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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갈등은 계속되는가? 이란 vs 미국을 ‘민족·지정학·종교’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 4월 13일(월) / WEB레키시카이도
이란과 미국의 긴장 관계는 세계 안정을 흔들어 놓는 큰 우려 사안이 되고 있다. 왜 이란과 미국은 계속 대립하고 있는가. 그 이면에는 수천 년에 걸친 민족의 변천, 19세기부터 이어진 대국의 패권 다툼, 그리고 이란에 끊임없이 전해지는 독자적인 종교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본 기사에서는 『레키시카이도(歴史街道)』 2019년 9월호에 실린 우야마 타쿠에이 씨의 기사 “3가지 포인트로 읽어보는 ‘이란의 본질’”에서 “민족”, “지정학”, “종교”라는 세 가지 시각으로,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이란의 본질을 밝힌다.
※본 기사는 『레키시카이도(歴史街道)』 2019년 9월호에서 내용의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이란과 미국의 긴장 관계가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2026년 4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미군기를 격추한 뒤, 양국은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간의 즉각적인 휴전’에 합의했다. 최악의 군사 충돌은 일단 회피됐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상황이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 위기의 진원지로서 앞으로도 이란이 주목받을 것이다. 이란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정치와 군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이 총리 역할을 맡아 의회와 행정을 움직인다. 이란은 과연 어떤 역사를 가진 나라일까? 민족, 지정학, 종교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이란의 심층을 파헤친다.
◇ [민족] 이란인은 중동 아랍인과 다른 민족 계통
이란인은 원래 이라크인을 비롯한 중동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 계통에 속한다. 이란인도 이라크인도 비슷해 보이지만,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 즉 유럽인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
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를 원주지로 하는 인도·유럽어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지역으로 이주를 확대했으며, 동쪽을 향한 파는 인도로, 서쪽을 향한 파는 이란과 유럽으로 들어갔다.
고대에 이란인의 외모는 백인 유럽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인은 중동 지역에 살면서 오랜 세월 동안 아랍인과의 혼혈을 반복해 사실상 아랍인으로 변해 오늘에 이른다.
혼혈종은 각 민족의 장점을 잘 계승하고, 그 아름다움을 응축한 특성을 겸비한 외모를 유전적으로 형성한다고 한다.
그러한 이란 혼혈종의 아름다운 여성을 노린 것이 알렉산더 대왕이다.
기원전 330년, 그리스인 세력을 이끌던 알렉산더 대왕이 침공해 당시 이란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멸망했다. 대왕은 그리스와 오리엔트(중동 지역)를 통합해 헬레니즘(그리스식) 제국을 세운다.
알렉산더 대왕 등 그리스인들은 이란에서 남성을 대량 학살하고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다. 그리스 남성과 정복당한 이란 여성의 결혼이 ‘집단 결혼’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지만, 아버지나 형제를 살해한 그리스인을 이란 여성이 결혼을 선호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시대는 기독교와 같은 윤리 종교가 없었고, 학살과 강간이 평범하게 행해지던 시기였다. 힘에 의한 지배가 전부이며, 아름다운 이란 여성은 정복자의 먹이가 되었다.
◇ ‘이란’은 ‘아리아인’ 국가라는 뜻
이란인을 비롯한 인도·유럽어족은 아리아인이라고도 불린다. ‘아리아’는 ‘고귀한’이라는 뜻이며, 페르시아어(이란어)에서는 ‘ariia’, 산스크리트어에서는 ‘ārya’로 표기된다. ‘이란(아란)’은 ‘아리아인 국가’, 즉 ‘고귀한 자들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이란’은 지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페르시아’라는 지명을 나타내는 국가명이 고대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페르시아’는 ‘기마자’라는 뜻의 ‘파르스(Pars)’를 어원으로 하며, ‘기마자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페르시아’라는 형태가 된다.
아리아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자신들을 ‘고귀한 자’라 여기며,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중동에서 아랍인(셈어족)을 지배했다.
아리아인이라고 하면 보통 히틀러의 아리아인 우월주의가 떠오를 것이다. ‘아리아인’은 고대사에서 쓰이는 오래된 역사 용어에 불과했지만, 19세기에 오리엔탈리즘(동방 취미)이 유행하면서 ‘아리아인’이라는 단어가 그 신비로운 울림과 어우러져 큰 주목을 받았고, 점차 오컬트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점차 유럽 각 민족의 조상으로서 아리아인을 숭배하는 풍조가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강화되었다. 20세기, 이 오컬트적인 의미의 ‘아리아인’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것이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였다.
