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가수들의 K-POP 한류열풍이 거침 없다. 갈수록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미주를 넘고, 남미에 이어 이제는 히잡을 쓴 열사의 땅 중동까지 지역과 인종, 남녀 ‧ 노소의 구분이 없다. 아이돌 가수들이 가는 곳이면 수천, 수만 젊은이들의 물결이 춤춘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거리 곳곳, 공연장 어디나 입추의 여지없이 메워진 채 흥과 열기로 젊음의 기를 발산한다.
지난 8일 밤 방송한 KBS-TV ‘다큐멘터리 3일’ 칠레 편이 이를 입증했다. 트와이스와 정연, 워너원, 태민 등 아이돌 공연을 보기 위해 칠레는 물론 남미 각국에서 몰려든 펜들로 공항입구부터 북새통에 인터뷰에 응하는 관객들의 표정은 이미 감격으로 흥분에 젖은 상태였다.
이 아이돌 가수와 걸그룹의 노래와 춤이 얼어붙은 북녘 땅까지 전염시키고 있다. 4월1일 동평양대극장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에 이어 3일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과 북의 예술인들이 하나 되어 남북 화합의 무대를 연출했다. 많은 국민들이 평양 공연 실황을 보았겠지만 평양 공연을 끝내고 돌아온 우리 출연진들의 감동과 감격은 일반 관객의 느낌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연에도 비할 바 되지 못한다고 이구동성 한 말에서도 설핏 이해된다.
북한 측 감독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축하를 위해 북측 예술단을 인솔하고 강릉과 서울 국립극장 공연무대에 섰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평양 무대에서 우리 가수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말 그대로 하나된 민족으로서 ‘우리는 하나’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표정은 뜨악하고 웃음기나 감동이나 감격스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어도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가 첫날 공연에 참석했다. 2일차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의 남북합동공연에서는 김영철 등 1만2천여 객석을 메운 관객들이 모두 일어서 기립박수까지 보냈다.
신상옥, 최은희 납치사건에서도 보듯이 예전 북한 김정일이 우리 영화나 가요를 광적일 정도로 심취했다거나 김정은이 걸그룹 아이돌 가수를 좋아한다는 얘기처럼 북한 내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 노래가 인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가요 또한 이젠 한국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아 이번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으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 특사단 방북 이후 우리 공연단이 평양에서 1차 단독공연과 2차 남북한 합동공연을 가졌다. 공연단의 일원으로 아이돌 레드벨벳이 주목받았다. K-POP 여세를 몰아 세계적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 북한에 알게 모르게 유입되고 있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장마당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는 CD나 DVD, USB를 통해 한국 가요가 널리 퍼지고 있음은 최근 탈북인들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엊그제 뜻밖의 사건이 뉴스를 탔다. 북한당국이 지난 3월말 한국 가요를 듣고 춤을 춘 미성년자 6명을 ‘反북한 음모죄’로 처벌했다고 아사히신문이 9일 보도했다. 16~17세 청소년 6명은 북한이 금지한 한국 가요 약 50곡을 들으며 춤을 췄으며, USB메모리에 이를 저장해 다른 사람에게도 건네려 했다는 죄목으로 4명은 노동단련형(일정 장소에서 합숙하며 청소·건설 노동 등을 강제)1년을 선고 받았으며, 2명은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은 자들이 수감되는 교화소(우리의 교도소)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런 조치는 1일과 3일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로 남북의 가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감격에 겨워 열창을 하며 ‘우리는 하나’의 화합을 연출한 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남한의 연예인들을 불러 평양의 최고급 호텔과 음식을 시켜 은은하고 화기로운 눈총에, 1만2천 객석까지 꽉 채우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기립박수로 성대하게 ‘우리는 하나’임을 보여준 북한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조선 가요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들을 집단으로 교화소에 보내는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1일 우리 가수들의 단독공연에 김정은이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조금도 들을 수 없었다. 노동신문은 지난 2일 남측 예술단과 김 정은, 리설주가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게재하면서도 우리 가수의 이름과 공연 시 부른 곡목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표 매체 조선중앙TV가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무음 처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걸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전체는 완전 삭제했다. 통편집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관객들도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시 우리가 인터넷 신청을 통한 무작위 선별과는 달리 북한의 보통의 평양시민은 아니었다고 했다. 노동당에서 대남전략을 관장하는 통일전선부, 평양 노동당 시당 관계자들에서 삼지연 악단 등 예술단과 북한군 소속 예술단원들 주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가수들이 관객들을 향해 “여러분, 이 노래 아시죠. 함께 부르시죠”하고 분위기를 돋으며 권유해도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술단원이라면 이번 공연단이 부른 노래 한 두곡은 의례히 부를 수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따라 부르는 이가 없었다. 왜냐? 부를 줄 안다고 불렀을 때 다음에 돌아올 그 후과를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열린 조선노동당제4차당세포비서대회에서 “우리 내부에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 독소를 퍼뜨리고 비사회주의적 현상들을 조장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며 이런 자본주의 요소들이 “청년들과 인민들의 혁명의식과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사회주의 혁명 진지를 허무는 매우 위험한 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그 최고지도자 "위대한 어버이 수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위원장 이시며 국무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는 우리 공연단에게 더 많은 남북 교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을에는 서울에서 공연하자”고 제안도 했다. 흐믓한 환영의 미소로 걸그룹 등의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한 노래를 듣고 춤을 췄다고 미성년자들을 노동단련형에 처하게 하고 교화소로 보내고 있다. 그게 지금의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
이중 다중격의 공산주의자, 겉과 속이 판이한 양두구육(羊頭狗肉) 두 얼굴의 북한 핵심 권력의 지도자들.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쳐다보고, 말로만 그치면 끝나는 것인가? 대화에 응한다고, 비핵화를 꺼냈다고 ‘해빙의 기운’이 왔다며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 흘리는 사이 정작 나 자신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면 어찌하나? '좋은 건 좋다'지만 바로 지금 그 시기가 아닐까?
어느 개그 프로의 “정신 바짝 차리자” 유행어가 다시 생각나는 오늘이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