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려고 나서니 세상이 하얬다. 1월 6일, 폭설이었다. 대중교통 마니아인 내가 하필 이런 날 차를 가져오다니. 결국 1시간이면 되는 거리가 무려 3시간 30분 걸렸다. 긴장되고 지루한 와중에 이상한 광경을 봤다. 오르막길이 주차창으로 변했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외제차였다. 내 국산SUV는 오르막길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긴 했어도) 전진에 문제가 없었다. 이상하네. 바퀴 헛돌면서 구르는 차는 왜 죄다 벤츠, BMW, 아우디야?
합리적 의심이었다. 고성능 외제차들은 후륜구동인 경우가 많은데도 윈터타이어(겨울타이어)나 사계절타이어 대신 썸머타이어(여름타이어)를 끼고 출고된다. 고성능 수입차나 국내 고급세단은 승차감과 주행안정감을 우선시하므로 후륜구동을 선호한다. 후륜구동은 동력을 생산하는 엔진과 구동축이 분리되어 있어 운동성능이 월등히 뛰어나고 코너를 돌 때도 정교하다. 좋은 차를 타면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후륜구동 차량이 여름타이어와 만나면 눈길에선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 후륜구동인 고급차는 그럼 왜 여름타이어를 쓰느냐. 겨울 시즌을 제외하면 여름 타이어가 월등히 좋다. 코너링, 핸들링, 제동 면에서 압도적이다. 자동차 유튜버 김한용 씨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차 처음 타면 ‘야, 핸들링 진짜 좋다’ 이런 느낌을 받지만, 타이어만 바꾸면 국산차와 별 차이를 못 느낄 때도 있습니다.” 양날의 검이다. 매끄러운 승차감이냐, 울퉁불퉁한 안전함이냐. 축구화와 농구화의 밑창이 다르듯 여름타이어와 겨울타이어는 고무의 성분 자체가 다르고, 마찰력이 다르다.
여름타이어 아닌 사계절 타이어는 그나마 눈길이 아닌 겨울에는 그럭저럭 움직이지만, 여름타이어는 조금만 미끄러워도 바퀴가 헛돈다. 눈길에서는 아예 전진조차 못한다. 내가 6일 밤에 숱하게 목격한 그 외제차들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후륜구동차가 눈길에 맥을 못춘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후륜구동차와 여름타이어의 조합이 그렇다고 말하는 게 맞다.
가장 먼저 제동거리
왼쪽부터 윈터 ㅡ 올시즌 ㅡ 썸머
다음은 코너링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