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 95년 5월 18일 화요공부방 - 정전 쉰여섯째 시간
□ 제3 수행편
제6장 일기법
설인성 교우님이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하셨습니다. 설인성 교우가 중2 때
저를 만나서 10년이 되었는데 벌서 커서 화장도 하고 많이 바뀌고
변화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흐뭇하고 머리가 상쾌합니다. 안 하던
칭찬을 하니까 이상하네… 사실입니다. 저한테 칭찬 들은 사람 별로
없죠?
일기는 대조를 하고 점검을 하고 평가는 하는 것이고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대조, 점검, 평가, 확인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쓴 것 또는 마음을 깨친 것 그리고 수양한 것과
연구한 것, 또는 취사를 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삼학 공부의 꽃이요 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기와 상시 일기를 쓰는 교도는 100% 교도라고 인정합니다. 반대로
일기를 안 하는 교도는 100% 교도는 아닙니다. 99.9%인가 몰라도…
이렇게 제가 자비롭게 이야기를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일기를 씁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도 있고, 기독교 물품
파는 곳에 갔더니 일기만도 수십 종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살펴 보니
우리 보다 더 잘 되어 있어서 정말 놀랬습니다.
일기를 썼다 안 썼다 하는 사람은 대강대강 인격이 되기 쉽고 아예 안
쓰는 사람은 죽도 밥도 안 되는 인격이 됩니다. 어떤 이는 일기 안
쓴다고 그럽니까? 마음만 잘 쓰면 되지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강대강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의 마무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회계 결산을 하고 내년 계획을 잡습니다. 조그만 구멍가계 하는
사람은 그런 것 안 하는데 그래서 구멍가계를 하는 것입니다. 큰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큰 인물은 큰 회사가 기록을 하듯이 기록합니다. 이 중에는
일기를 안 쓰는 사람은 쓰면 되고, 쓰다 말다 하는 사람은 다시
시작하면 되고, 계속 쓰는 사람은 더 잘 쓰면 됩니다.
먼저 일기를 쓰려면 저녁에 일기 쓸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저녁에 일기
쓰는 시간을 내려면 낮 시간에 잘 보내야 합니다. 저녁 시간에 TV로
OCN 영화를 자주 본다든지, 게임 등에 빠져 있는 사람이 무슨 수로
일기를 쓰겠습니까? 어렵겠죠?
맘 편하게 하려고 원불교에 왔는데 대종사님은 귀찮게 일기를 쓰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 생각에 까닭이 없으면 글로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쓰려는 마음이
없어도 안 됩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경전을 읽거나 의두나
성리를 연마하거나 또는 일과 이치의 현상을 까닭 있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일기를 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기 쓸 것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훌륭합니다. 일기 쓸
것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물을 볼 때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본래 마음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조화가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아까 성우 교우가 피아노를 잘 쳤는데 그렇게 치려면 많은 단련이
있어야 합니다. 피아노 1년 치면 될 것 같아요? 아닙니다.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 했을 것입니다. 시간을 투자 하니까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우 교우가 피아노에 투자를 해서 잘 하듯이 우리도 각자의
분야에서 투자를 하면 그 분야에 대단한 능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충한다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짚고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대학의 원불교 동아리를 보니 발전하는 동아리는 기록을
합니다. 기록을 하지 않는 단체는 10년 전에 선배들이 했던 짓을 그래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기록을 하면 후배가 그것을 보고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아줌마가 가계부를 안 쓴다면 그 집안은 잘 살
리가 없습니다. 더 잘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사교형들은 일기를 잘 안 쓰고 몸으로 잘 나툰니다. 사색형들은
꼼꼼하게 잘합니다. 그러나 너무 꼼꼼해서 법박의 위험이 있기도 합니다.
