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음을 빼앗고 싶을 때 남자는 편지를 쓴다. 한 줄 한 줄 꾹꾹 진심의 무게로 눌러쓴 편지를. 그러나 여자는 더 이상 편지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럴 나이가 지났다. 세상엔 여자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남자는 멋진 말을 준비한다. 남자가 말을 할 부분과 숨을 쉴 부분, 여자가 들어야 할 부분과 생각해야 할 부분을 세밀하게 나누어 또박또박 대화를 걸어본다. 그러나 여자는 듣기만 할 뿐 결코 행동하지 않는다.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끊임없이 흘려 보낸다. 결국 남자는 노래를 배우기로 한다. 철옹성 같은 여자 마음이 무장해제되기를 기대하며.
연애편지보다 세레나데가 여자 마음을 빼앗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걸 남자는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알고 있다. 세상엔 세레나데가 이미 많다는 걸. 글과 말이 흔해진 것처럼 노래도 흔해졌다는 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남자 곁에 누군가 다가와 힌트를 준다. “이 광고들이 도움을 줄 거야.” 남자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화면을 응시한다.
첫 번째 힌트는 ‘올드 스파이스(Old Spice)’ 남성용 보디 스프레이 광고다. 광고 속 엄마들은 노래를 부른다. 아들이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차 뒤에, 식탁 밑에, 바닷가 모래사장 속에, 혹은 커튼 뒤에, 소파 밑에 숨어서 노래를 부른다. 올드 스파이스 남성용 보디 스프레이를 뿌리고, 여자들에게 인기 있어진 아들을 슬프게 바라보는 엄마 심정을 처연하게 노래한다. 엄마밖에 모르던 아들이 세상의 여자들과 손잡고 키스하게 될 것이라는 것에 좌절하며 슬퍼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향의 남성용 보디 스프레이’란 메시지를 담는 방법으로 노래, 그것도 아들이 아닌 엄마의 노래로 담았다는 것에 이 광고의 매력이 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소년이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기쁨이 아닌 슬픔으로 느낄 단 한 명의 존재, 엄마. 그녀들의 노래는 슬프면서 재미있다. 만약 엄마들이 노래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글이나 말로 그녀들 속내를 이야기했다면 이 광고는 엄마들의 잔소리 같은 광고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에게 두 번째로 힌트가 된 광고는 ‘치폴레(CHIPOTLE)’라는 멕시칸 패스트푸드 체인 광고다. 이 광고엔 사람 대신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 출연한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캐릭터는 목장을 갖고 있다.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서 돼지와 소를 대량 생산해 낸다. 규모는 점점 커지고, 생산량은 증가하던 어느 날 밤, 문득 목장 주인은 생각한다. 이게 정말 좋은 방법인가?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처음으로. 돼지와 소를 둘러싸고 있던 축사 지붕과 벽들을 없애고, 자연방목 상태로 되돌린다. 기존 패스트푸드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치폴레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캠페인이다. 그들은 이 매끈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위에 노래를 토핑했다. ‘우리 사이의 문제를 퍼즐 풀 듯 논리와 머리로만 풀려 했던 나를 반성하고, 내 심장이 부르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가사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눈빛과 만나는 순간, 이 불후의 러브송은 새롭고 건강한 광고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스토리를 구성하고 난 뒤에 그에 맞는 음악을 고른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음악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구성시켜 출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같은 노래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에 남자는 신기해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힌트를 얻은 광고는 시럽(Syrup)이란 SK플래닛 앱 광고다. 고객 중심 서비스 지향점을 가진 이 앱은 ‘소비자는 왕이다’란 오래된 화두를 가장 트렌디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가수 탑(TOP)이 노래와 연기를 하며 “나는 왕이다(I’m the King)”란 메시지를 외치며 소비자를 세상의 중심, 쇼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포부를 담아낸다. 말로 직접 하기 자칫 촌스러울 수도, 쑥스러울 수도 있는 메시지가 래퍼 입을 통해 나오면서 시청자 언어로 번역된다. 누가 들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반영되면 메시지가 어떻게 증폭될 수 있는지 남자는 눈과 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남자는 이 광고들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왜 말이 아닌 노래여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 유명한 노래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새로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듣는 사람이 선호하는 장르의 노래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
누군가 마음을 빼앗기 위해 오늘도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광고는 충고한다. 노래는 묘약이면서 독약이다. 새롭기도 하지만 진부하기도 하다.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또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이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을 비주얼과 메시지 배경에 두는 순간, 아이디어는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다. 비주얼과 메시지를 같은 선상에서 손잡고 출발할 때 누군가 마음을 훔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연애편지보다 세레나데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멜로디를 가진 언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되고, 세밀하게 완성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다시 기타를 잡고,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한다. 어떤 노래여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노래여야 하는지 이제 명확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