 말지어다...’(6절,새번역).. 악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곧 악인의 사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에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7절).. ‘계산하다’는 뜻으로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지 여부를 따져서 상대를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속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이해력과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악한 자와의 식탁 교제가 초래하는 결과는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갈 것...’(8절)입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유는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9절)입니다.
악한 자들의 유혹과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되어 불의한 삶으로 나아가지 않게 됩니다. 말씀이 내 자신의 삶의 기준이 되도록 하고, 판단의 기준이 되도록 하여 불의한 것들을 내 안에서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고집대로 살아갈 때, 후회와 탄식만이 남는다는 것을 인식하여 불의한 모든 것들을 버리는 삶을 통해 육체의 욕심을 제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완전한 지혜를 깨닫는 삶이어야 합니다(10~14절).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은 침범하지 말지어다...’(10절).. 타인의 약함을 이용해 그를 핍박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강한 손으로 택한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십니다...’(11절). 사람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참된 생명과 축복을 보장하는 지혜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면 오히려 그 인생을 망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 뉘우치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훈계와 징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12~13절).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14절,새번역).
지혜롭고,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은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참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지혜를 깨닫게 될 때,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깊은 영성으로 세상을 압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은 유혹과 시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참된 지혜를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말씀을 경청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내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가장 가치있는 영혼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지혜의 완전함을 깨달아 순간순간 일어나는 죄의 본성을 쳐서 주님 앞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잠 23:1~14절)...
누구와 사귈까?(1-8)
유대 사회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곧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하게 베푼 식물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악한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그 음식을 베푼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지 말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이 땅을 살다 보면 포악한 상사를 만날 때도 있고, 능력은 있지만 간교한 동료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대개는 그런 사람 편에 서는 것이 승진에 유리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사귀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함께 악한 일을 도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처세술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차라리 신실한 사람, 심지가 깊은 사람과 사귀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의 깊은 곳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도 가져야 합니다.
훈계에 귀를 기울여라(9-16)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있듯이 훈계나 좋은 충고가 듣기에는 불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혜자는 훈계와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면합니다. 설령 채찍이라도 그것을 달게 받으면, 그 영혼을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의 훈계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고 올바르고 효과적인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참된 교훈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영혼 깊은 곳에 참 지혜를 주시는 성령께 민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사람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기준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것입니까?
2. 나는 항상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1-3절 :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식탐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식사예절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특히 중요한 논의와 결정이 이뤄지는 자리에서 허기만 채우다 일을 그르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음식을 탐하지 않겠습니다.
식사예절을 잘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식사 자리도 조심해서 참석하겠습니다.
4,5절 :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마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내 힘과 처세술로 축적한 이 땅의 부는 독수리처럼 날아갈 테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 사랑으로만 우리는 평가받을 것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부자 되기를 힘쓰지 않습니다.
주신 것에 만족하며 살려고 힘씁니다.
자족을 배우도록 늘 훈련합니다.
물질을 잘 분배해서 쓰는 지혜를 갖길 원합니다.
날아갈 재물을 의지하지 않길 다짐합니다.
빚을 지는 일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있는 것을 지혜롭게 잘 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질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질을 잘 다스릴 수 있길 원합니다.
6-8절 :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인색한 자('악한 눈이 있는 자')가 베푼 진수성찬은 위선적인 친절과 뇌물일 것입니다. 음식과 접대에 현혹되어 악하고 미련한 일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시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인색한 자라고 했군요.
그러한 자가 누군가를 대접할 때는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으로 받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서 음식을 대접하고 면전에서 웃는 것이겠지요.
그런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분할까요?
감언이설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참으로 필요하네요.
거짓된 자들과는 어울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있지는 않는지 늘 살펴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인색함이 아니라 포근함으로 다가갈 수 있길 원합니다.
악하고 미련한 일에는 절대 동조하지 않길 원합니다.
10,11절 :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약자들의 재산을 탈취하려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의 경계(지계석)를 허무는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구속자'(11절) 레위기 25:25(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의 '고엘'과 같은 단어로, 연약한 친척을 대신하여 기업을 되찾아주는 자를 가리킵니다. 악인들은 편이 되어줄 가족이 없는 고아를 표적으로 삼겠지만, 하나님은 약자의 가족이 되셔서 친히 복수하실 것입니다. 땅과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닌 '부동선'으로 여김 받는 오늘날, 세상 구조에 영합하는 일과 연약한 이웃의 가족이 되어주는 일 중 나는 어느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신앙인입니까?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주님이 정하여 주신 경계를 넘지 않길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않겠습니다.
나의 본분에 만족하고 기뻐하길 원합니다.
진정으로 연약한 이웃을 돌볼 수 있는 마음 갖기를 원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9,12절 :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지혜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쓴소리라도 업신여기지 말고 마음과 귀를 열어 충고하는 훈계를 내 것으로 만드십시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좋은 진리의 말씀일지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헛될 뿐이겠지요.