관계형들도 일기를 잘 안 씁니다. 두리뭉실하고 방도 어질러져 있고
일기도 명료하게 기재하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만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가까이 같이 일하면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듭니다. 그런데 신심이
있으면 사교형이든지 사색형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현대는 옛날보다 만나는 대상이 많아지고 시간과 공간이 넓어져서 할
일이 많아 머리에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재하지 않으면
실수를 자주하고 무념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반드시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적어야 합니다. 적지 않으면 무념하고 방심하게 되고
실수하고 신뢰를 잃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신용을 받지 못해 추천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게문 대조를 할 때도 기록을 해야 내 자신이 계문을 몇 개 어긴지 알 수
있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한 번 다시 챙겨보고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불교의 모든 일기법은 숫자로 적습니다. 수행은 몇 시간
했는지 계문은 몇 번 어겼는지 숫자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유념은 몇 번
했는지 무념은 몇 번 했는지 숫자로 적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이 큰 사람들은 ‘에이 마음 공부가 쫀쫀하게 적는다고 하는
것이야?;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짜 큰 사람이 안
됩니다. 큰 것은 하고 작은 것도 잘 해야 큰 사람이 됩니다.
우리 교당에 저번에 왔던 전 롯데 이종규 사장님은 상고를 나와서
롯데에서 회계를 하다가 나중에 사장까지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회계를 했기 때문에 회사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회계를 하지 않은 사람은 막연히 회사가 이익이 남았겠지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하지 구체적으로 얼만큼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분명한 숫자, 데이터 라고 하는데 데이터가 명확해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저께 방송에 나왔는데 계산해 보니 그 프로그램 전체
시간의 32%를 내가 썼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데이터가 나와야 합니다.
누가 안암 교당 가는 길을 물을 때 ‘안암오거리에서 가다 보면 있다’ 고
가르쳐주면 안암오거리에서부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안암 교당을
찾으니 뒤차는 빵빵거리고 앞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가 사고 날
위험이 커집니다.
안암오거리에서 몇 미터 앞에 무슨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에서 좌회전
하라고 알려주면 찾는 이는 그 건물까지 마음 놓고 갈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엉뚱한 건물 쳐다보다가 다른 사람
죽이기도 합니다. 마음 공부도 마찬가지고 일도 마찬가집니다. 꼼꼼하게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당에 갔는데 교무님이 20원이 안 맞아서 저녁 내내
계산하고 있으니까 교무님에게 20원 주면서 ‘이것 보태서 하세요’ 라고
말했답니다. 누가 그것을 할지 몰라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은행직원이 4시 반에 문을 닫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확인 하는
과정이 있듯이 우리도 하루를 살고, 또는 한 달을 살고 나고, 또는 일
년을 살고 나고, 또는 삼 년을 살고 난 후에는 반드시 그날에 그것을
체크를 해야 합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제가 핸드폰을 쓰는데 자꾸 꺼져서 물어보니 이런 것은 서비스를 받아도
안 된다고 해서 이번에 핸드폰을 갈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핸드폰에
생일이나 메모, 주소, 또는 계좌번호 등을 일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적어 놓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었더니 A4지로 앞뒤로 한
장에도 다 못 적었습니다. 핸드폰을 반납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는데도
시간도 꽤 걸렸습니다.
그때 그때, 잠깐 잠깐 메모 하는 것은 쉬웠는데 한꺼번에 하려고 하니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서 감상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제 일기입니다. 제가 경전 공부하면서 평상시에 얻은 감각
감상이나 심신 작용을 메모 해 놓고 그것을 설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종경도 대종사님의 심신 작용과 감각 감상을 말씀하신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잖아요? 대종사님의 심신 작용과 감각 감상 그리고
저의 심신 작용과 감각 감상의 공통점은 바로 까닭 있는 마음입니다.
그냥 생각 없이 하루를 산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까닭 있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날 그날 일기를 쓰는 것은 작고 쉬워서 우습게 압니다.
그러나 일기를 한꺼번에 하려면 무척 힘들고, 그때 그때 하는 것이 정말
큰 것입니다. 나중에 훈련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내 습관을 고치고
진급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식한 생각입니까?
