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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 가신지 사흘째입니다
첫날은 멍하니 보내고 둘째날은 내내 울며 보내고
오늘은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래도 문득문득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렵네요
복잡하게 뒤엉킨 심사를 달래기가 쉽지 않지만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합니다
누구나 고인을 회고할 때 자신과의 인연을 반추하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주 우연한 기회로 2002년 대선 막판에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게 되었습니다
절친한 선배 한 분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TV를 잘 아는 작가가 필요하다, 도와달라고 했고
저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노무현 후보의 찬조연설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시사프로그램의 작가일을 하고 있던 터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워낙 급박한 일정이라고 다그치니
하는 수 없이 저의 신원을 절대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일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찬조연설단에 결합한 작가들이 모두 남자분들이라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저에게 여성 찬조연설자의 원고가 맡겨졌고
그 첫번째가 '자갈치 아지매'였습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와중에 어렵사리 일정을 조정해
서울역 쇼핑몰에서 녹음기를 사들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장사에 바쁜 아주머니를 취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손님들과 주변 상인들이 북적거리는 시장 한가운데서
녹음기를 꺼내들고 인터뷰를 하는데
머리속으론 온갖 걱정이 다 들더군요
과연 이 분이 카메라 앞에서 원고를 읽을 수 있을까,
이 분에게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이 분 말씀이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내내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밤늦게 컴터 앞에 앉아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
도저히 정리가 안돼 아주머니의 따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2시간 남짓이었나... 꽤 오래동안 전화를 했던 것 같은데
그 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래, 우리 엄마가 하신 말씀을 쓰자'
자갈치 아지매가 살아온 삶은
이 땅 모든 어머니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학교를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했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도록 일을 했으며
그저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불의를 보더라도 눈을 감으라고 당부했지요
그 어머니들의 마음으로 다시 들어보니
녹음해 온 인터뷰가 새록새록 가슴을 치더군요
제 어머니가 평소 저에게 하셨던 그 말씀들을
자갈치 아지매의 말씀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작성한 원고가 방송을 탄 후
한동안 저는 여의도 주변엔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알았는지 프로그램 팀장님과 국장님이 알게 되셨고
다른 후보측이 알게 되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방송사도 문닫게 된다며 불같이 화를 내셨지요
일개 프리랜서일 뿐인 저에게도
그런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다행히도 기적같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고
저는 다시 방송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4년...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 죄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는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참여정부 탄생에 본의 아니게 일조해버린 저는
주변인들로부터 적지않은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이라크파병, 농민대회, 한미FTA...
실망스런 정책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온나라가 미쳐돌아가던 2006년 가을은
정말 원망스럽더군요
임기를 1년여 앞둔 2006년 12월말.
또 한사람의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비사를 기록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뭘 잘했다고 기록이야?"
선배의 말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던 저는
몇번의 설득끝에 결국 그 일을 맡았습니다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기록을 남기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오기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 당신들이 얼마나 무능력했는지 낱낱이 밝혀주마'
두 달 여의 취재와 인터뷰, 또 두 달 간의 원고 작성.
선거캠페인 기간부터 시작해 5년간의 부동산 관련 기사
수만건을 검색해 매일 밤을 새며 읽어내면서
저도 모르게 원망과 미움이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자본과 기득권에 포위된 외로운 대통령의 모습만
오롯이 남더군요
2007년 가을, 북한의 홍수 피해로
남북정상회담이 한달 여 뒤로 미뤄졌을 즈음,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에 잠깐 시간을 내실 수 있으니 바로 들어오라고.
그때는 인사 관련 기록물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지요
당시 청와대는 모든 분야에서 정리와 기록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바쁜 분은 대통령으로 보였습니다
각 시기, 각 업무마다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를 알아야 했으니
인터뷰가 연이어 잡혀 있었겠지요
저도 엉겁결에 그 대열에 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묻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질문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은 언제나 그랬듯 단순하고 명료했으니까요
토를 달고 해석을 달고 의미를 분석하는 언론이나 평론가들이야
이런 저런 이유와 근거들을 제시하곤 하지만
사실 노무현의 의중은 그의 말속에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이었지요
저는 달랑 한가지 질문만 던지고
비싼 밥을 얻어먹고 나왔습니다
밥값, 집구경값을 너무 적게 낸 것 같아 미안했지만
안 그래도 피곤한 대통령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던게
솔직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 해에 작성했던 두 개의 기록물은
모두 발간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책을 냈다가
괜한 오해를 살 것이라는 이유로 연기됐는데
정작 선거가 끝나고 나니
다음 정부의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며
끝내 접어버리더군요
그 기록물들은 제 노트북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인사문제로 위기에 몰릴 때나
작년 종부세 폐지 문제로 시끄러울 때
그 기록물들을 혼자 뒤적이며 울분을 달랬습니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죽도록 싫어했던 대통령.
설사 그것이 적이라 할지라도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면
정당하지 못한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그래서 노무현의 기록은 공개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의 영정에 하얀 국화꽃 하나를 바치며
그 기록물도 함께 바칩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외쳤던 그에게
마지막 1년간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할 수 있어서,
그의 삶과 철학을 돌아볼 수 있어서
진정 행복했노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선택한 당신이 그르지 않았다는 걸
제 손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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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좀 진정된 듯 했는데 또 눈물입니다.
한때는 정말 미웠고, 내 마음 속에서 지우고 싶었는데...씨발 왜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가슴이 시려오네요.
그 분이 남겨주신 의미....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슬프다....
연관이 깊은만큼 더 슬프시겠어요..언론에 비쳐졌던 힘없고 외로웠던 그분의 모습, 바로 그때 그분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것이 참 후회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