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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터널을 지나다] ― 그리고 물길 따라 걷는 한적한 구 도로
* [장성터널 ― 불안하고 불편한 터널 길] ☞
식사를 하고 난 후, 장성읍에서 다리[협심1교]를 건너 다시 큰 길로 나와서, 오후 종주에 들어갔다. 다시 큰 다리[장성교]를 건너니, 직진하는 도로 앞에 검은 아가리를 벌린 ‘장성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어두운 터널 길,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했다. 터널 안은 차들이 쌩쌩 오가는 곳, 터널의 가장자리 좁은 보도를 따라 걸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불쾌했다. 질주하는 차량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터널 길이는 약 1km 정도인데, 지나고 나니 대명천지, 가슴이 뻥 뚫렸다. 그런데 터널을 나와 돌아보니 터널 앞에 ‘터널 통행 금지’의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위반 시에는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길이 있어 지나왔지만 꽁무니가 당겼다.
도로가 터널로 이어져 있어 그대로 들어선 것이었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터널 입구 장성교 다리 아래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도로가 있었는데 사실 그 길을 따라갔어야 하는데, 무심코 가다보니 터널길로 들어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편법의 지름길을 지나온 것이다. 비록 멀더라도 정도(正道)를 가야 하는 것인데 … 자반이축(自反而縮)! 모두 무사히 지나왔지만 반성할 여지가 있다.
장성교 다리 아래의 강과 도로(이 길이 돌아서 구문소 네거리에서 장성터널에서 나가는 길과 만난다)
* [장성터널 ― 구문소동 네거리] ☞
돌이켜 보면, 터널로 들어오기 전 다리[장성교] 물길을 따라 굽이쳐 돌아가는 도로가 있었다. 그것이 낙동강을 종주하는 우리가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이었다. 이른바 '비와야절벽로'이다. 실제로 그 강가에 비가 와야 물이 떨어지는 절벽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연화폭포인데 평상시에 마른 바위절벽이 비가 오면 폭포수가 쏟아져 '비와야절벽'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비와야절벽로'는 반원을 그리며 물길을 따라오는 도로이다. 그길로 가면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와야 한다. … 그 강물과 함께 도로를 따라 돌아나오면 바로 주민복지센터와 태백중학교가 있는 ‘구문소동’이다. 구문소동을 경유하여 온 길은 ‘구문소동 사거리’에서 우리가 지나온 직선의 터널 길과 만난다.
장성터널을 지나온 31번 도로는 그대로 직진한다. … 우리는 네거리에서 직진하지 않고, 물길을 따라가는 오른쪽 구 도로를 택하여 걸었다. 차들이 다니지 않는 쾌적한 길이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어제 내린 폭우에 절개지 절벽에서 토사가 쏟아져 내린곳도 있었다, 아직도 도로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올 때는 위험한 길목이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났다. 그리고 묵묵히 한참을 걸었다.
다시 31번 도로와 만났다. 여기서 31번 도로는 낙동강 물길을 떠나, 오른 쪽으로 90도 방향을 바꾸어 터널로 들어간다. 새로 난 ‘태백터널’이다. 이 도로는 청옥산 아래로 난 몇 개의 터널을 거쳐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봉화읍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 [구문소동 네거리 ― 강따라 우회하는 길(구도로)] ☞
우리는 물길을 따라 직진하는 구 도로를 따라 걷는다. 한참을 내려오니 왼쪽으로 다리 건너 저만큼 날렵한 건물이 보인다. ‘태백산 고생대 자연사박물관’이다. 그리고 길을 따라 내려오면 강가 절벽 위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지킴이 처럼 서 있다. 강물과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나무테크 전망대이다. 그 아래 급하게 쏟아져 내리는 강물이 ‘구문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장대한 소나무 ‘전망대’ 아래, 바위를 타고 허옇게 포말을 내며 흐르는 물살이 거세다. 강물은 절벽에 뚫린 굴[穿川窟]-구문소로 굽이쳐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세찬 물살, 그 풍경이 장관이다.
태백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
* [고생대의 신비, ‘구문소’] ― 낙동강 본류(황지천)에 철암천이 합류하는 곳
* ['구문소'의 이름 ― 석회동굴이 지면에 노출된 동공(洞空)] ☞
‘구문’은 ‘구멍’ 혹은 ‘굴’의 고어이며 “굴이 있는 소(沼), 구멍소”라는 뜻이다. ‘구문소’는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穿川]’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문소 안쪽에 있는 마을을 ‘구무안’[穴內村]이라 하는 것을 보면 ‘구문소’는 ‘구멍소(沼)’를 뜻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도 등의 문헌에는 ‘천천(穿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문소는 석회동굴이 지표에 노출된 공동(空洞, 구멍)으로서 그 공동 사이로 황지천이 소용돌이쳐 흐르며 소(沼)를 이루고 그 아래에서 철암천이 합류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하천 상류에서 관찰되는 감입곡류 하천의 성장과 석회암의 용식작용이 함께 작용하여 형성시킨 매우 사례가 드문 지형이다.
