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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출신고 홈피에서 어느 분 말씀 말씀대로 "모셔온" 글입니다.
필요하시면 원전대역본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바람도 불고 비도 많이 오는디 부디 맘 느긋하게 잡수시고.....
노망들어 맨날 며느리 욕흐거나 머크락 끗고
얼척없는 누명 씌워 동네에 개망신 시키는가 흐면
벼랑빡에다 똥칠흐던 시애미가 죽었는디
며느리가 설리설리 울더란다.
이유를 물어봉깨
죽은 시애미가 불쌍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조렇게 가불먼 허망흐게 끝나불 것을
인지까 가심 끓이고 보타짐시로 보냈던
지난 날들이 웬통해서 운다고 흐드란다.
첫날 밤 첫코를 개안흐게 뛴 다음
신랑놈이 댐배 한 대를 맛나게 뽈고 있는디
신부가 벼개에다 마빡 박고 훌쩍훌쩍 울드란다.
왜 근가 했더니
요렇게 조불먼 개안흐게 끝나불 것을
순결이 머시다고 고렇게 지킬라고 애썼던지
지나 온 날들이 아수와서 운다고 흐더란다.
술 담배를 끊고도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 좋게 걸치고 쪼개고 놀먼 얼마나 좋겄냐마는
권흐는 술잔을 거절흐다 보니 피차에 야속흠서 서먹흐다.
권흐는 놈도 멋쩍고 빈정이 상흐지만
거절흐는 놈도 안타깝고 피곤흐다.
콱 한 잔 샘캐 불먼 그만이지만
고것이 머신디 끊을라고
불면증과 우울증, 각시와 싸우며 발싸심을 댔던
지난 2년이 아까와 쥔 술잔을 슬며시 놓는다.
글다 봉깨 친구들도 꼭 만나야 흘 일이 아니먼 피하게 되고
먼저 전화해서 저녁에 까페베네나 스타벅스에서 만나
라떼나 카푸치노에다 하니 버터 브레드 한 쪽흐자고 하기도 뭣해서
점차 소극적이 된다.
어지깨는 남하, 덕겸, 봉광부부와 함께
이영만 장군 부대에 놀러갔다.
점심때 T-bone 스떼이끼에 버드와이저를 한잔씩 뽀는디
해필이먼 영만이 맞은 편에 안거 논깨
술잔을 비고 돌릴 때마다 눈이 마주친다.
“육지의 섬”이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군님의 용안을 우러러 보면
얼른 받아서 마셔 불먼 좋겄지만
고렇게 못흐는 현실이 서글프다.
영만이도 사정을 아는 지라 배시시 웃으며 건너 뛴다.
술도 안 마시고 칭구들도 안 만나다 보니
종봉이 말대로 애펜네 치마 폭에 코 박고 개기는 때가 많다.
하루는 각시도 혼자 노는 내가 짠했던지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라며 전해 준다.
어떤 여자가
하도 성당일이다 봉사활동이다 하며 싸 댕기다
남편과 새끼들을 등한시 했더니
불만이 많은디 어찌 흐면 좋겄냐고 신부흔테 물었단다.
신부는 당연히 성당 일을 줄이고
집안에 충실흐라고 답해 줬단다.
단, 활동을 줄이드라도
신앙을 줄여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단다.
지깐에는 가장 좋아흐는 짓을 못흐는 남편을 위로흐는 말이다.
긍깨 술자리는 피하드라도
칭구들과의 우정은 더욱 깊게 흐고 고이 간직하라는
기특한 말씀이다.
그동안 모임이나 홈피에 뜸하다 보니
몇가지 달라저서 근황을 전한다.
작년 초 당뇨가 심해서 1년 동안 은행에 안 가고 놀다가
금년 4월부터 임금 피크로 일흐고 있다.
사무실은 흠모흐는 최근창 사무총장님이 재직 중이신
상암고 맞은 편에 있는디
금년 봄 송파로 이사하는 통해
서울 대각선 끝에서 끝으로 출퇴근이 각각 2시간씩 걸린다.
각시도 작년에 나랑 놀라고 퇴직흐고
문정동 훼밀리 아파트로 집을 옮겨
인자는 자리도 잡히고 적응도 되어 잘 살고 있다.
松江(송파와 강동 사는 칭구들 모임) 멤버들이 정말 잘 해준다.
한 10명이 각시 동반으로 만나는디
영파여고 훈장이신 임윤섭이가 어찌나 야물게 기초를 다져 놨는지
비온 날 번팅을 혀도 각시 포함 거의 100% 참석이다.
수컷들도 수컷이지만 각시들이 더 좋아흔다.
덕분에 30년간 강남 삼시로 못느끼던 훈훈한 정을 느끼고 산다.
요새는 남하의 제안에 의해 혹서기에는 각시들 심들고
음식을 해도 금방 쉬어분깨
당분간 더우가 어느 정도 가실 때까지는
집에서 밥 해 묵지 말고 동네에서 만나 서로 사묵고 놀기로 했다.
