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매출 200억 '바르다, 김선생'
- 비싼 만큼 좋은 재료
남해안 간척지 쌀부터
무항생제 계란 등 사용
색소·MSG 첨가물도 빼
- 30~40대 젊은 엄마 공략
'바른 먹거리' 관심 높고
교육·경제력도 뒷받침
'프리미엄' 이미지 통했다
지난 6일 낮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관. 초밥, 메밀, 한식, 수제버거, 샌드위치 등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 전문점이 들어선 '맛집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곳에 유독 사람들이 북적이는 코너가 있었다. 40여명이 몰려 있는 틈을 뚫고 안을 보니 의외로 김밥과 만두를 파는 분식집이었다.
회사원 정지현(29)씨는 바(bar)에 앉아 5200원짜리 '제육쌈김밥'을 먹고 있었고, 옆자리에서는 주부 박세정(41)씨가 '크림치즈김밥'(5200원)과 '비빔면'(6000원)을 먹고 있었다.
이 분식집의 이름은 '바르다, 김선생'(이하 김선생). 매주 7000~8000명이 찾는 이 백화점 김밥집에선 하루 평균 김밥 1100~1500여줄이 팔린다. 김선생은 신세계백화점이 식품관을 새 단장한 지난해 7월부터 줄곧 매출 1등을 기록하고 있다. 뉴욕에서 온 프리미엄 식료품점 딘앤델루카를 꺾었다. 박씨는 "'김가네'나 '김밥천국'보다 비싸긴 하지만, 비싼 만큼 속이 꽉 차있고 맛이 있었다"고 했다.
-
- 나상균 대표
2013년 7월 론칭한 김선생 프랜차이즈 매장은 1년 반 만에 전국 80여개에 달한다. 김선생을 운영하는 업체는 '죠스떡볶이'로 유명한 죠스푸드다. 2007년 론칭한 죠스떡볶이 매장은 전국 450여개에 이른다. 떡볶이와 김밥의 연이은 성공으로 지난해 죠스푸드 본사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고, 이 중 김선생의 비중은 20% 정도였다. 지극히 평범한 분식업을 차별화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죠스푸드 나상균(39) 대표와 인터뷰 내용을 김근배 숭실대 교수가 최근 펴낸 '끌리는 컨셉의 법칙'과 장대련 연세대 교수가 쓴 '트랜스 시대의 트랜스 브랜딩', KTF의 'SHOW'를 론칭한 마케팅 전문가 조서환이 쓴 '근성: 같은 운명, 다른 태도' 등에 의거해 정리해 봤다.
포인트① 감춰진 욕구(hidden needs)를 건드리다
김선생 김밥은 한 줄에 3200~4800원(백화점 매장은 3900~5800원) 정도로, 경쟁 업체의 1500~3500원에 비해 눈에 띄게 비싼 편이다.
대신 고급 재료를 쓴다. 색소·사카린·빙초산·방부제·MSG 등 5가지 첨가물이 없는 '5무(無)' 정책을 고수하고, 해남 청정 지역 원초를 사용해 두 번 구운 김, 무기질 함량이 높은 남해안 간척지 쌀, HACCP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생산한 무항생제 계란, 54년간 3대를 이어 만드는 울산 우가포 참기름, 저염 햄을 사용한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가보면 '신뢰가 전부라는 마음으로 절대로 재료만은 타협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죠스푸드 나상균 대표는 "신선한 재료로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했다"며 "김밥이나 떡볶이는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싸구려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깨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근배 교수의 '끌리는 컨셉의 법칙'으로 보면, 이는 숨어 있는 사회적 욕구를 꿰뚫어본 결과다.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대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게 한다는 엄마들의 죄책감을 덜어준 것이다. 나 대표는 "아이들에게 검증 안 된 재료로 만든 김밥을 사 먹이면서 엄마들이 느끼는 미안한 감정, 부담감을 덜어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햇반도 비슷한 경우였다. 처음 햇반을 출시할 때 강조됐던 마케팅 포인트는 '편리한 밥'이었다. 그러나 이 콘셉트는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았다. 너무 간편한 밥을 남편과 아이에게 내놓는다는 엄마들의 죄책감을 자극했던 것. 햇반은 결국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햇반은 잘 만들었습니다"란 새로운 콘셉트를 채택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김근배 교수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소비자들은 이미 건강한 분식을 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감춰진 욕구(hidden needs)'를 잘 건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장대련 교수는 "일견 김밥은 건강과는 잘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김선생은 고정관념을 초월해 이를 연결함으로써 트랜스(초월적) 브랜딩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포인트② 뚜렷한 타깃 고객
요즘처럼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기업은 핵심 고객을 분별해 내야 한다. 조서환씨에 따르면 "이렇게 좁은 시장을 공략해서 과연 무슨 이익이 남느냐"고 걱정할 정도로 핵심 타깃을 쪼개고 또 쪼개야 한다. 그래야 그 좁은 시장에서 확고한 1등이 될 수 있고, 장차 더 넓은 시장에서도 1등이 될 수 있다.