대종사님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에 일기법을 넣어 놓았는데, 그것은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은 정말로 산속에 들어가서 수행 적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일기 쓰는 데는 5분 밖에 안
걸립니다. 감각 감상을 쓰면 좀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계문 체크해도 거기서 거기잖아요? 어기는 것 똑같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신용 어기는 것 계속 어기고 있고… 딴 사람 과실을 아울러
말하고 있고,,, 진심도 한 번씩 내잖아요? 그렇죠? 금방 금방 체크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습관화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반 교도들이 쓰는 일기는
교당에서 이 책자를 제공하고 있는데 뒤편에 일기를 기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무념, 교화 대불공, 상시 훈련법에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쭉 기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급
특신급 상전급 계문을 쭉 체크해서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매일 저녁에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단장한테 점검을
받고 한 달에 한 번은 단장이 단원들의 일기를 모아서 교무에게 점검
받는 것이 맞습니다.
자금 원불교 교화가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이 설교 듣는 주의가 되고
있는데 이러면 교화가 안 됩니다. 그리고 일기가 감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일기를 안 쓴다는 말입니다. 일기를 안 쓰면 원만한 인격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이 노트를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2천에서 사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일기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대종사님 따님이 박길선이죠? 주산
종사와 둘이 좋아했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분들 아들이 원광대 총장도
하신 송천은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쓴 일기를 보면 대종사님
당대에 멀고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말 공부를 열심히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 교무님들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분은
훈타원 양도신 선생님인데 이분은 당신이 쓴 일기가 그대로 체크되어
있습니다. 몇 월 며칠 몇 살에 감각 감상이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저도 일기가 2미터 정도 됩니다. 일기를 기재하는 것은 공부의 꽃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책으로 낸다는 것은 얼마나 수행에 자신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도문을 오픈 하고 자기의 마음 공부를
그대로 오픈 하는 것은 정말 진실한 수행자라고 생각 합니다.
기도문이나 의두 요목을 오픈 하지 못하고 일기를 오픈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실한 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초입자는 일기 잘 안 써도 됩니다. 하다가 진력증 나니까… 그런데
원불교를 만난 지 3년 이상 되었다면 일기를 기재하시고 일기를
기재하면 효과가 빠릅니다.
원문을 놓고 하나씩 하겠습니다. 일기법은 11과목의 평가이고 결국은
공적 영지의 우리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고 내 안에 갊아져 있는 무궁한
보물 묘리 조화를 드러내는 것이고 단련하는 것입니다.
일기법의 전체에서 기재라는 단어가 10번 나옵니다. 생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의두나 성리가 생각으로 하는 것이고 일기는 그
생각을 글로 기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행과 심신 작용을 체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일이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 그날 그날 하라는
말입니다.
그날 해야지 잊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다음날 일기를 안 쓰면 어느새 ‘내가 뭘 잘못 했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일에 일기를 써야 잠도 편안하게 잡니다. 그리고
자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마무리를 하고 자야 합니다.
저는 자다가 그대로 못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영원히 계속 살 것 같습니까? 저는 죽음을
매일 매일 생각합니다. 그런 습관은 출가를 하고 나서 계속 되었습니다.
항상 죽어 있는 나의 모습, 10년이 지나서 뼈만 남아 있을 나의 육신
그리고 나는 어디로 천도 될 것인가?
우리는 현상을 보지만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상에 속지 않습니다. 그래야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내가 살아 있지만 죽었다는 것도
봐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 보면 현상에 속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살아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굥 묘유 이고,
그것이 유와 무를 함께 보는 것이고 대와 소를 다 보는 안목입니다.
걸어가면서도 어떤 것이 나인가? 하..! 아무 것도 없는 것이 걸어가네?
제가 지금 말하고 있지만 무엇이 들어서 말을 해요? 재 입이 말을
합니까? 내 생각이 말을 합니까? 저 불빛이 저렇게 밝은데 왜? 밝죠?
전기와 전구에 필라멘트가 있어서 전구가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밝게 생각하고 말 하는데 무엇이 들어서 말하고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 밝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적 영지입니다.
나라는 것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아
버리면 현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기는 바로 그런 이면을 보고
깨어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단순히 돈을 아끼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일기법에는 일기법의 대요와 상시 일기, 정기 일기 세 가지로 나옵니다.
일기법의 대요에는 상시와 정기 일기를 설명한 것입니다. 앞 부분을
보면 ‘재가 출가 유무식을 막론하고’ 이것은 누구나와 같은 뜻입니다.