절벽의 바위를 뚫고 흐르는 황지천과 구문소
* ['구문소'의 전설 ― 황지천의 백룡과 철암천의 청룡] ☞
구문소는, 황지천이 태백 황지(黃池)에서 20㎞ 정도 흘러온 지점이다. 사람의 힘으로 계산하기도 힘든 오랜 시간을 강물의 힘으로 석회암 암벽을 깎아 내린 자연현상이라고 하지만, 청룡과 백룡이 힘을 겨루다 백룡이 절벽에 구멍을 내어 승리하였다는 전설의 이야기가 더욱 실감 있게 다가온다.
‘옛날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에는 석벽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철암천이 큰 소(沼)를 이루어 그 소에 청룡이 살고 있었고, 서쪽에는 황지천이 큰 소를 이루고 그 소에 백룡이 살았다. 두 용이 서로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항상 다투었다. 매일 석벽 꼭대기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항상 뇌성이 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였다.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어느 날 황지천의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 위에서 싸우다 내려와 석벽의 밑에 구멍을 뚫어서 공격을 하여 마침내 청룡을 물리치고 그 여세로 승천을 하였다.’는 것이다. 백룡이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이 ‘용우이 산’이인데, 구문소 앞에 솟은 산이다.
구문소 ; 어제보다 물이 많이 맑아졌다
* ['구문소' 동굴 암벽의 각자 ― ‘五福洞天自開門’] ☞
구문소에는 자개문(自開門)이라는 굴[石門]이 있고 그 위에는 자개루(自開樓)라는 정자가 있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예로부터 뛰어난 비경을 이룬다. 구문소 석문의 바위 아래쪽에 ‘五福洞天自開門’(오복동천자개문)이라는 글자가 행서(行書)로 새겨져 있다. 길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굴의 위쪽에서 가까이 가 보아야 한다. ‘오복동천(五福洞天)’은 지금의 태백시 황지에 해당한다. 정감록에 ‘낙동강 최상류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에 한 석문(石門)이 있는데, 스스로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에 닫힌다. 문 안을 들어서면 흉년과 병화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이상향의 땅이 나타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자시(子時)에 석문이 열린다고 하여 자개문(自開門)이다.
‘五福洞天自開門’ 행서 각자 [자료 사진]
* [철암천의 유입 ― 철암천의 발원과 경로] ☞
황지천(낙동강)은 구문소 아래에서 ‘철암천’이 유입된다. 낙동강의 수량이 많이 불어났다. 철암천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산곡에서 발원하여 동백산역-백산역-철암역을 경유하여 구문소로 흘러내려오는 지천이다.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동해시로 가는 영동선은 여기 동점역(구문소)에서 철암역-백산역-동백산역(또아리굴)을 지나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큰 산맥[낙동정맥]을 넘고 통리역-도계역을 경유하여 동해에 이른다. 통리에서 동해선을 따라 삼척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물길이 바로 도계천-오십천이다.
* [동점역에서 도(道) 경계까지] ― 강원도를 지나 경상북도로 넘어가는 …
* [호젓한 낙동강 물길 ― 좌우의 거대한 청산들이 옹위하는] ☞
☆… 동점역(銅店驛) 앞을 지났다. 동점역은 폐역인 듯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평상시에도 역무원이 없는 역이다. 오늘은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다. 사실 이번 2~3일 동안 내린 폭우로 영동선이 전면 운행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강을 따라 이어지는 구 도로이다.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태백과 봉화로 통행하는 차들은 새로 난 자동차 전용도로[31번 도로]가 생겨 거의 모든 차들이 그 도로를 이용한다.
여기는 지금, 호젓한 낙동강 물길이다. 철암천이 합류한 낙동강은 더욱 수량이 풍부하고 강폭도 넓어져 장엄한 풍경을 보여준다. 산 높고 골이 깊은 협곡이다. 좌우의 거대한 청산들이 옹위하는 가운데, 강물은 그 장대한 계곡 사이로 도도한 남행을 하고 있었다. 도로와 철로도 나란히 이어진다. 강과 철로와 도로가 나란히 산곡을 돌아나간다. 어떤이는 이를 삼태극의 형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잔쯕 흐린 하늘에서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빗줄기가 심하지 않으니 그냥 비를 맞는 것이 좋다. 간간히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정겹고 상쾌하다. 날씨가 쨍하여 한여름 따가운 불화살을 맞는다고 생각하면, 부드러운 빗줄기는 오히려 하늘의 은총이다.
