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obert님>
배롱나무
소순희
사랑이여
무슨 기별 있어
기다림 남은 여름을
타오르느냐
붉은 입술은
흰 목질부에 기대어 산
죄였더니
얼마나 그리우면
눈물 바람 같은 꽃
백일을 피워내고
한목숨 지상에 훌훌
내맡기느냐
그렇게 살아온 날이
아직도 그리움이라면
영영 기다리겠네
사랑이여
2014
J에게(55)-병산서원에서
J,산다는 것이 팍팍해지거나 외로워지면 어딘가로 훌쩍 길 떠나 마음의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십시오.
꽃다운 젊은날도 세월 앞에 숙연 해지고 무심한 것들이 오히려 정다워지는 산자락 양지녘 어느분의 유택에
가만히 앉아 말 없음의 이유로 깊어지는 중년의 내면을 성찰합니다.
3월 2일 안동 풍천면 병산서원에 왔습니다.
하회 마을을 나와 자동차 두 대가 간신히 비껴 서는 비포장 도로를 십리남짓 달리면
낙동강 상류가 태극 문양으로 휘돌아가고 그리 높지 않은 화산이라는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병산서원이 있습니다.
낙동강을 안고 펼쳐진 앞산이 병풍 같다고해서 병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선인들의 여유와 고요함에 내가 낮아지는 일종의 최면으로 자기 절제 정신을 마음에 각인 시킵니다.
유학의 논리로 접근하자면 사물에 대해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길이 곧 인(仁)에 귀의 한다는 강학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입교당 뒷뜰에는 배롱나무 십 여 그루가 하얗게 뒤틀린 줄기를 부끄럽게 드러낸 채 근 사백년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으되 배롱나무는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해서 목 백일홍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저 목질부 흰 나무는 곧 꽃피는 여름날을 기다리며 방문객을 맞습니다.
이백여 명이 들어 설 수 있는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병산은 눈높이를 중심으로 소실점을
산 중턱에 배치시킨 수평적 공간으로 평안함을 더해줍니다.
낙동강 물줄기와 백사장은 머무는 자리에서 시선을 아래에 두어 시원함을 이끌어 냅니다.
만대루는 자연목의 뒤틀린 목재 기둥과 다듬지 않은 주춧돌만 보아도 절제와 무욕의 상징적 심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대표적 유교 건축물로 서애 류성룡(1542~1607)과 그의 셋 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지금의 풍산읍 풍산서원을 이곳으로 옮겨 왔고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서원입니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살사와 영의정을 지낸 정치가이자 유학자로 1607년 타계한 뒤
1614년에선생을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습니다.
J, 곧 푸른 소식이 전해 올 듯 바람이 부드럽습니다. 오는 봄 가만히 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2013,3,2 소순희
첫댓글 배롱나무...병산서원.
헌데 개심사가 기억 속에....
그리움의 절정이군요.
안가봐서 가 보고픈곳이네요.
꼭 챙겨 가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