김선생은 '30~40대 젊은 엄마들'을 집중 공략했다. 최근 가장 왕성한 소비 활동을 보여주는 집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 대표는 최근 1~2년 사이 모바일 쇼핑, 해외 직구, 몰링 같은 유통업계의 최신 유행들을 모두 이 젊은 엄마들이 주도했다는 데 착안했다.
2007년 죠스떡볶이를 시작할 때 타깃 소비자층은 당시 유행을 선도하던 20~30대 미혼 여성이었다.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많이 바르는 이들이 떡볶이를 포크나 숟가락으로 잘라먹는 것을 보고, 아예 떡 크기를 한입에 쏙 들어가는 3.5㎝ 길이로 줄였다. 나 대표는 "6년이 지난 뒤 현장을 둘러보았더니 젊은 엄마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선생이 시장 동향을 살필 '안테나숍' 1호점을 서울 동부 이촌동에 낸 것도 새로운 타깃 고객인 젊은 엄마들을 잡기 위한 전략이었다. 나 대표는 "교육·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 각종 구매 정보에 민감한 젊은 엄마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첫 점포를 개장해서 강력한 입소문 효과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출산·맞벌이 사회에서 30~40대 젊은 엄마들의 구매력이 올라가자, 김선생도 이런 소비자 집단의 취향을 파악하고 프리미엄 김밥이라는 틈새시장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인트③ 사야 할 이유를 오감(五感)으로 느끼게 하라
김근배 교수에 따르면 어떤 제품의 가격 대비 가치는 세 가지 요소의 곱으로 결정된다. 즉 차별성×필요성×유형성이다. 이 중 유형성이란 제품 콘셉트가 주장하는 내용을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김선생은 미각은 물론, 시각과 후각을 동원해 유형성을 높였다. 김선생 매장은 콘셉트를 전달하는 도구로 매장 내 식재료 사진을 사용했다. 5무(無)라든지, 두 번 구운 김, 남해안 간척지 쌀 등의 사진을 붙여두고 펜글씨체로 일일이 설명한다. 김근배 교수는 "인간의 인식은 언어 구속적이고 상징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는다"며 "김선생은 매장 곳곳에 신선함을 강조하는 식재료 사진을 '품질 단서(quality cue)'로 걸어두고 브랜드 콘셉트를 유형화했다"고 말했다.
김선생 매장에 들어서면 저절로 식욕이 돋는다. 고소한 참기름향 때문이다. 국내산 통참깨를 찜누름 방식으로 짜낸 터라 그 향이 더욱 신선하다. 후각, 청각, 미각은 일반적인 상품의 경우엔 지속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소매업이나 접객 서비스 업종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포인트④ 불황 속 작은 사치
김선생 김밥은 한 줄에 4500원이나 하는 비싼 김밥이지만, 따지고 보면 커피 한 잔 값과 비슷해 '불황 속 작은 사치'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에게 통한다는 분석도 있다. 개당 가격이 4000원인 프랑스 디저트 마카롱 매장이 개장 첫날 4000만원 매출을 올리고,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일본 롤케이크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애당초 김밥은 절대적으로 가격이 낮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고가 소비를 하더라도 경제적 부담은 적은 반면, 사치를 누렸다는 정서적 만족감은 크다"고 말했다.
포인트⑤ 김밥 선생님? 콘셉트를 하나의 키워드로 콕 찍다
'바르다, 김선생'이라는 이름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르다'라는 직설적인 표현과 함께, 김밥의 주재료이면서 동시에 국내에 가장 많은 성씨인 '김(金)'에 존칭 '선생'을 붙였는데,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한 분야에 깊이 고민하는 이미지와 함께 어딘가 괴짜 같고 유머러스한 느낌도 준다.
콘셉트는 하나의 키워드로 콕 찍을 때 파괴력이 생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출시돼 일본 두부 시장을 석권한 '오토코마에 두부(男前豆腐·남자다운 두부)'다. '진정한 남자는 당신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포장지에 큼지막하게 '남(男)'자를 써넣었다. 두유 농도를 높여 훨씬 고소하고 진한 맛을 냈다는 점을 남자다운 두부라는 표현으로 압축한 것이다.
[김선생의 비밀]
5無 백 단무지…… 5無(삭카린나트륨, L-글루타민산나트륨, 합성보존제, 표백제, 빙초산) 백 단무지
바른 참기름…… 53년 전통 찜누름방식으로 참깨의 고소함을 살린 참기름
無항생제란…… HACCP 인증 청정 농장의 건강한 닭이 낳은 좋은 계란
청정지역 김…… 해남산 원초만을 엄선하여 두 번 구운 김
저염햄…… 나트륨 함량은 줄이고 맛은 더욱 좋아진 햄
바른 간척지 쌀…… 무기질 함량이 풍부한 남해안 간척지 쌀
※바르다 김선생에 가면 이와 같은 안내문이 사진과 함께 벽에 붙어 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