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3.1절 연휴로 쉬고난 다음날 출근한 뒤
아들녀석 예비군도 제대하여 민방위대에 편성되어
첫교육이 수요일이라 집에 올것이니 모레 목요일은
아차산에서 망우리로 넘어가 둘째 오빠네 들렸다 오자 한다.
어제 아침 잊어버렸는가 언니와 통화하느라 아무런 말이 없다.
슬며시 컵라면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놓고 기다린다.
아차산(287m) 안가? 가지머, 그래서 늦으막히 준비하여 11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로 나와 광장초등학교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미 시각은 12시를 가르키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산행 들머리를 찾아나선다.
광장초등학교 뒷편 오솔길을 지나 영화사 워커힐 갈림길에서 아차산 공원을 가로 질러
아차산성을 향하여 자연탐방로를 택하여 오름은 시작되고 울타리가 쳐진 산성을 지난다.
고구려의 남진책으로 백제의 개로왕이 죽임을 당하고 도읍을 웅진으로 옮겨야만 했고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둔 역사적인 곳이다.
그날의 함성이 마치 들리는 듯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요충지로 삼았던 한강의 옛이름 아리수에서 비롯되여
처음에는 아단성(阿旦城)이라 했고 후일 아차성(阿且城)이 되었고 산이름은
다시 지금의 아차산(峨嵯山)이 되었다고 하지만 상세한 기록이 없으니 설만 분분하다.
안부 네거리를 지나 조금 치고 오르니 팔각정 옆을 통과 대성암 갈림길이다.
대성암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고 비탈길을 가로지르며 한강을 조망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사이에 천마산 갑산 예봉산 예빈산 검단산 용마산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대성암 운길산 수종사를 연상케 한다.
발아래 훤히 내려다 보이는 한강물 워커힐 앞으로 새로 열린 토평으로 통하는 도로
한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누운 올림픽대로 동쪽 끝자락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종각 뒤로난 등로를 찾아 암자 뒤편 암릉을 조심스럽게 오르니 구렁이 등짝 같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이내 제4보루라고 하는 남쪽의 몇 안되는 고구려 유적지를 지난다.
살짝 내려서 바람 없는 곳을 찾아 앉아 컵라면과 막걸리로 칼칼한 목을 추긴다.
13시 30분 다시 용마산을 향하여 발걸음 옮기고 13시 50분 용마산(348m) 정상에서 선다.
서울이 한눈에 들어 오고 동으로 예봉 검단 북으로 불암 수락 서쪽으로 남산
남으로 청계산 발아래 중랑천이 삻곶이 다리를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망우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며 신내동 오빠네 들를거냐고 물었더니 그러잔다.
망자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는 유일한 서울의 공동묘지를 지난다.
1933년 공동묘지로 지정된 후 1973년 일만 팔천여기의 묘가 들어서면서 폐쇄되었다.
소파 방정환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하여 오세창 박인환 조봉암등 유명인사들도 누워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조용히 지나 오지만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조국의 발전과 민족번영을 굳게 지켜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조선 태조가 동구릉에 명당을 구하고 고개를 넘으며 이제는 근심을 잊겠다고 하여
망우산(281m)이 되었다고 하는 망우리 고개에 도착하니 15시 30분이였고
사십여분이나 더 걸은후 신내동 둘째 처남댁에 도착하여 하산주 얻어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쏟아지는 눈발 만큼이나 밝고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