누구나 당일의- 그날 그날의-
저녁에 일기를 쓰는 것을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것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잘 챙겨 먹고 잠을 반드시 자듯이
일기도 꼭 기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시 일기법의 설명이 나오고 다음에 정기 일기법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럼 상시 일기법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앞에서 배웠는데 상시 훈련법에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를 평가해서 재 점검해 주는
것이 상시 일기입니다. 첫째는 유무념, 둘째는 학습 상황, 셋째는 계문
대조, 그리고 넷째에 태조사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재, 유무념입니다. 유무념은 유념으로 처리한 것과 무념으로 처리한
번수를 조사 기재합니다.
유념(有念) - 멈춤, 온전한 생각
무념(無念) - 습관, 감정
유념 공부라는 것은 뭐죠? 생각 있는 마음입니다. 반대는 생각이 없다.
그냥 습관과 감정대로 자기 맘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있다는
것은 멈추어서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한다는 말입니다. 기분 나는
대로 습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서 생각을 하고 실행한다.
이것을 용심법이라고 합니다.
마치 소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소는 처음에는 무념으로
농작물에 해를 끼칩니다. 그런데 유념은 처음에 코뚜레를 뚫듯이 마음을
신심과 법고 스승에 대어야 합니다. 그래야 유념 공부가 시작됩니다.
경계 속에서 멈추고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에 계속 공을 들이는 것이
유념입니다.
원불교 삼학 공부의 총쳬는 유념 공부, 주의 공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유념 공부를 하는 사람은 삼대력이 길러져서 실수도 덜하고
무게가 있고 지혜가 있고 신뢰를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마음에
힘을 얻어서 생사의 문제에도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됩니다. 마음을
경계에서 멈추는 공부가 대단한 공부입니다.
주위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호흡만 하고 있는데도 내 마음을
멈추는 것도 정말 어려운데 동시에 수 많은 경계 속에서 마음을
길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시 수양이 기초입니다. 정시
수양은 앉아서 호흡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계속 나가는
번뇌를 내가 확인해서 단전에 잡아들이고 잡아들이면서 마음의 힘이
그때 엄청나게 길러지는 것입니다.
무념은 내가 감정을 잡아들이는 것이 안되어 그 감정에 어어~ 하면서
딸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을 길들이지 못해서 감정 나는
대로 하는 마음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유념도 복합 유념입니다. 대종경에도 나오는데 훈타원
양도신 선생님이 약을 불 위에 얹어놓고 바느질을 일심으로 하다가 약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심으로
했는데 왜 이렇습니까? 어떻게 보면 참 멍청한 것 같은데 대종사님은
아주 칭찬을 했습니다. ‘진짜 일심 공부를 하는 사람은 도신이구나.’
우리는 일심을 과연 그렇게 합니까? 저는 극락이 곧 일심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선을 하다가 일심이 되면 그렇게 행복합니다. 아까 피아를
쳤지만 피아노를 치다가 하나가 되어 보세요. 겁나게 행복할 것입니다.
강연을 해도 강연하는데 내가 하나가 되면 강한 흡인력이 있습니다.
내가 강연을 할 때 헛생각을 하거나 주위를 의식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거나 불안하면 벌써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그대로 일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심 공부입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유무념을 나름대로 성공하게 할 것인가?
그렇게 하려면 적어야 합니다. 자꾸 순서를 잡아서 체크하고 체크하고
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두세 번 무념 하면 그 사람은 벌써 아웃입니다. 저번에
두산 그룹 회장이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회사에서 인맥으로
승진을 시켜주면 회사가 그냥 망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정당하게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냔 말입니다. 인맥이나 쓰려고 하고 화합이 깨지고 지자
본위가 안 되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들은 유념 공부를 잘했다고 봐도 됩니다. 그만한
유념을 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길들여서 명장이 되고 명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념 해서 자꾸 실수를 하고 방심을 하고
신뢰를 깨뜨린다면 그 사람은 임원으로 진급 할 수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나를 자르려고 한다면 회사가 손해라고 생각할 만큼 나의
프라이드를 갖추어야 한다, 나의 가치와 존재성 그리고 유용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언제 자를지 모른다면 내가 유념이 아닌
무념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유념을 하면 회사가 설사 망한다고 해도
다른 회사를 소개해 줍니다. 무념을 하면 잘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순간 순간 유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순간 순간 계속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색형이 잘 할 수 있는데 건성 건성 한 관계형이나
사교형들은 잘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루를 4등분해서 하면 됩니다.
