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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판자가 아니라 빚어지는 진흙입니다 (렘2-19)
2026년 10월 8일 (목요일)
찬양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본문 : 예레미야 19:1-15절
☞ https://youtu.be/PwLnSJung-s?si=t6H-Fj4FQH_xXSox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5주차 수업이 있다. 수고하실 사관생도들과 강사님들에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새 힘이 있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어 주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다 구워진 옹기를 하나 사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들과 함께 예루살렘 남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면 앞선 18장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18장에서 그들은 여전히 다시 빚을 수 있는 부드러운 '진흙'이었지만, 19장의 유다는 고집과 죄악으로 이미 불에 구워져 '단단한 옹기'처럼 굳어버렸다. 이제는 다시 물레에 올려 빚을 수 없는 상태, 즉 회개의 기회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두려운 말씀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3절에서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하게 하신다. 그 뼈아픈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4-5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성벽 남쪽과 서쪽을 감싸고 도는 깊은 계곡이다. 이 골짜기는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 시절, 암몬의 가증한 우상인 '몰렉(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는 중심지였다. 몰렉 제사의 핵심은 '자기 자녀를 불 위로 지나가게 하여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였다. 하나님이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내 마음에 둔 적도 없는" 가장 가증한 죄악이 바로 이 골짜기에서 자행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피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이곳의 이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신다. 6절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살륙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이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에 얼마나 끔찍한 대학살이 일어나는지, 묻을 자리가 모자라 이 쓰레기장에 시체들을 무더기로 내다 버리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심판의 선고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아이들을 죽여 우상에게 바치던 그 자리가, 결국 자기들의 썩은 시체로 채워지는 '살륙의 무덤'이 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무서운 보응과 함께,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리신다고 선언하신다. 7절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여기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이란,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짜냈던 '인간적인 모든 생존 전략과 얄팍한 술수'를 의미한다.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려던 외교적 수단, 우상에게 빌어 평안을 얻으려던 종교적 타락, 그리고 성전이 있으니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된 낙관론까지. 하나님은 그들이 단단한 항아리 속에 소중히 담아 의지했던 이 모든 헛된 계획들을 물을 쏟아버리듯 완전히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하시며, 이제 예레미야에게 가져온 옹기를 산산조각 깨뜨리게 하신다. 10-11절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이토록 철저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선언하신 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다시금 그 뼈아픈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신다. 이 마지막 선언이 오늘 내 마음에 깊은 묵상의 주제로 다가온다. 15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완전한 심판을 선고하시면서도, 하나님께서 굳이 그 죄명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이 무서운 재앙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정당한 결과임을 선포하심과 동시에,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탄식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을 향한 마음이 완전히 끝났다면 아무런 설명 없이 쓸어버리시면 그만이다.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는 이 말씀 속에는, 역설적으로 "나는 너희가 제발 내 말을 듣고 살기를 그토록 원했다"는 찢어지는 아버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차가운 재판관의 판결문이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며 매를 드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심정임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온전히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본문은 내게 두 가지를 엄중하게 외치고 있다.
하나는 회개할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부드러운 진흙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빚어지기를 거부한 결과, 내 고집과 교만으로 목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면 결국 깨어진 옹기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이 무서운 심판 선언 속에서도 하나님은 완전히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렇기에 진정한 심판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나는 이날까지 사역의 길을 달려오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내 잣대로 판단하고 심판해 왔다. 그러나 그 숱한 심판의 자리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향해 하나님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피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조차 없는, 심판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역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더 이상 누군가를 심판하는 교만의 자리에 서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오직 긍휼의 눈으로 형제를 포용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묵묵히 순종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한다.
주님, 굳어진 내 마음을 깨뜨려 주시고, 피눈물 없는 차가운 가슴으로 형제를 심판하던 교만을 용서하소서. 이제 다시 부드러운 진흙이 되어, 주님의 긍휼하신 손에 빚어지는 온전한 순종의 그릇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스스로를 빚어낼 힘이 없는 연약한 진흙임을 인정하고, 실패한 그릇도 새롭게 빚어내시는 '토기장이의 손'에 내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적용 질문 :
1.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과 상황으로 사인을 주시는데도, 여전히 '내 계획과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옹기처럼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는 영역은 없습니까?
2. 나는 타인의 잘못이나 연약함을 볼 때, 피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파하며 기도합니까? 아니면 차가운 정죄와 비판의 칼날만을 들이대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의 마음으로 포용하기 위해서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