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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렘2-18)
2026년 10월 7일 (수요일)
찬양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 예레미야 18:1-23절
☞ https://youtu.be/u-17UX61ywA?si=P5ksyxUzVaMXP_5R
어제 쉼이 필요했지만, 더 소중한 일이 있어 쉼을 가지지 못한 후유증을 오늘 겪는다. 삶은 피해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며 우선순위를 따라 주어진 자리를 채워가야 함을 분명히 배운다.
오늘은 내일 있을 목회사관학교 강의 준비를 완료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나누기를 한다. 모든 시간 주님의 기름부어 주시는 은혜 안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18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초대하여,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작업을 통해, 온 우주의 주권자가 누구이신지를 예레미야에게 생생하게 확인시키고 계신다.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4절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그 그릇이 손에서 터지고 망가졌을 때, 토기장이는 그 실패한 진흙을 내다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완전히 '다른 그릇'으로 다시 빚어낸다.
이는 이스라엘이 비록 죄악으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그릇이 되었을지라도,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신다는 위대한 소망의 메시지다. 하나님은 징계라는 물레를 통해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그릇으로 다시 빚어내실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운명이 바벨론이나 애굽 같은 세상 강대국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인생과 역사는 오직 진흙을 빚으시는 토기장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이 말씀이 깊은 울림이 되어 내 귓가에 계속 맴돈다.
이 사실을 예레미야의 가슴에 분명히 각인시키신 하나님은, 이제 그 진흙을 어떤 그릇으로 빚어가실지 그 선택의 기준을 7-10절에 걸쳐 이렇게 밝히신다.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라도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면 심판의 뜻을 돌이키고, 반대로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라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그 베풀려던 은혜와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신다.>
하나님은 택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을 결코 기계적인 운명론으로 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언제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 그리고 공의로우신 눈으로 우리를 섬세하게 빚고 이끄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예레미야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향해 임박한 재앙의 소식을 전하여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라고 요청하신다.
예레미야는 순종하여 그것을 전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참으로 놀랍다. 12절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의 이 애절한 부르심에도 유다는 <이는 헛된 말이라>며,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고 회개의 자리를 뻔뻔하게 포기해 버린다.
하나님은 이들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선언하시며, 대자연도 따르는 순리를 거역한 채, 영원한 생수이신 하나님을 잊고 닦이지 않은 험한 곁길로 스스로 파멸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7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성경에서 '동풍(시로코, Sirocco)'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열풍으로, 이 바람이 불면 모든 식물이 순식간에 바짝 말라 죽어버린다.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실 때, 마치 이 무서운 사막의 열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말려버리듯, 바벨론이라는 원수들을 통해 유다를 흔적도 없이 흩어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 민수기 6:24-26의 아론의 축복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축복이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샬롬) 주시기를 원하노라"임을 기억하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와 보호, 생명 그 자체다. 그런데 환난과 재난의 날에 하나님께서 <내 등을 보여주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라고 하신다. 백성들이 먼저 진리를 거부하고 등을 돌렸기에,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원했던 대로 똑같이 등을 돌려버리신다는 가장 무섭고도 뼈아픈 심판의 선언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살리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치자고 모의한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마지막 기도를 올려드린다. 23절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
그는 20절에서 고백했듯, 지금까지 그들의 멸망을 막고 돌이키게 하려고 주님 앞에서 유익한 말씀을 전하며 눈물로 중보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그를 죽이려 암살 음모를 꾸몄고 끝내 회개하기를 거부했다.
그 결과 17절에서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선고되자, 예레미야는 이 결정에 동의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지극히 합당하고 공의로우심을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18-23절에 걸친 예레미야의 마지막 기도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스스로 갚지 않고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이 처절한 기도가, 내게는 솔직히 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수기도 하시고 새롭게 빚기도 하시는 모든 주권이 오직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그 처분만을 바라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살아가는 사명자의 십자가요 삶임을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된다.
나의 후반전을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부르셨으니, 나 역시 예레미야의 이 처절한 심정과 고독을 배워가야 할 터인데 솔직히 내 연약함으로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진흙이 어찌 스스로를 빚을 수 있으랴. 내 힘과 의지가 아니라, 나를 빚으시는 주님의 붙드심과 긍휼하심만을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묵묵히 말씀에 청종하며 나아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나는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토기장이 되신 주님, 이 종을 당신의 뜻대로 빚으시고 사용하여 주소서.
한줄 묵상 :
<스스로를 빚어낼 힘이 없는 연약한 진흙임을 인정하고, 실패한 그릇도 새롭게 빚어내시는 '토기장이의 손'에 내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적용 질문 :
1. 나는 내 인생과 사역의 결과가 실패조차 새로운 그릇으로 빚어내시는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을 굳게 신뢰합니까?
2.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시려고 징계와 책망의 말씀을 주실 때, 나는 즉각 회개함으로 응답합니까? 아니면 "헛된 말이라"며 여전히 내 고집과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3. 사역과 삶의 자리에서 내 진심이 왜곡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의 모든 계략을 아시는 '공의로우신 주님'께 심판을 온전히 맡겨드리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