아침밥 먹기 전, 점심 먹기 전, 저녁 먹기 전, 저녁 먹은 후 이렇게 네
때로 나누어서 유무념을 체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수월합니다.
유무념을 하면 명료해집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못하는지 스스로 증명이 됩니다. 유념 공부를 안 하면 두리뭉실하고
불분명합니다.
유념 공부에 단계가 있는데 첫째는 주의심으로 하면 됩니다. 일이
실패를 했어도 주의심으로 했으면 유념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날 때 일어나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도로 잤습니다. 처음에는 그건
유념입니다. 좀 지나면 일어나야지 유념이죠. 퍼 잤으면 무념입니다.
나중에는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수양을 하자는
것이고 사은 보은을 하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심을 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잘된 것과 못된 것의 번수를 기재한다. 더 들어가면 내가 사은에 보은이
되었느냐? 사은에 박수를 받느냐? 경륜과 포부, 대서원에 합당이
되느냐? 까지 봐야 합니다. 사은 보은이라는 대의에 맞아야 합니다.
학습 상황은 수양과 연구의 과목의 시간 수를 기재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몇 시간 했다. 사경을 몇 시간했다. 헌배를 몇 분 했다. 좌선을
몇 분 했다. 이렇게 시간을 기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회와 입선은
참석 여부를 적으면 됩니다.
그 다음 계문은 범과 유무를 기재합니다. 똑 같은 것을 하루에도 몇 번
범할 수 있는데 그때는 숫자를 더하면 됩니다. 타인과를 한 번 했다면
한 번, 세 번 했다면 세 번으로 기재합니다. 퇴근해서 직장 상사를 30분
동안 씹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건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자신이 중간에 챙겼다가 다시 방심했으면 두 건으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신분 검사 때 배우셨죠? 같이 상사를 씹느냐? 아니면 못 씹게
하느냐? 아니면 다른 이야기로 돌리느냐? 또는 칭찬 분위기로 만들어
가느냐. 또는 자리를 피하느냐. 그 단계에 따라 다릅니다.
대중 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은 죄를 짓는 것은 몸이 아니라 입이에요.
상처를 많이 주고 집단을 파괴하는 것은 입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 다음, 네 번째 태조사 설명이 나옵니다. 태는 ‘콩 태’ 자입니다.
콩으로 조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대산 종사님께서는 극락 가는 비결은
태조사법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념 공부라는 이야기입니다. 대산
종사님 이야기 들으셨죠? 결혼을 하셨는데 사모님에게 안 보여주는
가방이 있었습니다. 항상 열쇠로 잠겨 있어서 사모님은 조금 자존심도
상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씻으러 가고 없을 때 열쇠로
열었더니 콩 주머니 두 개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저녁에 무념에 검은 콩,
유념에 노란 콩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 콩 주머니를 나중에 좌산님에게
드렸습니다.
좌산님은 유념에 대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위에서는
징그럽다고 하지만 그 분 같이 유념을 철저하게 한 분은 없습니다.
적당히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낼 모레 글피에 관등기도를 하고 학사마련 바자회를 합니다.
그래서 홍보 인쇄물을 만들고 어떻게 할 것인지 청년들과 회장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신문에 넣으려고 했는데 천 만원이 넘게 든다고 해서
포기하고 그냥 아줌마들이 붙이고 청년들이 역 주변에서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한 장 붙이는데 40원씩 드는데 모두 만 천장이라 돈이 꽤 듭니다. 어제
반을 붙이고 오늘 반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붙였는데 오늘
비가 왔습니다. 우리는 무념 한 것입니다. 어제 붙일 때 오늘 날씨를
보았어야죠. 그리고 내일은 비가 그친다고 하니 낼 붙이기로 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일 비가 그치면 붙이지 말고 마르고
나면 붙이라고 했습니다. 다르죠? 비가 그치면 붙이는 것과 마르고 나면
붙이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꼼꼼하게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돈도 아끼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일은 적당 적당히 하면 안됩니다. 그
속에서 은혜가 나오고 신뢰가 싹트고 교화가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무한한 보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기가
막힌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없고 연마를 별로 안 하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마는 아침 좌선 끝날 쯤에 맑은 정신으로 굴려보고 저녁에 일기
시간에 굴려보고 적어서 자꾸 체크하면 됩니다. 저 사람은 일을 잘한다?