기원전 6세기에 이란인의 왕국 아케메네스 왕조가 건국되어, 중동 지역에서 최초의 장기 통일 정권이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페르시아’를 국호로 삼았다. 이 국호는 226년에 건국된 사산 왕조도 사용했다. 사산 왕조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며 중동에서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에 이르기까지 지배했다.
7세기에 예언자 무함마드(영어명은 마호메트)가 등장해 중동 지역 전체를 이슬람화하고 통합하면서, 이란인의 아랍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참고로, 무함마드는 순수한 아랍인이다. 또한 이란인들은 기존 이란인 고유의 민족주의적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버리고 이슬람교에 귀의한다.
◇ [지정학] 대국의 패권 다툼은 19세기 이래 변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1차 정권 시절인 2018년 5월, 유럽 국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합의(유럽·미국 등 6개국과 이란이 체결)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
타협의 산물로 체결된 이란 핵합의에서는 이란의 핵무장을 멈출 수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같은 해 4월, 영국·프랑스와 함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시리아의 화학무기 관련 시설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시리아에 대한 공격은 2017년 4월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한편, 러시아는 시리아를 지원하면서 이란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오늘날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중동이라는 자원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이라는 거시적 구도로 해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국의 패권 다툼 구도는 19세기 이래 중동 지역에서 일관되게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19세기에 ‘남하 정책’을 통해 이란(당시 카자르 왕조)으로 진출해 중동에 대한 지배 거점으로 삼았다.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아르메니아를 영입하고, 카스피해 서해안을 경유하는 루트를 통해 이란에 진입한 뒤, 동쪽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진출했다.
인도 방어를 중시하는 영국도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해 1856년 카자르 왕조 이란의 세력을 몰아냈다.
카자르 왕조는 영국에 화해를 청하고, 영국에 치외법권과 무역상의 특권을 부여했다.
이렇게 해서 카자르 왕조는 러시아와 영국의 이중 지배를 겪게 된다.
러시아와 영국은 이란 지배를 두고 격렬히 다투었다. 이 양국의 협상은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불린다.
◇ 미국의 존재감이 없으면 중동은 러시아의 산하에 끌려들어갈 것이다
오늘도 이란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패권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확고하지 않다면, 중동은 순식간에 러시아의 산하에 끌어들여질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중동 정책에서 사태를 피하려는 온화한 물에 너무 오래 몸을 담갔지만, 미국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위협하면 과거 역사에서도 거의 없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시리아 공격, 이란 핵합의 탈퇴,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등은 중동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재편·확립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으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민족 자본이 부상하고, 왕과 격렬히 대립했다.
왕 파블로비 2세는 민족 자본에 맞서기 위해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의지했다. 미국은 파블레비 2세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이란 민족 자본이 시아파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를 끌어올리고, 이란 국민도 호메이니에 따르며, 미국과 영국을 배제하려 일어나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 파프레비 2세는 퇴위하고 이집트로 망명한다.
그리고 호메이니의 지도 아래 반미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호메이니는 석유 국유화에 나서고 석유 수출을 제한했기 때문에 석유 국제 가격이 급등했고, 제2차 석유 위기가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란의 이권을 잃었다. 미국은 호메이니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웃 국가인 이라크를 전면 지원했고, 1980년에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그때 이후 처음이다.
◇ [종교] 왜 이란에는 시아파가 많은가?
현재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순나파가 다수이며, 시아파는 약 10%에 불과하지만, 이란에 한정하면 약 90%의 국민이 시아파이다. 왜 이란에서는 시아파가 신봉되고 있는 걸까.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그 사위 알리의 후손만을 정통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시아 알리’(알리의 신봉자), 줄여서 ‘시아파’라고 불리게 된다.
시아파는 알리를 초대 ‘이맘’(‘지도자’라는 의미)으로 보고, 알리와 파티마의 후손을 ‘이맘’으로 인정한다.
‘이맘’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지도자이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에 따라 정해지는 군주이다.
이에 반해 순나파는 선거나 전쟁 등으로 인해 인간이 선택하는 ‘칼리프’(최고 권위자)에 따르는 편이다.
시아파는 인간의 판단이 신의 판단에 미치지 못한다며, 지도자를 임의적인 인간의 판단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아파는 인간의 판단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비판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 순나파 정부에 대한 반체제자들의 버팀목이 된다.
이 시아파가 역사적으로 이란인에게 전해진 이유는, 이란인이 반체제 인물로서 아랍인 등 다수파인 순나파 세력에 맞서기 위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10세기에 부상한 이란인 부와이프 왕조는 시아파를 받아들여 순나파의 아바스 왕조에 맞섰다. 16세기에 부상한 같은 이란인 사파비 왕조는 순나파 오스만 제국에 맞섰다.
