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다.
돌아오는 길에 잡생각이 많다.
현석이를 볼까, 동주를 볼까, 준환이를 볼까, 영국이나 동귀를 볼까?
어머니께 갈까?
교장 동기 선후배들도 예전같으면 차 한잔 하자고 하거나
차 한잔 사 달라고도 했을 것이다.
헛생각 탓인지 영암가는 고속도로를 잊고 해룡교차로까지 진행한다.
순천만 정원을 지나 벌교로 오는 길에 용두 마을 앞에서
송산쪽으로 길을 바꾼다.
송산분교장은 초등학교로 되어 어떻게 변했을까?
위상이 바뀌고 건물 모양이 바뀐 것을 보러가는가?
난, 최낙영 선생이 생각 나 그 학교를 한참동안 돌았다.
권력이나 명예를 지니지 않으면서 그 속성을 잘 아는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그 분은 내가 신팔우 선생의 권유로 불법으로 중간에 동강으로 옮겨간 것을
몇 차례 비난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은 시를 쓰고, 좋은 글을 옮겨 적고
남보다 먼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남을 도와주기도 한 그 분은
아프고 아프시다가 외롭게 돌아가셨다.
아니 입양한 딸이 보내 준 카나리아가 곁에 있었다. 의사 아들놈의 며느리도 자주 온다고는 했는데,
괜히 나한테 자랑하려고 한지도 모른다.
내가 그 분을 마지막 만날 무렵엔
그 분은 3층 계단을 내려와 우편물 가져가기도 힘겨워하는 좁은 방에서 혼자 계셨다.
그 분이 여기 송산초에 근무할 때가 언제였을까?
예전 모습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 분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에 없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간 한 사람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무지개학교 라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붙인 현판보다 컬러플한 표지판을 본다.
학교로 돌아가는 입구에 둥근 돌 위 나무가 연푸른 싹을 틔우고 그 가운데 정자가 있다.
사람의 흔적은 없다. 계절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