저 사람은 머리가 좋다? 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유념을 잘 했다는
말입니다.
약자들은 이렇게 착각합니다. ‘저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났다. 또는 머리가
좋다. 또는 학벌이 좋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한 유념이
들어 있습니다. 아까 피아노 잘 치는 것도 유념해서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전생에 피아노를 쳤다고 해도 이생에 연마하지 않으면 못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공부는 유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정기 일기입니다. 정기 일기는 훈련 때 하고 상시에도 깊이 있게
하고자 할 때 하는 것입니다.
작업 시간을 기재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시간의 국한이 없이 툭
터져서 편안하게 살면 안 되요? 아니죠? ^^ 작업 시간 수는 24시간을
여기에 박필진 선생님 일기를 보겠습니다. 주야 24시간 내에 6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공부하고 3시간은 밥 먹고 7시간은 놀았습니다.
지출금은 30전.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러면 대종사님이 평가를
내립니다. 시간은 갑. 처리도 갑. 그리고 글씨 잘 쓰는 것도
점검했습니다. 내가 글씨를 쓴다는 것은 명확하게 그리고 꼼꼼하고
세심하게 알았다는 뜻입니다. 글씨를 못 쓰는 것은 그것을 우습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치 있게 보낸 시간과 허망하게 보낸 시간을 대조하여 잠시라도
쓸데 없는 시간을 보내지 말자는 것이요. 잠시는 어느 정도의
시간입니까? 대학생들도 수업 중간에 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인지는 이것을 보면
압니다.
제가 원남에 근무할 때 신타원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어떤 일을
마치고 5분 뒤에 다른 일이 있으면 보통은 힘들다며 쉬는데, 그 분은 그
5분 동안에 다른 일을 또 해 놓았습니다. 잠시라도 쓸데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휴식 시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의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지 않고 짜임새 있게 보낸 사람은 계획과
목표가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 의식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잠시의 시간을 놀아 버립니다.
제가 출가를 해서 원불교 학과를 다닐 때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출가해서 10년 넘게 전라도 말로 오줌 한 번 편하게 못
누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왜 그랬을까? 를 생각해보면 일이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예비 전무 출신으로서 또는 부직자로서 생각해보면
앞으로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정말 바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목표가 없는 사람은 틈만 나면 노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원불교 삼학 공부하는 사람은 최소한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일반인과 똑같이 노력하고 쉴 것 다 쉬고
똑같이 되는대로 산다면 원불교 교도라고 하기엔 부족합니다. 우리는
일반인과 다르잖아요? 일요일에 못 쉬고, 토요일에 못 쉬고, 화요일에
못 쉬고, 헌배도 하고 사경도 하고 일기도 하잖아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자기가 정말 서원을 세우고 목표를 세운 사람은 정말 할 것이 많습니다.
어떤 분야든지 볼 책도 많고 물어 볼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쓸데
없는 시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물론 피곤하면 쉬어야 합니다. 우리 설인성 교우 같이 7시간 자는
사람은 드문데 오히려 3~4 시간 자고 비실거리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건강학회의 자료를 보니까 보통 사람들은 7시간을 자야 한답니다.
그래야 더 장수하고 효율이 높고 건강하답니다.
잠을 7시간 잤다 4시간을 잤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그 깨어 있는 시간에 일심을 들여서 낭비 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는 수입 지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대종사님이 현대 종교인의
모습으로서 영육 쌍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서원을 세우고
수행심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부부간에 서로 사랑을 해도
계속 찢어지게 가난하면 싸우게 됩니다.
