載嶽山을 天皇山으로 조작한 초기에 산명에 대해 일본인이 갈팡지팡하는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 《新編朝鮮地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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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도재국 :
본 문헌은 26.10.11 새로운 載嶽山 증거 문헌으로 채택합니다
■ 요약
●문헌 명칭 : 新編朝鮮地誌
●편저자(編著者): 渋江桂蔵 1877~1945 (시부에 케이조)
●소장처 : 日本 國立國會圖書館
●성격 및 특징: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지리학자이자 향토 연구가인 시부에 케이조가 조선의 각 도(道)와 군(郡)의 지리, 산세, 역사적 연혁, 그리고 수계(水系) 등을 종합하여 편찬한 지리 문헌.
■ "新編朝鮮地誌"에 대한 "●●● 선생님"의 분석 및 평가
"일제가 '천황산'이라는 이름을 강제로 덮어씌우는 과정에서 남긴 결정적인 허점과 과도기적 흔적"을 입증한다는 것을 의미.
1. "천황산은 원래 있던 이름이 아니라, 일제가 급조한 이름이다"
만약 '천황산'이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불리던 정통 지명이었다면, 조선의 기록은 물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지리지에도 당연히 '천황산' 하나만 적혀 있어야 함.
하지만 『신편조선지지』에 '천황산'과 '載嶽山'이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1910~1920년대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지도에 '천황산'을 막 등재하기 시작하면서 민간과 학계에 명칭의 혼선이 일어났던 '지명 왜곡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
2. "산 전체의 진짜 정체성은 결국 '載嶽山'이었다"
책을 쓴 일본인(시부에 케이조)조차 총독부 지도를 참고하느라 봉우리 이름에는 '천황산'을 끌어왔지만, 밀양강(응천)의 발원지와 핵심 산줄기를 설명할 때는 본래 이름인 '재악산(載岳山)'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아무리 행정 지도에 '천황산'이라는 인공적인 명칭을 덮어씌웠어도, 지역의 산천 생태계와 역사적 본질(강의 근원)은 여전히 '載嶽山'으로 인식되고 작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함.
3. 지명 복원 추진에 결정적이고 치명적 물증
지명 복원 심의나 지자체/정부 설득 시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가장 큰 논거는 "천황산이라는 명칭의 비정상성과 일제강점기 강제 개칭의 정황"입니다.
이 자료는 "한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직접 쓴 지리지에서도 '載嶽山'이 산의 뿌리이자 진짜 이름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객관적이고 강력한 반박 사료 임.
■ "新編朝鮮地誌"에 대한 도재국의 분석 및 평가
일본인은
《新編朝鮮地誌》의 天皇山을 지금의 天皇山으로 보았으며
載嶽山은 지금의 載藥山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선생님"처럼 일본인들도 조선의 정통 지리문헌 등에는 天皇山이 아니고 載嶽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난데없이 일제가 조작한 해발 1189m 천황산과 해발 1108m 載藥山 때문에, 원래의 해발 1189m 載嶽山을 헷갈려하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보입니다.
신라시대부터 지금의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靈井寺 또는 載嶽寺였습니다.
1839년에 靈井寺(또는 載嶽寺) 주지 《月坡 天有》가 해발 1189m 載嶽山을 載藥山으로 변개하고, 또 절 이름도 表忠寺로 변경했습니다.
1839년 부터 표충사가 갑자기 配山으로 불러온 해발 1189m 載藥山을, 일제가 1923년에 빼앗아 天皇山으로 하여 그들의 君主인 天皇에게 봉헌하므로써, 표충사와 신도 등 조선민중의 반감을 잠재워 회유하기 위해서 《載嶽山群》에서 두번째로 높은 해발 1108m 수미봉(須彌峰)을 載藥山으로 조작하여 표충사의 配山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즉, 일제(日帝)가 최고봉인 해발 1189m 獅子峰으로서 載嶽山인 표충사의 창건설화가 있는 載嶽山을, 1839년에 월파천유가 變改한 載藥山의 명맥을 이어주었습니다
즉, 표충사의 의도와 다르게 수미봉에 억지로 載藥山을 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표충사의 창건설화로 불리는 《載藥山靈井寺古蹟》을 조사한 결과, 18세기에 영정사에 주석한 《東溪 敬一 禪師》가 지은 《載岳山記》와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변개한 산명이 해발 1189m 載藥山입니다.
정체가 불분명한 鄭東溪가 위 두 文獻에 적힌 《載岳山》을 《載藥山》으로 變改한 僞作이 《재약산영정사고적》 임이 밝혀졌습니다.
《신편조선지지》에 적힌 《향봉》은 표층사 맞은편(남쪽)의 지금의 《香爐山》입니다. 이 향로산은 원래 載嶽山群에 속한 香爐峰을 일제가 1923년 香爐山으로 조작했습니다.