◇ 그들이 전투를 멈추지 않는 이유
무함마드 혈통을 중시하는 시아파는 원리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란 왕조는 순나파를 철저히 증오하는 사람들을 군대의 핵심에 배치해 통솔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란인이 정통이라고 인정한 ‘이맘’은 초대 알리부터 12대 무함마드 문타잘까지 총 12명이 있었다(12이맘파). 그 이후로 직계 후계자가 끊겼지만, 이맘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사라져 숨은 존재로 여겨진다.
이 ‘숨은(유감)’을 ‘가이바’라고 부른다. ‘가이바’ 상태에 있는 이마무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리고 옛 이마무들의 가족과 그 후손, 그들의 혈통을 잇는 이들이 ‘사이드’라고 불린다. ‘사이드’는 아랍어로 ‘혈통’을 의미하는 말이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사와 같은 ‘사이드’가 최고 지도자로서, ‘이마무’가 재림하는 날까지 ‘이마무’의 통치를 대행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란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자로 군림한다.
바로 시아파 사상이 정치에서도 실천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도 이란은 종교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신의 이름’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강경하게 나설수록 그들은 ‘지하드(성전)’라는 대의명을 내세워 전투에 나설 것이다.
우야마 타쿠에이(저술가)
なぜ対立は続く?イランvs米国を「民族・地政学・宗教」の3点で読み解く
なぜ対立は続く?イランvs米国を「民族・地政学・宗教」の3点で読み解く / 4/13(月) / WEB歴史街道
イランとアメリカの緊張関係は、世界の安定を揺るがす大きな懸念事項となっている。なぜイランとアメリカは対立し続けているのか。その裏には、数千年に及ぶ民族の変遷、19世紀から続く大国の覇権争い、そしてイランに綿々と伝わる独自の宗教観が複雑に絡み合っている。本記事では、『歴史街道』2019年9月号に掲載された宇山卓栄氏の記事「3つのポイントから読み解く『イランの本質』」より、「民族」「地政学」「宗教」の3つの視点から、謎に包まれたイランの本質を解き明かす。
【写真】ロシアとはいかなる国なのか。皇帝ピョートル大帝の記念碑
※本稿は、『歴史街道』2019年9月号より、内容を一部抜粋・編集したものです。
イランとアメリカの緊張関係が、かつてない局面を迎えている。2026年4月、ホルムズ海峡の封鎖や米軍機の撃墜を経て、両国はパキスタンの仲介による「2週間の即時停戦」に合意した。最悪の軍事衝突は一旦回避されたものの、依然としてイスラエルによる空爆は継続しており、情勢は予断を許さない。世界の危機の震源地として、今後も、イランが注目される。イランでは、最高指導者が政治や軍事の大権を握り、大統領が首相の役割を担い、議会や行政を動かす。イランはいったい、どのような歴史を持つ国なのだろうか。民族、地政学、宗教の3つの視点で、イランの深層に迫る。
【民族】イラン人は中東アラブ人とは異なる民族系列
イラン人は元々、イラク人をはじめとする中東アラブ人とは異なる民族系列に属する。イラン人もイラク人も同じように見えるが、イラン人はインド・ヨーロッパ語族、いわゆるヨーロッパ人と同じ系列に属する。
紀元前2000年頃、中央アジアを原住地とするインド・ヨーロッパ語族は、ユーラシア大陸の広大な範囲に移住拡大し、東を目指した一派はインドへ、そして、西を目指した一派はイランやヨーロッパへ入った。
古代において、イラン人の容貌は白人ヨーロッパ人に近かったと考えられる。
イラン人は中東地域にあって、長い年月をかけ、アラブ人との混血を繰り返し、事実上、アラブ人化して今日に至る。
混血種はそれぞれの民族の長所をよく継承し、その美しさを凝縮した特性を兼ね備えた容貌を遺伝子的に形成していくとされる。
そうしたイランの混血種の美しい女性を狙ったのが、アレクサンドロス大王である。
