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흔들어 깨우기
이 은 너는 어째서 창백하니? 두 눈이 쑥 들어가고 얼굴을 만지면 해골이 만져지는 것 같아 너에겐 사탕 한 알이 필요해 레몬즙이 팍팍 터져 나오는 사탕 너의 밤을 깨우기 위해 레몬 사탕 두 알을 입에 넣고 창고로 들어간다 CCTV에 잡히기 전에 심야 작업은 두 눈을 부릅떠 있어도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와 덮이기도 해 우리끼리는 비밀로 하기, 몰래 입안에 레몬 사탕을 물고 캄캄한 밤을 깨우려고 해 서서히 레몬즙이 작동하는 시간이야 창고 기둥에 박힌 시계는 밤 12시, 이곳에서는 점심시간이라 부르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야 너는 하얀 위생복을 입고 서 있지만 졸고 있지 눈은 떠 있지만 잠이 쏟아지려고 해 레몬 사탕을 핥아먹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야 꿈속에서 비명을 지르기도 해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지는데도 멜라토닌이 작동해 내 밤은 레몬 뿌리처럼 창고 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내 밤은 사탕처럼 달콤해 불량한 밤이야 온몸에서 밤을 깨우는 레몬 향이 올라와 얼음 컵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텅 빈 손을 허공에 내밀고 있어 사탕을 핥아먹다가 혓바닥을 깨물어 버렸어 잠, 잠, 잠 하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레몬 트리 밤새도록 나를 깨우러 다닌 레몬에게 뇌 속의 다리를 건너 세 갈래 네 갈래 오래도록 해마에 살림을 차리고 깨어난 내가 잠자러 돌아가는 시간 남아있는 사탕의 단맛을 혀끝으로 굴리고 있어 —계간 《포엠피플》 2024년 겨울호 -------------------- 이은 / 강원 동해 출생. 200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불쥐』 『우리 허들링 할까요』 『밤이 부족하다』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