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신구의 갈등을 예를 들면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의 세대차이를 말합니다. 전자는 보다 세련되며 감각적이지만 후자는 상당히 완고하며 경험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현대 한국사회는 세대차이라는 단어로 신구의 갈등을 지칭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새롭다는 뜻으로 보다 진보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보자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으며, 구라는 것은 전통적 사상을 바탕으로 기존의 틀을 깨지 않는 형태를 선호한다 하겠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번영의 물결이 일었던 조선후기 개화의 시대에도 유사한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보다 현대적인 조선을 만들어 보자는 쪽과, 그렇게 간다면 전통문화가 파괴되어 우리 것을 잃어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한 쪽으로 나뉘어 지었을 것입니다. 전자를 개화파라고 부르며 후자를 보수 또는 수구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자와 후자의 관계는 권력 타툼의 양상으로 변질되어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위의 논리와 유사하게 발전된 것에 신신국과 구식군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신식군이라는 것은 보다 현대화된 장비를 우선 지급하여 서구식 제식 모델에 따라서 병사를 양성하는 제도이고, 구식 군대는 과거 조선의 전통에 따라 전통적 무기를 사용하여 전쟁을 하는 그러한 집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신식 무기를 지급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식이 되었을 것이며 과거의 전통적 전투의 개념을 지극히 추종하여 스스로 구식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쪽의 군대는 선 지급된 현대장비와 지도층의 우선적 고려로 조선후기 조선의 주력군대로 성장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여 구식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생존의 기초 요소인 식량의 지급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구식군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겠죠.
이 와중에서 한 젊은 귀부인의 스토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상당히 지체가 높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분은 한정된 재원으로 보다 현대화된 병력의 제도를 만들어 보자는 쪽에 많은 무게를 두었으나, 그리하여 조선 전체 군이라는 곳의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해 하급 관료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본인 생명에 위협을 당하는 처치로 발전되어 아무도 모르게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분은 남다른 인덕과 학문으로 대중의 지지를 높게 받았으며 그 분의 보살핌으로 그 분을 따르는 세력이 상당히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후, 세상이 안정되어 그 분이 다시 돌아왔다고 알려졌으나, 다른 곳에서 그 분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소문이 퍼지면서 해당지역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그 사건이후 그 분의 대외 활동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분을 찾아 뵙기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 그 분의 발자취를 찾게 되었다라는 소문은 대중을 들썩이게 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그 분을 따르던 다수의 대중은 그 소문의 실체를 찾아서 그 곳으로 이동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실 그곳은 지리적인 잇점이 있었고 상당한 병력이 존재하며 위급시 대피를 할 수 있는 그러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곳의 군대는 대륙의 반란군을 막아 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그 귀부인의 밀월은 그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한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곳의 관료들은 귀부인의 신분을 고려하여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구요.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그 귀부인의 거처가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양쪽에서 서로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한 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왔다라는 이야기고, 또 한 쪽에서는 실제로 그 분과 똑 같은 사람을 보았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의혹이 짙어 지는 것은 오래 전에 돌아왔다고 알려진 그 분을 그 이후, 그 지역에서 본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의혹이 대중을 넘어 사회 전반에 퍼지므로, 그 분의 남편은 그 의혹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었을 겁니다. 즉, 그 귀부인의 얼굴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그 분은 그러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 귀분인을 실제로 보았다는 자를 찾아서 그 귀부인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여 외출을 합니다. 바다를 건너야 했기 때문입니다. 장기간의 여행의 목적을 대중에게 설득시키기 위한 내용은 적국의 위협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즉, 신변의 보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다 건너 우호국에서 만들어준 가옥에서 1년 넘게 생활을 합니다. 대륙이 다시 안정화되길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 귀부인을 만나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귀부인의 정체와 그러한 소문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찾아서 말이죠. 그리고, 그 귀부인을 설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즉, 함께 가서 대중 앞에서 의혹을 해소하자는 의견이 되겠죠.
그러나, 그 귀부인은 비록 그 분의 지체가 상당히 높기는 하나 대륙의 정세가 불안정하고 이미 안정된 생활에 젖어 든 자신의 삶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싫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의혹을 자신이 직접 풀어낼 의무가 없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즉, 1년 여의 설득으로도 그 분은 그 귀부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게 되었고, 대륙의 정세는 안정화되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이제는 그 의혹의 실체를 대중에게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그 순간, 적군의 도발이 멈추어진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그 분이 돌아 간지 얼마 안되어 적국의 반란군 의해 피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대중의 입을 넘어 공식적인 발표가 되어지게 됩니다. 사망했다는 것이죠.
양쪽지역에서 그 분의 정체에 의혹을 품었던 사람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귀부인을 보았다는 사람을 쫓아서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사람들은 역시 본인들의 움직임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더욱이 난리가 증폭되어 국가가 혼란해 지는 형태가 강하여 해당지역에 존재하는 군대가 북쪽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현실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밖에도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하여 혼란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던 지식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향한 젊은 세대들의 충성심은 상당히 강해졌지만, 그 이후로 그 귀부인을 본 사람도 없고, 이제는 볼 수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그 과거의 의혹의 실체는 더 이상 해소할 의무가 없어지게 된 거이죠. 그리고, 군대와 젊은 세대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더 증가하게 됩니다.
즉, 해당지역에 존재하였던 강한 군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북방으로 이동을 하게 되어서 그곳은 이제 아무도 없는 공허한 지역이 되었으며, 사람들이 모두 떠난 외로움에 새의 울음소리만이 아득히 울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그 지역을 책임지던 사람들은 이제 은퇴하여 조용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계기가 되게 되었구요.
한 곳으로 집중된 강한 군대와 왕권으로 그 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시도하였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전세계적인 지지와 강력한 군대의 구심점으로도 그 제국은 오래가지 못하여 역시 그 이후에 더 거센 격량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놓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떠난 그곳에서 그 이후로도 그 귀분인과 유사한 사람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그 분이 과거의 그 귀부인이었다면, 왜 사람들이 모두 떠난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었을 까요? 후대가 본 것이 사람이 아니라면, 그 귀부인의 영혼이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그 귀부인을 바다 건너 그곳에 잡아두게 하였던 강력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요?
<참고: 한국고대사탐구/ http://cafe.daum.net/ancientkorea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