紀元前330年、ギリシア人勢力を率いるアレクサンドロス大王が来襲し、当時のイランのアケメネス朝ペルシアは滅ぼされた。大王はギリシアとオリエント(中東地域のこと)を統合し、ヘレニズム(ギリシア風)の帝国をつくる。
アレクサンドロス大王らギリシア人はイランで、男性を大量虐殺し、女性を集団強姦した。ギリシア男性と被征服民のイラン人女性が「集団結婚」したと一般に解説されるが、父や兄弟を殺したギリシア人を、イラン人女性が好んで結婚することなどあろうはずがない。
この時代、キリスト教などの倫理宗教が無く、虐殺や強姦が平然と行われていた時代であった。力による支配が全てであり、美しいイラン人女性は征服者の餌食になったのである。
「イラン」とは、「アーリア人」の国の意
イラン人をはじめとするインド・ヨーロッパ語族は、アーリア人とも呼ばれる。 「アーリア」というのは「高貴な」という意味であり、ペルシア語(イラン語)では「ariia」、サンスクリット語では「ārya」と表記される。「イラン(アーラン)」は「アーリア人の国」、つまり「高貴なる者の国」という意味を持つ。
このように、「イラン」というのは地名を表すものではなかったため、「ペルシア」という地名を表す国名が古代から一般的に使われていた。「ペルシア」は「騎馬者」という意味の「パールス(Pars)」を語源にしており、「騎馬者たちの住む地域」という意味で「ペルシア」という形になる。
アーリア人は他の民族と比べ、自分たちを「高貴なる者」とし、自分たちの優位性を主張しながら、中東でアラブ人(セム語族)を支配した。
アーリア人と聞くと、一般にヒトラーのアーリア人優位主義が想起されるだろう。「アーリア人」は古代史の中で使われる古い歴史用語に過ぎなかったが、19世紀になり、オリエンタリズム(東方趣味)が流行する中、「アーリア人」という言葉がその神秘的な響きと相まって、大きな注目を浴び、次第にオカルト的な意味合いを持つようになる。
やがて、ヨーロッパ諸民族の祖先としてのアーリア人を崇めるという風潮が、民族主義者たちの間で強まった。20世紀、このオカルト的な意味での「アーリア人」をフルに利用したのが、ヒトラーの率いるナチスだった。
紀元前6世紀、イラン人の王国アケメネス朝が建国され、中東地域における、最初の長期統一政権となる。
アケメネス朝は「ペルシア」を国号とした。この国号を、226年に建国されたササン朝も用いた。ササン朝は強大な力を誇り、中東から中央アジア、インド西北部に至るまで支配した。
7世紀に、預言者ムハンマド(英語名はマホメット)が出て、中東地域全体をイスラム化し、統合すると、イラン人のアラブ人化が急速に進む。因みに、ムハンマドは純然たるアラブ人である。またイラン人は、従来のイラン人独自の民族主義的宗教であるゾロアスター教を捨て、イスラム教に帰依していく。
【地政学】大国の覇権争いは19世紀以来、変わっていない
トランプ大統領は第1次政権時の2018年5月、欧州諸国に引き止められたにもかかわらず、欧米など6カ国とイランが結んだイラン核合意(2015年締結)から離脱し、イランに対する経済制裁を再開した。
妥協の産物として締結されたイラン核合意では、イランの核武装を止めることはできないとトランプ大統領は主張している。
アメリカは同年4月、イギリス・フランスとともに、シリアのアサド政権が化学兵器を使用したとして、シリアの化学兵器関連施設へミサイル攻撃をした。シリアへの攻撃は2017年4月に次ぎ2回目となる。
一方、ロシアはシリアを支援しながら、イランとの連携を深めた。今日のアメリカとイランの対立は、中東という資源地域を巡るアメリカとロシアの覇権争いというマクロの構図で読み解くことが欠かせない。
そして、このような大国の覇権争いの構図は19世紀以来、中東地域では一貫して変わることがない。
ロシアは19世紀、「南下政策」により、イラン(当時はカージャール朝)へ進出して、中東への支配の拠点とした。ロシアはイランからアルメニアを獲得し、カスピ海西岸を経由するルートで、イランに入り、さらに東方のアフガニスタンに向かって進出した。
インド防衛を重視するイギリスもアフガニスタンに進出し、1856年、カージャール朝イランの勢力を駆逐した。
カージャール朝はイギリスに和睦を請い、イギリスに治外法権、貿易上の特権を与えた。
こうして、カージャール朝はロシアとイギリスによる二重支配を被るに至る。
ロシアとイギリスはイラン支配を巡り、激しく争った。この両国の駆け引きは「グレート・ゲーム」と呼ばれる。
アメリカの存在感がなければ、中東はロシアの傘下に組み入れられてしまう
今日でも、イランを中心に地政学的な覇権争いは続いている。中東において、アメリカのプレゼンス(存在感)がしっかりとしていなければ、中東はアッという間に、ロシアの傘下に組み入れられてしまう。欧州諸国は長い間、中東政策で、事なかれ主義のぬるま湯に浸かり過ぎていたが、アメリカは絶対に妥協できない。
