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4월에 춘설이 내렸다. 제법 눈이 많아서 카메라를 들고 무조건 거리로 나갔었다. 춘설, 매화, 봄은 아득하다. 겨울이라는 지루하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맺은 환한 소식과 가버린 임이 오는 듯 늦은 눈 소식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우주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온 신발과 잃은 신발을 한꺼번에 찾은 것 같은 미묘한 기쁨을 매화와 춘설에서 보았다. 이것은 기다림이다. 저 고요히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저 멀리서 벗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 봄꽃도 오고 천지를 가득 메우는 춘설도 내 앞에 있고, 이 모든 풍경을 우주에서 마련해 주셨으니 벗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욕심을 내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