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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할 미련한 자 26:1~6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미련한 자의 특징 26:7~12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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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않으며, 그의 등에는 막대기가 따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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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할 미련한 자 26:1~6
성도는 스스로 미련한 자가 되거나 미련한 자를 가까이하면 안 됩니다. 미련한 자에게 영광은 마치 여름에 오는 눈이나 추수 때에 내리는 비같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말에게는 채찍이, 나귀에게는 재갈이,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매질이 필요합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에 대답하면 그처럼 미련해집니다. 미련한 자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자기 발을 자르고 손해를 불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미련한 자와 함께하는 것은 삶을 허비하고 손해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미련한 자의 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들의 저주 섞인 말에도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쏟아붓는 저주는 떠도는 참새나 날아가는 제비처럼 이유 없는 것이기에,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2절).
● 더 깊은 묵상
까닭 없는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요?(2절)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나쁜 소문이 들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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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의 특징 26:7~12
저는 사람의 다리에 힘이 없듯, 미련한 자가 말하는 잠언도 그러합니다. 그것의 참의미와 적절한 적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7절).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물매에 돌을 매다는 것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들은 술 취한 사람의 손에 들린 가시나무처럼 위험합니다. 그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함을 되풀이합니다. 미련한 자를 보면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12절).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겸손히 배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면 미련함에 빠지고, 스스로 서 있다 여기면 넘어지고 맙니다(고전 10:12).
● 더 깊은 묵상
미련한 자가 입에 담는 잠언은 무엇과 같나요?(7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생각과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는 높아진 마음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제가 옳은 것으로 여기는 교만함과 세상 풍조를 따르는 무지함과 사람의 말에 휩쓸리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성숙한 내면의 힘을 주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가 미련한 자,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당신께서 만드신 삶의 규범과 패턴 안에서 지혜롭고, 부지런하게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면서 잘 준비가 되고, 잘 훈련되어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바르고 사용하고, 나눔과 섬김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자
우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더 큰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서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가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삶의 규범과 패턴 안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가 되자
오늘 본문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행동과 그에 따르는 숙명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의 등에는 막대기가 따릅니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는 도리어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미련한 자에게 맡겨진 중요한 일,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 미련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예, 그리고 개별 잠언들입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영광이 어울리지 않으니 그것은 마치 한 여름의 눈이나 추수 때의 비와 같다’라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한 여름의 눈이란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설령 내린다고 하더라도 금시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렇듯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높은 지위 같은 영예는 추수철의 비처럼 무익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떠도는 참새나 날아가는 제비처럼 이유 없이 퍼붓는 저주는 아무에게도 닥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주가 공의와 관계없이 마치 마술 들린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있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전할 말을 들려 보내는 것은 자기 발을 자르고 손해를 불러들이는 것과 같다’라는 말입니다. ‘기별’이란 소식을 전해 주는 것으로, 아울러 소식을 전해 주는 종을 뜻하기도 합니다. 당시 소식을 전할 때는 사람을 보내니 그래서 발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심부름을 보낼 자가 그 목적을 잘 수행치 못할 자라면 그를 보내는 일은 두 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치명적인 손실을 불러올 수 있어, 그것은 결국 자신의 발을 베는 것과 마찬가지 해를 깨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설과 묵상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그래야 그 미련한 것을 깨닫고는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위의 말들을 정리해보면 ‘미련한 자보다 더 심각한 사람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도 기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미련하다고 고백하는 자가 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와 바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차이점은 지능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보는 바보일 뿐입니다. 정상인보다는 지능지수가 다소 떨어질 뿐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보가 바보짓을 하는 것은 그 머릿속에 바보짓을 할 수밖에 없는 회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한 자가 미련한 짓을 거듭하는 것은 그 머리에 그러한 일을 행하게 하는 회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스스로 지혜롭다고 보지 않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껴 다른 사람들의 충고나 지혜를 받아들여 스스로 깨닫고 돌이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닫고 돌이키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자극이 들어올 때 머릿속에 루트는 변함없이 가던 대로 갑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머릿속의 길이 궤도수정을 일으켜 지혜로운 길로 가지만, 미련한 사람은 그런 궤도수정이 없어 결국 또 미련한 짓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한번 생겼던 일은 동일하게 다시 거듭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탈무드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느 시대에서도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보면 결과적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지요. 단지, 모양을 바꿔서 일어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을 따르고 지키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지속돼 내려오는 인간의 행동 양식에 대한 통계와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가르침을 소중하게 여기고 따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우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면 그 재능은 사장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학문과 지식은 전에 있던 사람들의 학문과 지식 위에 쌓아 발전된 것이지, 원시시대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고, 최고의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 그것을 업그레이드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길을 가는 세 사람 중에도 스승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서열을 세우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고, 무시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많이 배울수록 깨달아지는 것이 많아지고,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 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고전역학에서 풀리지 않는 것이 양자역학에서 풀어지듯이 말입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달을 가고 먼 우주를 여행해도, 지식이 하늘만 해져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만든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청취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최고 지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선의 삶이 되는 것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늘길까지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참 지혜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 머릿속 길을 계속 궤도 수정하면 지혜의 길로 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를 통해 배움의 기회가 있고 성장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님에게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않고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분 앞에서 겸손히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는 없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잠26:1)
다만 매가 있을 뿐입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잠26:3)
왜냐하면 악을 자기 낙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잠10:23)
뿐만 아니라, 그 악을 거듭 거듭 행하기 때문입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말도 섞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잠26:4)
또한 그들의 영예가 더할 때에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시49:16~17)
그들은 멸망하는 짐승 같아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8~20)
그러나 영예는 오히려 성도에게 있습니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시149:9)
영예와 기쁨과 존귀가 있습니다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에8:16)
물론 이 영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예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그리스도께서 영예를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도 영예롭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1:12)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 고난의 길 미쁘게 기꺼이 걷기 원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11절)’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이들을 만납니다.