조선 천지의 전통사찰의 배산은 전부 절 뒤에 있는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붙여진 산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선팔도에서 표충사만이 유일하게 두번째 높은 산봉우리를 배산으로 한 것은, 해발 1189m 天皇山과 해발 1108m 載藥山 둘 다 "일제가 조작한 산이름"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載嶽山을 천황산으로 조작하고,
載嶽山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 載嶽山群에 속한 수미봉을 載藥山, 향로봉을 香爐山으로 분리, 파편화시켰습니다.
■ AI Gemini 님의 번역 및 분석
1. 서지 정보
서명(書名): 新編朝鮮地誌 (신편조선지지)
편저자: 渋江桂蔵 編 (시부에 케이조 편)
2. 원문 (한자·가타카나 혼용문)
...郡界ニ眞劍山及華岳アリ. 梁山郡トノ界ニ八天皇山及香峰アリ、郡ノ東北ニハ載嶽山聳へ其他大小ノ山脈起伏シテ山勢何レモ峻險デアル、然ルニ南方一面八所謂洛東...章道南向慶居ル、密陽江ハ一名凝川ト稱シ源ヲ■道郡雲門山及ビ郡東ノ載嶽山二發シ、丹場、穿火、山外ノ諸面ヲ經テ府內面二入リ南流シテ三浪津二...
3. 정확한 한국어 번역
...군 경계에는 진검산(眞劍山) 및 화악(華岳)이 있다. 양산군과의 경계에는 천황산(天皇山) 및 향봉(香峰)이 있고, 군의 동북쪽에는 재악산(載嶽山)이 솟아 있으며, 그 외 크고 작은 산맥이 기복하여 산세가 모두 험준하다. 그러나 남쪽 일면은 이른바 낙동... 남쪽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밀양강은 일명 응천(凝川)이라 칭하며, 발원지는 ■도군(청도군 등) 운문산 및 군 동쪽의 재악산(載嶽山)에서 발원하여, 단장·천화·산외의 여러 면을 거쳐 부내면으로 들어가 남쪽으로 흘러 삼랑진에...
💡 주요 지명 정리
載嶽山(재악산): 군의 동북쪽에 솟아 있으며, 밀양강(응천)의 발원지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天皇山(천황산) 및 香峰(향봉): 양산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지칭되어 있습니다.
密陽江(밀양강) / 凝川(응천): 운문산과 載嶽山에서 발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도재국 선생님"이 Gemini 님께 "●●● 선생님"이 보내주신 《신편조선지지》 사진을 전부 Gemini님께 전송하여, "서지 정보"를 다시 요청한 결과,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도재국 선생님, 서울에 계신 "●●●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신편조선지지(新編朝鮮地誌)》의 서지 정보를 다시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 『신편조선지지(新編朝鮮地誌)』 서지 정보 분석
●서명 (書名): 신편조선지지 (新編朝鮮地誌)
●편저자 (編著者): 시부에 케이조 (渋江桂蔵, 1877~1945)
●성격 및 특징: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지리학자이자 향토 연구가인 시부에 케이조가 조선의 각 도(道)와 군(郡)의 지리, 산세, 역사적 연혁, 그리고 수계(水系) 등을 종합하여 편찬한 지리 문헌입니다.
이 문헌은 조선 총독부 통치 초기에 조선 전역의 지명을 수집·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존 조선의 邑誌와 地理誌 기록을 어떻게 일본식 지명 체계와 절충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과도기적 사료(핵심 보증)입니다.
🔍 본문 사료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
제시된 본문 발췌 내용을 보면 "도재국 선생님"과 "●●● 선생님"께서 날카롭게 짚어주신 바와 같이, 당시 일제 관변 지리지에서도 지명 혼란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천황산(天皇山)과 향봉(香峰)의 분리 기재:
양산군과의 경계 지역에 '천황산'과 '향봉'이 있다고 기록하여, 일제가 이미 인위적으로 이식하기 시작한 지명 체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밀양강 발원지로서의 '재악산(載嶽山)' 명기:
밀양의 젖줄인 밀양강(응천)의 근원을 설명하면서 "군 동쪽의 재악산(載嶽山)"에서 발원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전통 지리지들이 한결같이 밀양강의 으뜸 발원산으로 '載嶽山'을 지목해 온 정통성을 일본인 편저자조차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수록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 선생님"과 함께 꾸준히 발굴하고 계시는 이러한 사료들은, 오늘날 우리가 현행 지도의 잘못된 '천황산' 표기를 바로잡고 원래의 역사적 명칭인 '載嶽山(재악산)'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더없이 소중하고 강력한 95건 보증(九十五件寶證)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