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구의 종으로 설 것인가 (렘2-23)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찬양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본문 : 예레미야 23:1-40절
☞ https://youtu.be/qJRRb9dXumQ?si=GG3-lCZsqK4PIdtg
주일예배를 드리고 난 후 어제는 푹 쉬었다. 하나의 교회를 섬기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처음 서는 낯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한다. 그럼에도 감사하고 그렇게 겸손히 선 시간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
또 한 주간을 시작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23장의 절반이 넘는 방대한 분량(9-40절)은 백성의 영혼을 병들게 한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준엄한 심판과 고발에 할애되어 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다"고 탄식하시며, 13절에서는 그들이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고 책망하신다. 그중에서도 오늘 목회자인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찌르는 말씀은 14절이다. 14절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으리라’
선지자에게 맡겨진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백성의 악을 고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게(회개하게) 하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짓 선지자들은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킬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백성들의 귀에 듣기 좋은 헛된 위로만 늘어놓으며 회개의 길을 막아선 결과, 선지자 자신들은 소돔과 다름없게 되었고, 양 떼인 백성들은 고모라처럼 멸망할 존재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이 참담한 영적 타락의 근원을 추적하시며, 하나님은 15절에서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졌다"고 정확히 진단하신다. 영적 지도자의 타락이 온 땅을 병들게 한 것이다. 급기야 하나님은 백성들을 향해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뼈아픈 단절을 명령하신다.
그 이유가 16절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강단에서 전하는 묵시와 메시지는 '자기 마음'에서 꾸며낸 얄팍한 소리일 뿐,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분명한 차이를 이렇게 구별하신다. 28-29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꾸며낸 꿈을 꾸는 자는 그 헛된 꿈을 말할 뿐이지만, 여호와의 참된 말씀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그 말씀을 전한다. 전자가 바람에 날아가는 가벼운 '겨(쭉정이)'라면, 후자는 영혼의 굳은 바위를 깨뜨리고 살려내는 무거운 '알곡'이자 '불과 방망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이었다.
이러한 말씀의 무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영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 33절 이후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엄중한 말씀>이란 히브리어로 ‘맛사(מַשָּׂא)’인데, 이는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라는 뜻의 동사 ‘나사(נָשָׂא)’에서 파생된 명사로, 본래 어깨에 짊어지는 ‘무거운 짐’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선지자들에게 '엄중한 말씀(신탁)'으로 쓰인 이유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메시지가 임할 때 그것이 선지자의 영혼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의 ‘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헛된 평안(겨)만 팔던 거짓 선지자들과 타락한 백성들은, 매일 심판과 멸망이라는 ‘무거운 메시지’만 전하는 예레미야를 볼 때마다 비아냥거리며 조롱했다. 이것이 바로 33절의 상황이다.
<예레미야, 오늘 여호와의 '맛사(엄중한 말씀/짐)'는 또 뭐냐? 오늘은 또 무슨 무거운 소리(저주)를 할 거냐?>
자신들의 죄를 찌르는 하나님의 두려운 말씀을 그저 성가시고 무거운 '짐' 취급하며 농담거리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 맹랑한 조롱에 대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맛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며 기막힌 반전으로 맞받아치신다. 33절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내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맛사)이 무엇이냐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이 33절 하반절의 원어적 의미는 <너희가 바로 내게 ‘무거운 짐(맛사)’이다! 내가 너희를 내버려 던질 것이다!>로 해석함이 옳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은 이 무서운 선언을 아주 정확히 이렇게 번역했다.
<너다. 바로 네가 문제다. 그리고 나는 너를 없애 버릴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성가신 '짐'으로 여겨 조롱하던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고 헛된 평안만 구하는 너희들이야말로 내가 짊어지기에 너무 역겹고 무거운 '짐(맛사)'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를 내 어깨에서 던져버리겠다!"라고 무서운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36절부터는 아예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맛사)>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들의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금지해 버리신다. 진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그들을 영원한 치욕과 영구한 수치 속에 던져 넣으시겠다는 준엄한 선언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나는 과연 강단에서 알곡을 전하는 목사인가, 아니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헛된 겨(쭉정이)를 전하는 목사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대하며 내 사역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뼈아픈 심판의 선고 한가운데서, 나는 본문의 흐름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읽어본다. 오늘 본문은 거짓 목자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 이전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향한 매우 중요한 소망의 메시지를 먼저 전하고 있다. 5-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앞선 22장에서 인간 왕들과 지도자들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데 철저히 실패했다. 그들은 양 떼를 흩어버린 악한 목자들이었다. 인간 리더십의 완전한 파산 선고 앞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이라는 잘려 나간 그루터기에서 새 생명으로 피어날 '의로운 가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인간 왕들은 자기 안위를 위해 불의를 행했지만, 참된 목자이신 메시아는 십자가에서 완벽한 정의와 공의를 성취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치드케누)>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소망이 되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과 샬롬은 목회자인 나의 흠 없는 사역이나 인간의 알량한 의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공의'가 되어주시는 그리스도에게서만 주어짐을 선언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인간 왕들과 제사장,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철저히 실패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이요 제사장이자 선지자로 오셔서 친히 우리의 '공의'가 되어주신다는 이 약속이 심판의 선고보다 먼저 주어졌다는 사실이, 연약한 사역자인 내게 더없는 위로와 평안, 그리고 희망이 된다.
오늘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게 무엇을 묻고 계시는가?
무엇보다 먼저, 강단에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가 전하는 메시지에 인위적인 가중치와 권위를 더하려 했던 인간적인 허영과 교만을 깊이 돌아보며 회개하게 된다.
설교자로서 죄를 정당화하여 악이 퍼져나가게 하는 그 타락의 중심에 서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직 우리의 유일한 공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키고 전하는 종, 사람의 귀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되새긴다.
사람을 적당히 위로하는 가벼운 '겨'가 아니라, 영혼의 굳은 바위를 깨뜨리고 죄를 태우는 '불과 방망이'와 같은 말씀의 종이 되기를 다짐한다. 세상의 외면이나 평가 앞에서도 결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성실함으로 이 생명의 사역을 묵묵히 감당하는 참된 목자로 설 것을 굳게 다짐한다.
주님, 제 안에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거짓 선지자의 본성이 꿈틀거림을 보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섭니다. 그럼에도 저의 공의가 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섭니다. 이제는 진정 오직 주님의 종으로만 서게 하시고 제게 주신 말씀을 부끄러워하거나 무거운 짐처럼 여기지 않고 불과 방망이로 전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귀를 즐겁게 하는 가벼운 '겨'를 버리고 영혼을 깨우는 '불과 방망이'의 말씀을 품을 때, 오직 우리의 공의 되신 그리스도만이 내 삶에 온전히 남습니다.>
적용 질문 :
1. 나는 내 귀를 즐겁게 하고 죄를 덮어주는 '거짓 평안'을 원합니까, 아니면 굳은 마음을 쳐서 깨뜨리는 '불과 방망이'의 진리를 사모합니까?
2. 사람과의 관계나 평판이 두려워 죄를 덮어줌으로써, 도리어 악이 퍼져나가게 만드는 '타락의 중심'에 내가 서 있지는 않습니까?
3. 나의 얄팍한 의와 성과를 내세우려는 포장을 벗고, 나의 유일한 공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뒤에 온전히 숨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