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과 인접한 철원읍 대마리는 고대산 밑의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진 농촌마을로 방축말, 석사동, 절넘어박씨촌이 있다. 방축말은 산명호 아래쪽에 방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석사동은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고, 절 넘어 박씨촌은 절 넘어서 박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생긴 이름이다
이곳 대마리는 일찍부터 민통선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름이 높았는데, 지금은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풀려 누구나 갈 수 있다.
철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철의 삼각지․백마고지․아이스크림 고지․김일성고지 등의 싸움터이다. 한국전쟁 때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인 이곳 비무장지대인 월정역에는 가다가 부서진 채 고철로 남아 있는 열차 한 량이 남아 있다.
월정리를 잠간 거쳐 평강 이르니,
금강산의 탑승객은 그치지 않아
길을 덮고 팔을 메여 오고가니
자동차는 승객 운반 분주하구나.“
<경원철도가> 중 월정리 부근을 그린 노래 가사다.
노을 비낀 철길 위에 젊은 기관사,
기적소리 울리며 기차를 몰았네.
포연을 헤쳐온 용감한 그 젊은이,
준엄한 그날에도 기차를 몰았네.”
한국전쟁 중 북한에서 불리던 노래였다.
그 당시 기차는 폭격 1호 대상이었지만 밤이나 악천후를 틈타 열차는 이동을 감행했고,
철원평야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곳은 철원군과 김화군․평강군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로 수도고지 전투, 지형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를 들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철원 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봉우리인 백마고지에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에 벌어진 싸움은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에 세워진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에 적힌 대로 포탄가루와 주검이 쌓여서 무릎을 채울 만큼 치열했다. 높이가 395미터인 이 산봉우리는 열흘 동안에 주인이 스물네 차례나 바뀌면서 1만4천 명에 가까운 군인이 죽거나 다쳤고 쏟아진 포탄만 해도 3십만 발이 넘었다고 한다.
저멀리 보이는 백마고지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김일성 고지는 철원평야를 빼앗긴 김일성이 사흘동안 통곡을 했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인데, 언제 어느 때 산에 올라가 지난 역사를 회고할 날이 있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