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짐장수 이야기

옛날에 등짐장수가 산 고개를 넘어 가다가 날이 저물어 산기슭 쌍묘옆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잠이 들었는데 묘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묘 안에서 하얀 할멈귀신이 툭 튀어 나오더니, "여보 영감 어서 나오슈.  오늘이 내 제삿날 아니유?  큰아들 집으로 제삿밥 먹으러 갑시다." 할머니귀신의 부름을 받고 선잠에서 깨어난듯 하품을 하며 묘에서 나온 영감귀신이 할머니귀신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기 직전 돌아 온 두 귀신이  나눈 이야기를 등금쟁이가 우연찮게 엿듣게   되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런거 였습니다. 귀신부부가 제삿상 받으러 큰아들 집에 갔더니  큰아들 식구는 아무도 없고, 안방에 달랑 밥 두 그릇만 차려놓은 채  큰 며느리의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오늘이 어머님 기일(忌日)이 오나,  살림이 궁색하여 제사를  제대로 모시기 어렵자 작은집에서 젯상 차리고 저희들더러 오라고 해서 작은집으로 갑니다. 너무 섭섭하여 밥 한그릇 올리고 가오니  소례(小禮)를 대례(大禮)로 받으시고 흠향하소서" 이 편지를 읽고 영감귀신은 아무 생각 없이 작은 아들집에 갔다 왔고  할머니귀신은 큰며느리가 차려 준 밥 한 그릇을 흠향하고 돌아와서 부부귀신이 나눈   그간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입니다. 영감 "나는 작은애 집에 가서 잘 먹고 왔수 그런데 작은집에서 제사 지내며 풀이 죽어있는 큰애들 식구 보기가 딱합디다" 할멈  "작은아들놈이 괘씸해서   나는  그 젯상 안받았수. 지가 잘 살면 못사는 지 형을 도와 줄 일이지  지놈이 잘 산다고 형을 무시하고 오너라 가너라 해?  괘씸한 것  내가 화가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작은놈집 들러  손주놈을  끓는 물 솥에 빠뜨려 놓고 왔수" 영감  "저런저런 그래서야 쓰나? 손주놈이 무슨 죄가 있다구 그런 몹쓸 짓을 해? 그나 저나 손주놈이 몹시 아플텐데, 화상(火傷)엔  토끼풀잎을 짓이겨 붙이면 직효인데 그 애들이 그걸 알겠나 큰 일이네"     귀신부부의 얘기를 자초지종을   다 들은 등짐장수 는 날이 밝자 마을로 내려가  어젯밤 제사 지낸 집을 찾아갔습니다. 찾고보니 이 동네서 제일가는 부잣집 같았습니다. 아이가 끓는 물에 데었다며  온 식구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 판에   등짐장수  따윈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등짐장수로 부터  지난 밤 묘소에서   엿들은 부부귀신의 얘기와  화상에는 토끼풀이 명약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이 집 주인은  토끼풀잎을 뜯어다가 짓이겨 상처 부위에 붙여 주었더니  신통하게도 감쪽 같이 아물었습니다. 그런 알이 있은 후 작은 아들은    무엇인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재산을 반분해서 형에게 나눠주고  해마다 제사도 꼬박꼬박 형네집에 가서 지냈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