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를 다녀와서
임의숙
늘 그래왔듯 봄은 나직한 속삭임으로 내 곁에 왔고, 설레임과 신선함을
마음속에 불어넣어 준다.
1년을 그날같이 지내는 나에게 집을 나선다는 것이 언제나 설레임이다.
차창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나뭇가지의 새순들이 아기의 피부처럼 보드
랍게 느껴졌다. 화사한 봄 날씨마저도 아지랑이를 만들어 우리를 유혹하
듯 쫙 펼쳐져 도로위로 너울댄다. 어느새 피었는지 양지바른 곳에 띄엄띄
엄 피여 있는 진달래꽃의 수줍음이 그 꽃잎을 따먹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
게 한다.
살며시 왔다가 홀연히 떠나는 봄날.
올해는 충북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하게 됐다.
오늘은 충주문화원으로 자리를 옮겨 충주라는 곳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문화기행, 문학기행이라는 테마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관광기분을 낼
것 같아 몹시 조심스러웠고, 들 뜬 기분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다.
문화원에서의 다양한 행사가 끝나고 일행은 김선생님(향토문화연구위
원)을 따라 나섰다.
조각공원의 호젓한 길을 지나고 충혼탑을 지나서 감자꽃 노래비 앞에
섰다.
우리는 권태웅 시인의 감자꽃 시를 낭독했다.
자주꽃 핀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감자
창씨개명에 분개해 지으신 시라는 말씀에 그 간단한 시귀에 그렇게 깊
은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적절한 표현을 한 시인의 능력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일제시대를 사신 선조들의 아픈 고통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다시 한번 외워봤다.
시간에 쫓겨 정겨우면서도 유서 깊은 곳을 이렇게 밖에 볼 수 없는 안
타까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잡을 무렵 안내판을 가리키시며 가보지 못한
곳을 역사와 함께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예비 지식이 충분히 없었던 내
가 부끄러웠고, 연신 입안에서는 작은 탄성을 지르곤 했다.
다음날 버스는 우리를 기다렸고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버스에 올라 다
음 탐방지로 출발했다.
차안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봄햇살과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눈까풀은
한껏 무거웠지만, 나직나직하면서 확신 있는 목소리로 안내해 주시는 김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행이 처음 도착한 곳은 충북 기념물 제 18호인 권상하씨 사당이었다.
차안에서와 달리 밖으로 나오자 한기가 느껴졌지만 곳곳에선 봄의 전령
사들이 봄의 향연을 펼치며 잠자고 있는 고택을 잠에서 깨우는 듯 했다.
권상하씨는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이신 송시열의 수제자로 기호학파
의 학통을 계승한 조선후기의 학자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이곳(한수면)으로 사당이 移建(이건)
됐으며, 不遷之位(불천지위)의 영광이 있는 분이시란다.
불천지위란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으로 그 자손이 있는 한 계속해
서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기제사나 시제를 모실 수 있다니 얼마나 영광스
러운 일인가.
결혼한 다음에 충주에 왔었고, 작년에 문경 새재를 왔다가 잠깐 들렀었
다.
두 번의 방문이 목욕만 하고 그렇게 떠났다.
충주에서 나고 자라신 것이 자랑스러우신 듯 역사, 인물, 유적, 유물, 아
름다운 자연경관을 안내해 주시는 것과 달리 나에게 충주는 온천이상의
느낌이 없었다. 충주에서 1박2일이 새로운 느낌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충주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과 그 곳에 자리잡은 온갖 수목들의
빼어난 경관이 김선생님의 문화사랑과 해박한 지식이 어우러져 한 편의
문화영화를 본 것 같았다.
우리문화가 계승 발전되는 것이 이런 분들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1999.
첫댓글 충주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과 그 곳에 자리잡은 온갖 수목들의
빼어난 경관이 김선생님의 문화사랑과 해박한 지식이 어우러져 한 편의
문화영화를 본 것 같았다.
우리문화가 계승 발전되는 것이 이런 분들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