대종사님은 의식주와 정신의 의식주 둘 다 해야지 정신의 의식주를
한다고 해서 육신의 의식주를 무시하면 결국 정신의 의식주도 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영육 쌍전법에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수입 지출을
분명히 기재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수입이 없으면 수입의 방도를 준비하라고 나옵니다. 준비는 자력
양성입니다. 자력 양성은 한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가지의 직업을 가진 사람도 전문직이 아니면 다른 대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변화를 빨리 읽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넥타이 디자인을 잘 하는데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왜
잘렸나 알아보니 컴퓨터를 무시하고 미리 준비를 안 한 것입니다.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읽어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하는데 안 배운 것입니다.
그 다음 지출을 줄인다. 지출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계문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정 하난 조절하지 못해서 사고 치고 경찰서에
가져다 준 돈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까 설인성 교우가 이야기 했는데,
알바 하는데 늦잠 자서 20분 늦었죠? 알바로 시간당 얼마 받지도
못하면서 택시를 탄다면 주객이 바뀐 것입니다. 유념을 못하면 지출이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출을 줄여서 안락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과입니다. 준비를 했느냐? 유념을 했느냐? 계문을
지켰느냐? 에 따라서 인과로 안락이 드러나게 됩니다.
맨 마지막에 ‘유족한 사람이라도 놀고 먹는 폐풍을 없게 함이요.’ 라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이에요? 사회에서 집안에 돈이 많으면 먹고
쓰기만 하면 됩니다. 대종사님은 설사 돈이 많더라도 놀고 먹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 그것이 습관이 되니까.
그렇습니다. 습관이 문제입니다. 돈이 있다고 쓰기만 하면 내생에 더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돈이 있다는 것은 복을 지었다는 것인데 그 복을
더 불려야지 쓰기만 하면 줄어들게 됩니다. 인과적으로 볼 때 돈이
있다고 해서 쓰기만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흥망성쇠를 하기
때문에 삼대를 못 간다고 합니다.
셋째, 심신 작용과 넷째 감각 감상입니다.
<심신 작용의 처리건을 기재시키는 뜻은 당일의 시비를 감정하여
죄복의 결산을 알게 하며 시비 이해를 밝혀 모든 일을 작용할 때
취사의 능력을 얻게 함이요>
심신 작용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일원상 서원문에 보면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이렇게
나오죠? 심신 작용을 잘 하려면 먼저 대소 유무의 이치에 대해서 가늠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넷째에 나옵니다. 심신 작용을 잘 하기 위해서,
즉,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치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일기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훈타원님 것입니다.
시창 20년 12월 19일치 양도신은 일기 하옵니다. 18세 동선
주야 24시간 내 10시간 공부, 3시간 식사, 7시간은 수면 1시간 반은
노동, 2시 반은 휴식, 지출금은 27전. 예비금 13전.
감상건입니다. – 이것은 대종사님한테 3갑을 맞았습니다. -
우리 공부와 사업에 맛을 붙입시다. - 가 제목입니다. -
도신은 일전에 조금 감상된 바가 있어서 몇 말 기재하려고 합니다.
일전에 점심을 먹고 난 후에 글씨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대교씨께서 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글씨 쓰던 것을 중지하고
그 밤을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조금 감상된 바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 밤을 먹는데다가 맛을 붙이는 것을 우리 공부와 사업에 맛을
붙이면 얼마나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이 밤에다 맛을
붙이면 이 밤을 항상 먹는 것도 아니요, 또는 이 밤을 먹고 나면
나중에는 속에 들어가서 나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 똥이 된다는
말이죠? - 아무 조화도 나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 밤 먹는데다 맛을 붙이는 것을 우리 공부와 사업에다
맛을 붙여 점점 차차 해 나갈 것 같으면 결국에는 일월로써 보지 못할
나의 성품 자리를 볼 수 있고, 비행기로도 구경할 수 없는 삼십 삼천을
임으로 내왕 할 수도 있고, 기선으로도 건널 수 없는 삼도 고해를 건널
수도 있고, 황금으로도 건설하지 못할 극락 천국도 건설할 수도 있고,
와사 점등으로도 밝히지 못할 천만 사리의 내막을 역력히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신은 이 밤뿐만이 아니라 무슨 음식이든지 그 음식에 맛을
붙이는 것을 떼어다가 우리 이 빛나고 빛나는 공부와 사업에다가 맛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밤 하나 먹는데도 우리 공부와 사업에 이렇게 맛을 붙인다면 정말 밤
먹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감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시간 갑, 감상 3갑, 습자 갑. 훈타원님 글씨 잘 쓰세요. 나중에 박물관
할 때 쓰려고 제가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밤 하나 먹는데도 까닭 있게 먹는단 말입니다. 이것이 감상입니다.