かつてトランプ大統領は「アメリカを脅していると、過去の歴史でもほとんどないような報いを受けるだろう」と述べている。アメリカのシリア攻撃、イラン核合意離脱、大使館のエルサレム移転などは、中東におけるアメリカのプレゼンスを再編・確立するための重要な布石であっ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
第2次世界大戦後、イランでは、工業化とともに、民族資本が台頭し、国王と激しく対立した。
国王のパフレヴィー2世は民族資本に対抗するため、イギリスのみならず、アメリカにも頼った。アメリカはパフレヴィー2世との連携を強化し、積極的に支援した。
ところが、イラン民族資本はシーア派最高指導者ホメイニを担ぎ上げ、イラン国民もホメイニに従い、米英を排除するべく立ち上がり、1979年、イラン革命となる。パフレヴィー2世は退位し、エジプトに亡命する。
そしてホメイニの指導で、反米のイラン・イスラム共和国が成立した。ホメイニは石油国有化に踏み切り、石油輸出を制限したため、石油の国際価格が急上昇し、第二次石油危機が発生した。
米英はイランの利権を失った。アメリカはホメイニ政権を潰すため、隣国のイラクを全面支援し、1980年、イラン・イラク戦争がはじまる。イランとアメリカとの確執はこの時以来のものである。
【宗教】なぜイランにはシーア派が多いのか?
現在、イスラム世界全体において、スンナ派が多数派であり、シーア派は約10%しかいないが、イランに限って言えば、約90%の国民がシーア派である。なぜ、イランではシーア派が信奉されているのだろうか。
イスラムの預言者ムハンマドの娘ファーティマとその婿のアリーの子孫だけを、正統なムハンマドの後継者と認める人々は「シーア・アリー」(アリーの信奉者)、略して「シーア派」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
シーア派はアリーを初代の「イマーム」(「指導者」の意)とし、アリーとファーティマの子孫を「イマーム」と認める。
「イマーム」は神と人間を結びつける指導者であり、預言者ムハンマドの血統によって決まる君主である。
これに対し、スンナ派は選挙や戦争などにより、人間が選ぶ「カリフ」(最高権威者)に従う。
シーア派は、人間の判断は神の判断には及ばないとして、指導者を恣意的な人間の判断で選ぶべきではないと主張する。また、シーア派は、人間の判断で選ばれた指導者は批判されるべき存在であると考えるため、スンナ派の政府に対する反体制者の拠り所となる。
このシーア派が歴史的に、イラン人に受け継がれてきたのは、イラン人が反体制者として、アラブ人などの多数派のスンナ派勢力に対抗するため、という側面もある。
実際に、10世紀に台頭したイラン人のブワイフ朝はシーア派を奉じ、スンナ派のアッバース朝に対抗した。16世紀に台頭した同じくイラン人のサファヴィー朝は、スンナ派のオスマン帝国に対抗した。
彼らが戦いをやめない理由
ムハンマドの血統を重んじるシーア派は、原理主義的で神秘主義的な傾向が強い。
イランの王朝は、スンナ派を徹底的に憎悪する人々を軍隊の中核に配置し、統率力を高めようとした。
イラン人が正統と認める「イマーム」は、初代アリーから12代ムハンマド・ムンタザルまでの12人いた(12イマーム派)。これ以降、直系の継承者が絶えたが、イマームは死に絶えたのではなく、人々の前から姿を消し、隠れたのだと考えられている。
この「隠れ(幽隠)」のことを「ガイバ」と言う。「ガイバ」の状態にあるイマームは最後の審判の日に、この世に再臨すると信じられている。
そして、かつてのイマームたちの家族やその子孫たち、彼らの血筋を引く者が「サイイド」とされる。「サイイド」はアラビア語で「血筋」を表す言葉だ。ホメイニやハメネイ師のような「サイイド」が最高指導者として、「イマーム」が再臨する日まで、「イマーム」の統治を代行している。
そのため、イランでは、最高指導者が国民に選ばれた大統領よりも強大な権限を持ち、国家の最終意思決定者として君臨する。
まさに、シーア派の思想が政治においても実践されており、そうした観点からもイランは宗教国家と言える。
このような国家は「神の名」において、妥協をすることはしないであろうし、アメリカが強硬に出れば出る程、彼らは「ジハード(聖戦)」の大義名分を掲げ、戦いに挑むだろう。
宇山卓栄(著述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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