강남 칭구들은 하도 똑똑흐고 돈도 많고 잘 나서
부부모임만 댕개오믄 각시가 과거 나의 행실을
칭구들과 비교, 분석흐며 씹는 소리에 돌아불 것더니
송강은 안 긍깨 좋다.
얼마나 좋고 부러우면 역삼동 사는 양원철이는
몇 년 이내에 송파로 이사 오기를 다짐흐고
마이가리로 송강회에 가입을 했는가 하면
도곡렉슬에 사는 김덕겸이나
광장동의 위봉엽, 주경국이도 사정사정 해서
옵저버로 참석흘 정도다.
다시는 강남에 안 가고 친구들도 안 만난다 했더니
하루는 백원선이가 집에 놀러 와서
지는 강남은 강남이지만 다르단다.
강남도 다 강남이 아니라
테헤란로를 경계로 그 우쪽은 “테북”,
밑에는 “테남”으로 나눈디
거그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아조 차이가 난단다.
“테북” 사는 사람들은 자본가 계급인 블루 자지로
보수 귀족이요, 세습 부자란다.
압구정이나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이 분들은
소비 패턴도 고가나 명품 위주고
얘들 교육도 돈에 구애 받지 않고 개인 괴외를 시키다
정 안되면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가
나중에 애비 회사 하나를 물려주먼 된단다.
반면, “테남”은 중산층 신진 엘리트로 조선시대 사대부와 비슷흐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흐고 노력하여 성공한
자수성가가 주를 이룬단다.
여자들도 자기 삭신에는 거의 돈을 안 씀시로도
새끼 교육을 위해선 놈집살이라도 흔단다.
“테북 여자”들이 고급 미용실에서 머리흐고
호텔 레스또랑에서 우아흐게 칼질흘 때
“테남 여자”들은 몸빼 입고 지까심 장시 머리를 볶고
싸구려 밥집에서 양푼비빔밥 먹음시로도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흐고
쪼까라도 나슨 학원이나 강사가 있다고 흐면
목숨 걸고 새끼를 보낸단다.
고로 “테북 칭구”들과는 관계를 끊더라도
지는 “테남”잉깨 계속 만나잔다.
나는 강남에서 쫓겨나
인자는 탄천 동쪽, “탄동”에 산다고 했더니
남하가 옆에서 지는 오금동잉깨
성내천 서쪽, “성서지역”에 산단다.
남하와 내가 송파로 이사 온당깨
유문식이가 諡號를 하나씩 내릴라고
젤로 머리가 아팠단다.
지는 송파 회장이고,
지금은 압구정에 사는 박종봉이가 송파거사,
광주에 파견나가 있는 김병용이가 송파돌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지금은 하늘로 돌아간 임희재가 송파대감인디
머시라고 붙여줄까 고민흐다
한남하는 송파제독,
나는 송파문장이라는 시호를 제수받았다.
문식이의 遺志를 받들어
송강 鄭澈이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리에 방면을 맡디시니
어화 성은이야 망극흐다“고 관동별곡을 읊었듯이
“강남에 병이 깊어 송파에 누웠더니
송파와 강동의 문장을 맡디시니
어화 우정이야 허벌나게 망극흐다“로 시작되는
송강별곡이나 읊음시로 살란다.
우리도 벌써 꼬부라진 육십이구나.
물론 정남준이가 폭로했던
박종봉이 같은 개띠 얘들 이후는 제외흐고.
칭구들아!!!!!
나이 묵어갈수록 좋게 생각흐고,
좋은 기억만 생각해야 해.
안글먼 자신이 더 비참해지고 어려와지기 때문이야.
앞으로 송파에 삼시로
서중, 일고를 댕김서 느그들흐고 지냈던
“아름답고 좋았던 추억”들을
시간나는 대로
“냄기고 싶은 야그들”로 살려 볼란다.
한 달 전 쯤 각시가 “써니”라는 영화를 보는디
나하고 칭구들이 비디오 같이 떠 올라
한없이 울고 웃었담서 빨리 보란다.
여고 때 놀던 가시내 7명이 졸업 후 소식이 끊겼다가
40대 중반에야 옛 두목 하춘화의 죽음을 앞두고 서로 만나
자아를 찾고 우정을 되살리는 애틋흠시로도 재밌는 야근디
우리 학교 댕길 때도
진클럽, 에뜨랑제. 시내파, 하키파,
육상파, 덴뿌라집파, 당고집파 등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디
지금은 다 무엇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을 거야.
다들 한 데 모여 그 시절 그 추억을
영화 같이 나눴으면 좋겄다.
염병나게 덥고,
비까지 징흐게 내리는 더운 여름, 몸조심 흐고 잘 지내거라.
태풍 서방판지 무이판지가
무서운 바람과 비를 뿌리며 지나가는 날,
상암동에서 쓴다. 안녕!
첫댓글 정이 듬뿍 든 이야기 같네요 .. 통역이 필요한 부분이 쬐까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