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조별예선 첫 경기를 1:0으로 힘겹게 승리한 대한민국 대표팀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다른 우승후보들이 첫 경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이긴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힘겹게 승리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1골을 기록한 공격 자체도 시원한 느낌을 주기엔 부족했고, 후반전 25분 이후에는 오만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내준 채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토너먼트 진출에 한발짝 다가섰고, 화요일에 있을 쿠웨이트 전을 이긴다면 어느 정도는 안정권에 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회 초반 순조로운 모습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괜찮은 출발을 보였다고 보아야 한다. 잘된 점, 잘못된 점을 잘 가려서 준비하면 분명 나아지는 경기력, 그리고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어 보인다.
1. 첫 경기 승리의 중요성
우선 결과가 승리였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별예선 경기를 한층 여유있게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큰 이득이다. 쿠웨이트가 호주에게 패하였기 때문에 쿠웨이트 역시 우리와의 경기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어떻게든 승리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골대 앞을 단단히 지키고 서있는 상대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첫 경기는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바꿔서 말하면 첫 경기가 갖는 무게가 그만큼 컸다는 사실이다. 오만과의 경기가 어려웠던 것은 오만 역시 첫 경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승점 올리기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오만은 수비에 역점을 두고 경기를 치렀다. 당초 다크호스로 손꼽히던 오만 입장에선 자존심 버리고 우리와의 경기를 잡기 위해 나섰다. 경기 후에 공격이 답답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5명까지 수비수를 늘리고 2선으로 좁혀 수비에만 임하는 팀을 뚫는 것은 어느 팀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우리 대표팀이 밀집 수비 상대로는 좋은 공격을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 오만과의 경기에서는 찬스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 골 결정력이 아쉽기는 했지만 끝내는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결과와 과정 모두가 중요하다고 해야겠지만, 경기에 따라 결과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이번 경기가 바로 결과가 더 중요한 경기였다. 부족한 점은 앞으로 예선 두 경기를 조금은 여유 있게 치르면서 보완할 수도 있다. 첫 경기 승리로 얻은 것이 더 많았다.
(△ 중동 팀에게 리드를 빼앗긴다면 자주 지켜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지않는 경기를 해야 한다.)
2. 여전히 불안했던 수비
수비 불안은 우리나라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특히 중동팀들을 상대로 어영부영 골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오만 전에서도 위험한 장면들을 몇 차례 노출한 것이 사실이다. 혼전 중의 실점을 모두 막아낸 김주영의 커버가 빛이 났다. 사실 혼전 중 집중력 문제는 단기간에 보완하기 힘든 문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후반30분 이후에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정신없이 수비만 하면서 위기를 여러차례 노출하여 수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비가 잘못했다라고 볼 수는 없는 문제였다. 공격진에 이정협과 한교원이 투입된 이후 팀의 수비 조직력에 문제가 생겼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우리 대표팀은 전방 공격수부터 시작되어 매우 촘촘한 조직을 이루고 상대를 압박하여 수비한다. 역습을 당할 시에는 전방 공격수부터 강한 압박으로 상대 공격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선 선수들이 교체된 이후 공격진부터의 압박이 느슨해졌다. 공격수-미드필더-수비진의 사이가 점점 벌어진 것이 문제였다. 후반 말미로 향하면서 공격의 강도를 올리던 오만에게 공격수들의 압박이 제대로 가해지지 않으면서 상대의 공격에 휘둘려야 했다.
교체된 이정협과 한교원이 게으르게 뛰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뛰었다고는 해도 전술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팀 차원의 수비는 느슨해질 수 있다. 한 명이 제대로 된 움직임을 취하지 못하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동료들이 조금씩 더 움직여야 하고, 압박의 조직은 느슨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부지런히 뛰는 선수들이니만큼, 감독의 지도 아래 그리고 기성용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점이란 것이 다행이다.
체력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은 1월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으로, 꾸준하게 컨디션 조절을 했음에도 체력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훈련 중에 만든 체력은 실전을 치르면서 만든 체력과는 또 다르다. 토너먼트까지 경기가 이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기에, 남은 예선 경기에서도 최대한 선수들을 활용하여 실전 경험을 늘릴 필요가 있다.