때론 사실과 다르게 자신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일어난 상황을 묘사하고
그 숨은 뜻을 발견하지 못한 채 오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자는 듣는 귀가 있고 심사숙고하여 신중한 결정을 내리며 후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오는 모든 권세자, 지식인, 성경학자 그리고 힘을 가진 로마의 군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상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의도를 이미 알고 그들의 생각까지 읽으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함부로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존중하시며 그들의 수준에 맞게 대화하십니다.
때론 매우 연약하고 병든 자, 죄로 찌든 인생들을 대하실 때에도 자비를 베푸는 위치가 아닌 그들의 상황에 맞는 치유를 베푸시고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가 되어 지금의 우리의 귀에까지 생생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토한 것을 다시 먹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버리고
맡겨주신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들에게 구원과 평강의 소식을 전하는 입술이 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영혼과 육신에 채워나가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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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련한 삶을 살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1~5절).여름에 눈이 오고,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 것처럼 미련한 자에게 영예는 합당치 않습니다. 결국 미련한 자의 까닭 없는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합당한 것은 체벌입니다(1~3절). 채찍이나 재갈과 같은 도구들이 없으면 짐승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자를 제어하지 않으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막대기를 가지고 제어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혜로운 자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똑같이 미련해지기 때문입니다(4~5절).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에 있습니다. 교만함은 패망의 선봉이 되고,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악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매사에 어리석고 미련한 것을 선택하는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련한 자가 공동체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위험함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미련한 리더가 되지 않도록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통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미련한 자와 쓸데없는 논쟁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말에 대적해서 담대히 말해야 할 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 자신이 말하지 말아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 미련한 삶을 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날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6~12절).
미련한 자에게 어떤 일을 맡기는 것 자체가 참으로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중요한 내용이 잘 전달 될 수 없으며, 그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합니다(6~7절).. 통제가 되지 않는 폭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영혼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8~9절). 미려한 자를 품꾼으로 부리는 자는 활을 마구 쏘는 궁수와 같은 것(10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대상을 경멸할 때 ‘개’라는 표현을 써서 조롱했습니다. 골리앗은 어린 다윗을 향하여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삼상 17:43)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압살롬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향하여 저주를 퍼 붓은 시므이를 향하여 다윗의 신하인 아비새는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삼하 16:9)라고 말했습니다. 즉,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짓을 거듭 반복한다는 것(11절)입니다. 차라리 스스로가 겸손하여 미련하다고 고백하는 자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12절)..
미련한 자는 어떤 일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근심과 피해만 줍니다. 문제는 그 자신들이 행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반복해서 행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무시하기에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일꾼이 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다 주는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덕을 세우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만을 구하는 삶이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영적 미련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성도들에게 그 어떤 영향력도 나타내지 못해 결국 맡겨진 양들을 파멸의 길로 안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겸손히 순종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 미련한 삶을 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게으른 일상에서 벗어나 살아야 합니다(13~16절).
게으른 자는 길과 거리에 사자가 있기 때문에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13절). 침상에서만 뒹굽니다(14절). 그릇에 손을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하는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15절). 급기야는 자신이 누구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고는 필요 없다고 합니다(16절). 한마디로 듣기 조차 싫다는 것입니다.