주님의 말씀은 어떤 땐 감격으로 다가오지만, 어떤 때는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할지라도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것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말씀의 검으로 수술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음을 명심합니다.
13,14절 :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체벌'을 '죽음'과 연관시키는 점이 당혹스럽지만, 강조점은 분명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영원한 죽음에 비한다면 훨씬 안전한 체벌을 사용해서라도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벌을 정당화하고 권면하는 게 아니라, 자녀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할 부모의 엄중한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부모가 먼저 아버지 하나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변화되는 모범을 보일 때 훈계의 권위와 효과도 나타날 것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이것은 아이를 죽지 않을 만큼은 때려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지요.
말씀으로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 귀엽다고, 예쁘다고 바로잡지 않고 놔둔다면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 되는 연습도 하지 않은 채 엉겁결에 부모가 됩니다.
아무리 많은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예는 수두룩하지요.
자녀를 양육할 때 참 힘들었습니다.
잘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기분대로 야단치기도 하고 일관성이 없기도 했습니다.
부모 된 자로서 먼저 모범이 되지 못하면서 무조건 잘 하라고만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회개합니다.
바르게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 된 자가 먼저 올바로 서야 합니다.
현재의 내 모습도 주님의 훈계를 잘 따라야만 하고 훈련 시켜야 합니다.
나를 향한 채찍도 아끼지 말고 바르게 말씀 따라 살 수 있길 노력하겠습니다.
<탐식과 탐욕>본문/ 잠언 23:1-14
오늘 본문은 7개의 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4개를 중심으로 '탐식과 탐욕'에 대해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탐식
탐식은 7대죄의 6번째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탐식은 '과한 소비욕'을 갖는 것을 두고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1-3절)은 탐식을 제어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2절) 이 당시에 소비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였고 큰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음식소비에 있어 허황된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6번째 격언은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1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관원'은 왕이나 행정관 등 최고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준비한 만찬에 초대되었을 때 초대 받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매너'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음식을 탐하는 마음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을 살아갈 때에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먹고 소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소비에 있어 허세를 조심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통치자의 만찬에 초대되어 값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허세를 부립니다. 오늘날 과소비되는 것은 대부분 이런 측면입니다. 허세 때문에 소비합니다. 과소비는 다른 곳에서의 부족을 낳습니다. 내가 있다고 과소비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소비할 것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탐식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6-8절에서는 탐식의 다른 측면을 이야기합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6절) '악한 자의 눈'은 인색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인색한 사람이 음식을 대접할 때는 그 안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탐하여 그 초대에 응한다면 그것은 올무에 잡히게 되는 꼴이 됩니다. 그러기에 그런 경우는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과소비는 소비하여도 되고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소비할 때 말하는 것입니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헛된 것을 좇아가다가 거짓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것 중에 어떤 부분이 탐식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2.탐욕
탐욕은 7대죄에서 5번째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탐욕은 '과한 소유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려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4절) '애쓰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힘을 다 쏟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힘을 다 쏟아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어느 성경에서는 '노예가 되다'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힘을 너무 많이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는 수단일 뿐입니다. 부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여 선한 것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부 자체를 선으로 여겨 많이 소유하고자 합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단지 소유에 만족을 느끼는 그것은 탐욕입니다. 많이 소유하였다 하여 만족하고 신분이 높아진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탐욕입니다.
그러한 탐욕은 빨리 그쳐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4절. 새번역) 그렇게 인생과 힘을 단지 더 소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을 위해 모든 인생을 쏟았던 것도 함께 날아갈 것입니다.
탐욕을 가지면 더 소유하기 위해 나쁜 짓도 서슴없이 행하게 됩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10절) '지계석'은 땅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것인데 땅을 더 소유하고자 속이는 일을 합니다. 특히 '고아들의 밭'을 착취합니다. '고아'란 그들의 힘이 되어 줄 아버지가 없는 어린아이를 말합니다. 그렇게 저항할 힘이 없는 이들의 땅을 빼앗는 것은 쉽습니다. 그래서 탐욕을 가진 이들은 그러한 것을 더 노립니다. 그
러나 육체의 아버지는 없으나 하늘의 아버지가 보고 계십니다(11절). 그들의 탐욕은 분명히 크게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으로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자신은 단지 소유하고만 있으려고 다른 사람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습니다. 탐욕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과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릅니다.
탐욕으로 쓸데 없이 더 가지고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구두를 1000켤레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옷장을 비우고 통장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탐욕으로 가지고 있다가 썩히지 말고 좋은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탐식과 탐욕이 세상을 악하게 만들고 있고 영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모릅니다. 당사자들은 오히려 탐식과 탐욕이 많을수록 더 교만하고 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탐식과 탐욕을 구분할 줄 알고 깨트려야 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셔서
여호와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뤄가도록
초청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선악을 분별하고 지혜롭게 맡겨주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는 복된 주님의 제자로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기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참 아버지와 와 친구되신 주님을 찾아 신음하는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
말씀과 기도, 예배와 찬양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 가운데 그 인생을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