3. 무난했던 선수 기용
구자철이 사우디 전 이후 혹독한 네티즌의 질타를 받아야 했지만, 이번 경기에서 그 평가를 뒤집을만한 활약을 보였다. 사우디 전에서의 부진이 컨디션이나 실력 때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장면에서 공을 끌다가 빼앗기거나 찬스 상황에서 지나친 플레이로 찬스를 놓치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준 볼터치는 뛰어난 기술을 증명해냈고, 2선에서 적극적인 슛과 침투로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기성용 같은 확실한 미드필더의 지원을 받으니 경기력이 여실히 살아난 모습이었다. 남태희가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이 사실이기에 서로 성향이 다른 두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고 고민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를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기성용의 파트너로 나선 박주호 역시 사우디전보다 훨씬 좋은 활약을 보였다. 장현수는 수비수로서 경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 한국영은 박주호에 비해 공격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박주호의 출전은 적당했다. 슈틸리케 감독 입장에서도 오만과의 경기에서 절대로 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박주호를 선택한 듯하다. 여전히 무난한 볼배급과 준수한 수비력으로 기성용의 짝꿍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해주었다. 다득점을 노린다면 공격적인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전술 상 변화를 줄 수도 있었지만 부상으로 교체 카드를 잃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등 기존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제 몫을 다했다. 솔직한 심정에선 더 많은 부분을 풀어주길 바랐으나, 정작 A매치에서 골이 없었던 조영철,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구자철 등이 활약한 것은 오히려 팀적인 차원에선 좋은 신호이다.
교체 투입된 한교원은 빠르고 저돌적인 드리블을 보여주면서 ‘조커’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했다. 이근호는 노련한 선수로 언제 투입되어도 제 몫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대표팀 경험이 적고 어린 이정협이 걱정된 것이 사실이다.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오만 전에서는 슈팅 타이밍에 크로스를 올리면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어린 선수이니만큼 ‘형님’들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국가대표 공격수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이타적인 선수인 것은 좋지만,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부상으로 선수 교체를 맘껏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나깨나 부상 조심이다. 제 아무리 메시라고 해도 아픈 상태로 적진을 흔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성숙해진 기성용. 그의 플레이는 더이상 답답하지 않다.)
4. 세트피스의 중요성
세트피스의 중요성은 언제나 강조해왔다. 이번 오만 전에서도 세트피스 상의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특히 코너킥에서 득점이 한동안 없었다는 점은 특히 아쉽다. 일본 정도(혹은 호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정상적인 주도권 싸움을 다툴 팀은 아시아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수비적인 자세로 덤벼들텐데, 이를 한 방에 깨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세트피스이다. 물이 오른 손흥민의 직접 프리킥은 상대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 회전이 적고 궤적이 예측불가능하여 잡기가 쉽지 않은데 공격수들이 집중력을 높여 쇄도한다면 좋은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손흥민의 코너킥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주로 짧고 낮은 경우가 많은데 기성용을 다시 전담 키커로 이용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더불어 세트피스 수비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 오만 전에서도 추가 시간에 김진현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골을 허용할 뻔했다. 지난 이란과의 평가전에선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을 허용하면서 또다시 보기 싫은 이란의 승리를 또 지켜봐야 했다. 우리가 월드컵마다 강팀을 상대로 할 때 세트피스가 열쇠라고 하는 것처럼 상대도 우리에게 골을 빼앗을 좋은 수단으로 세트피스를 꼽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 순간에 나아지는 부분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 어느때보다 높은 집중력으로 수비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조영철 A매치 데뷔골. 우리나라를 살린 골이기도 했다.)
1:0이라는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처럼 첫 시작으로는 오히려 이런 고생스러운 출발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선수들이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기에 좋은 환경이다. 첫 경기에서 다득점을 터뜨리지 못하면서 팬들의 여론 역시 우승은 힘들겠다고 형성되었는데, 쓸데 없는 부담감을 덜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대표팀이라 애정이 섞여 긍정적으로만 보려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나아질 점이 있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나아지지 못하고 대회에서 탈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확실히 살아있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하기에 따라 우승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선은 다가온 쿠웨이트 전의 선전을 바란다. 물론 승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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