결국 게으름은 하나님을 불신앙 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이 내 자신에게 허락하여 주신 소중한 삶의 시간 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미련함과 불신앙이 내 자신의 삶 안에 자리 잡지 않도록 게으른 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육체적 게으름은 정신적인 안일함을 넘어 영적 교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내가 확실히 믿는다면, 오늘 나는 게으른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이 주는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부지런히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여 게으른 일상에서 벗어나 미련한 삶을 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겸손히 삶의 참된 주인이 되시는 주님만을 인정하고, 주어진 일에 겸손히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 말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를(잠 26: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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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절 :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미련한 사람이 높아지는 공동체는 자연법칙이 뒤바뀌듯 질서가 파괴된 상태입니다. 날려야 할 돌을 묶어좋은 물매처럼 무능합니다. 징계와 훈계의 회초리가 필요한 사람이 도리어 지위와 권한을 맡는 일이 없도록, 개인의 분별력과 공동체의 원칙을 갖춰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미련함의 기준이 어디까지일까요?
나 자신에게도 있는 미련함의 모습이 너무도 많은데요.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도 있고, 가지 않아야 할 자리에 가기도 하고,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에 나서기도 하고,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고......
셀 수 없는 미련함으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 앞에서도 얼마나 미련하게 행동하는지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지 않고 불순종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그렇게나 많이 말씀하시는 데도 말씀 따라 살지 못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지요.
나 같은 죄인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하루 한 시라도 살 수 있을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지혜를 닮아가길 오늘도 간절히 원합니다.
2절 :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악담과 저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목적 없이 떠도는 새처럼 의미 없이 흩어지고 사라질 말에 불과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까닭 없는 저주, 비방, 욕설, 수군거림...
그런 것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겠습니다.
그러한 것을 쉽게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면이 나에게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곳에 있다 보니 민족성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 괜한 오해를 받을 때가 있더라고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리 오라는 표시로 손등을 위로하고 손을 까닥이는데 이곳은 그 반대로 손바닥을 위로하고 손가락을 자기 쪽으로 까닥이어야 오라는 표시입니다. 애들 친구가 집에 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이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니까 재빠르게 층계를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가 애들이 놀러 갔는데 문 앞에서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도 않고 무슨 뜻인가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한 손짓은 그들을 가라는 표시였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의 오해는 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의 비방이나 악담도 있지요.
그러한 것에 너무 신경 쓰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네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비방은 들어 마땅하지만 그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고요.
내가 주님 앞에 떳떳한 것이라면 사람들의 평가에 그리 좌우되지 않기를 다짐해 봅니다.
4,5절 :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대답하여 바로잡아줘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말려들지 않도록 상관하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잠언은 철칙이 아닌, 여건에 따른 유연한 적용을 가르칩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미련한 자와 같이 맞장구를 치지 말라 하십니다.
같이 미련한 자 같이 보이게 된다 합니다.
때로는 지적하여 고쳐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가 미련한 것인지를 일단 구분해야 할 것이고 내가 더 미련한 위치에 있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네요.
하나님을 부인하고 비방하는 것은 가장 큰 미련이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자와 맞장구치지 않겠습니다.
이단자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피하겠습니다.
또한 남을 비방하는 말, 모함하는 말을 할 때도 같이 동조하지 않겠습니다.
고쳐주려 하다가, 바로잡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말려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6,10절 :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는 일에 미련한 자의 발품을 빌리면, 왜곡과 오해가 생겨 결국 보낸 이의 발이 상할 것입니다. 중요한 일에 미련한 자를 합류시키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부름받은 일꾼으로서 얼마나 유익을 끼치고 있는지 나 자신부터 돌아봅시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미련한 자에게 함부로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아야겠습니다.
나 또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미련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행하도록 말씀 가운데로 더 들어가겠습니다.
7,9절 :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미련한 사람은 잠언을 알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질주하지 못하는 다리처럼, 지혜의 말들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 손에 들린 흉기처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충고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내 이해와 지식은 이웃과 공동체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미련한 자는 말로는 진리를 외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언행이 불일치합니다.
그의 말은 영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잠언 말씀은 입에서만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실행으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알아서 머리를 끄덕임으로 그쳐서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함을 넘어 생활 속에 녹아나도록 더욱 실천에 힘을 쏟겠습니다.
11,12절 :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속에 맞지 않는 음식을 다시 먹는 개처럼,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의 특징은 다른 이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는 '교만함'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부족해도 타인의 실수와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면 소망은 있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말씀에 비춰 본 나는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이 미련할 때가 너무도 많네요.
같은 실수를 거듭하기도 하니까요.
게으르지 말라 하셨는데 자꾸 게을러지기도 하고요.
절제하라셨는데 그러지 못한 적은 태반이고요,
지혜롭지 못한 행동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돌이켜야만 되네요.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하네요.
말씀을 통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주님 의지하고 말씀 따라감이 율법적 행위나 위선이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함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100% 지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노력을 하지 않으면 더욱 안되겠지요.
더욱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씩이라도 주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방황하고 수렁에 빠져 있을 때 견책하시고
위로하셔서 다시 주님을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손을 뻗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겸손과 지혜의 말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아름다운 발걸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고
저 북녘땅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