그런데 감각이 들어 있는 감상입니다. 그럼 심신 작용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대종사님 따님인 박길선님 것입니다.
짧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기사 6월 4일. 주야 24시간 6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공부하고 3시간은
밥 먹고 7시간은 놀았습니다. 지출금 30전. 처리건.
금일은 오후에 일기 감정과 염불을 마치고 나니, 전일 보다 정신 기운이
몽롱한 것 같다. 나는 밖에 나가 소창도 하고 운동도 하며 쉬었다.
그러자 조그만 감각 하나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그 감각을 기재할까
하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앉아서 쓰려고 붓을 잡으니, 또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깜깜하여 지므로 글씨를 쓸 수 없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때에 억지고 글씨를 쓴다면 정신이 더욱 어두워질 것이며 심하면 병이
날 것입니다. 병이 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중지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좋은 내일 쓰려고 놀기를
결정하였습니다. 또 한 번 생각을 하니 여기서 노는 것 보다는 집에서
어머님 일을 조력할까 하여 분만히 귀가 하였습니다. 가보니 과연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가는 길로 빨래를 하였습니다. 많은 빨래를 혼자 하는
거에 정신과 육체는 어느덧 빨래하는 곳으로 모였습니다.
만일 논다고 회관에서 하는 것 없이 놀았으면 같은 시간이지만 해 놓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는 머리에 그 낭유 시간을
– 낭유라는 것은 놀고 먹는 것이죠? 하는 일 없이 노는 시간 –
이용하여 빨래를 하는 나의 마음은 상쾌한 마음이 났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심신 작용을 썼습니다. 대종사님은 시간 갑, 처리 갑,
습자 갑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까닭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들어옵니다. 대종사님은 박람회에 갔다 와서 소감, 금강산 갔다 와서
소감, 애들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소감. 누가 묻는 것을 보고 감각 감상.
이런 것에서 우리 법문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 무궁한 묘리와 보물과 조화가 갖추어져 있기
대문에 까닭 있게 한다면 여러분 안의 공적 영지가 그대로 단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전을 여러분이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점검을
받아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단회 때 이야기도 하고 카페에 글을 올려서 공유하기도
하고, 아까 밤 먹는 것 하나 듣고 느끼신 것이 있잖아요? 이렇게 공유를
해서 회화를 하는 것입니다. 좋죠? 하시려면 하시고 말려면 하시고..
질문 받겠습니다.
n 질문과 답변 =========================================
Q_류현진 : 일기법을 상시와 정기로 나누어서 제시해 주셨는데 정기
일기법은 선원에서 훈련 받는 것이고 작업 시간 수와 수입 지출을
기재하도록 하였는데 상시 일기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상시 일기와 정기 일기로 굳이 나누어서 하는 게 좋을지요?
A_교무님 : 처음부터 수입 지출 해라 하면 쓰겠어요? 정기 일기로 단련
시키고 그것이 좋으면 네가 상시에 갔다 쓰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내 놓으면 다 도망가 버리죠..
처음에 정기 훈련으로 이것을 길을 들이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우리가
살면서 내가 하루를 살면서 내가 밥 먹는 시간 허송 시간 알뜰한 시간
등을 기재해 본 적이 없잖아요? 정기 훈련에 가서 기재하면서 하루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재수생이 일년 재수해봤자 시간 얼마 안 됩니다. 우리 일생도
똑같습니다. 우리 일생이 긴 것 같지만 시간 기재해 보면 공부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정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타이핑: 김혜민
편 집: 김정원
950518_화공_56_제3 수행편_제6장_일기법.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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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마음공부방 ◆
950518_화공_56_제3 수행편_제6장_일기법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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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05 08:5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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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일기법에 대해서 막연함이 있었는데 이제 제대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런데 동영상이 중지되어서 아쉽고 게으른 자신을 책망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