동점역에서 철암역으로 가는 철로
* [갈래의 물이 모여 한 몸이 되는 강] ― 호연지기를 꿈꾸며 …
* [그냥 한 몸이 되어 흐르는 강물 ― 사람의 길을 생각하다] ☞
철암천을 비롯한 작은 지천들이 합류한 낙동강은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흐른다. 물은 몸을 섞으면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사람처럼 출신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다 같은 물이다. 물성(物性)이 같으므로 만나면 그냥 하나의 물일 뿐이다. 어디에서 흘러 들어오든 몸을 섞으면 하나의 강물이 된다. 어디 낙동강뿐인가. 세상의 모든 대하 장강이 다 그렇게 한 몸이 되어 흐른다, 그리고 바다에 들면 전 지구적인 하나의 바다[大洋]가 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본성(本性)도 이와 같다. ‘사람은 착하다’는 본성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 착한 본성으로 살면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이 된다. 한마음이 된 세상은 대동사회의 따뜻한 세상이다. 개인주의적인 문명 이전의 사람들은 이러한 순수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정권은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사람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니, 참 딱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사람이 순정한 본성(本性)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참다운 마음을 망실(亡失)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수양(修養)의 문제이다.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 살다가, 하늘이 준 참다운 마음[本性]을 잃었을 뿐이다. 맹자(孟子)는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求放心]을 수신의 근본이라고 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파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인간의 본성(本性)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은 누구에게나 다 같이 주어진 것으로 '스스로 행복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는 마음'이다. 『중용』에서 이를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그 ‘본래의 마음[本性]’을 흔들림 없이[不動心] 유지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정성이다. 퇴계 선생은 평생 늘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사셨다. 하늘이 준 참다운 본성으로 매사 정성을 다하셨다.
* [푸른 산 맑은 물 ― 물길을 따라가는 호젓한 길] ☞
☆… 동점역을 지나고 나니 운행하는 차들도 뜸하다. 문득 적막한 가운데 산천의 경계(景界)를 보니, 좌우에 높이 솟은 산들이, 조용히 걷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좌우의 솟은 푸른 산들이 흐르는 강물을 옹위하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청산은 싱그럽고 강물은 청랑하다. … 대원들 사이의 간격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내가 많이 앞서서 걷고 있었다. 물굽이 산굽이를 돌아가면 앞뒤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걷는 길이다.
* [혼자서 걷는 길 ― 세월 속에 나는 많이 아팠다] ☞
결국 인생은 혼자서 가는 길이다. 흐르는 것은 강물이요, 강물을 따라 걷는 나 또한 흐르고 있다. … 고독한 하나의 존재(存在), 호젓하다 못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적요(寂寥)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겨 놓는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인간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고독(孤獨)은 순정한 사유의 세계를 만든다. 논리적인 고리나 시간적인 선후가 없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무작위(無作爲)의 사유(思惟)다. 70 생애를 살아온 나의 역정(歷程)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시인 윤동주의 독백처럼 ‘나는 무엇을 바라 지금까지 살아왔던가.’ 막연하지만 마음속에서 불쑥 울려 나오는 질문이다.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목숨의 시간,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 세월 속에서 나는 많이 아팠다.
… 길은 멀고 길었다. 외롭게 걷고 있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청산(靑山)이 주는 싱그러운 정기가 온몸을 감싸고, 도도하게 흐르는 맑은 물줄기가 나에게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흐르는 강물은 살아있는 자연의 몸짓이요 그 청랑한 물소리는 대자연의 음악이다.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묵직하게 느껴지는 대지의 질감이 온몸을 뿌듯하게 한다. 다리에 힘이 생기는 현상이라고 자위하면서 걷는다.
* [영동선 철길 건널목 소공원 ― 뒤에 오는 대원들을 기다리며] ☞
☆… 영동선 철길이 지나가는 건널목,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널목을 지나면 작은 공원이 있다. 여전히 강물은 왼쪽 절벽 아래에서 흐른다. 건널목 작은 초소 건물 안에 근무자가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태백에서 출행한 이래, 길목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길을 물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역)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경상북도 봉화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비에 젖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렸다. 내 스스로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너무 빨리 온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길 위에 석포와 봉화를 가름하는 이정표가 걸려 있다. 한참을 기다렸다. 이상배 대장이 오고 기원섭 대원이 도착했다.
*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갈림길] ― 석포로 가는 길
☆… 건널목 공원에서 세 사람이 합류하여 걷기 시작했다. 공원을 지나고 나니 바로 갈림길이다. 여기가 강원도(태백시 동점동)와 경상북도(봉화군 석포면 석포리)의 경계지점이다. 태백 방향으로 강원도를 안내하는 이정표와 관광안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진행하는 방향은 오른쪽[서쪽]으로 가면 봉화읍으로 가고, 다리를 건너 직진[남쪽]하면 석포로 가는 길(910번 지방도로)이다.
석포로 가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 낙동강이 가로질러가니 이제 강은 우리가 가는 길 오른쪽에서 흐른다. 보도가 따로 없는 팍팍한 아스팔트 길 가장 자리를 걷는다. 석포 가는 길, 그 아랫길 오른쪽에서 다리[대현교]를 건너면 ‘육송정 삼거리’, 이곳에는 태백산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병오천(백천계곡)이 송정리천에 유입하여 낙동강에 합류하는 곳이다. 강은 내가 가는 길과 많이 떨어져 있고 길 주변에는 집들이 있고 밭이 있다.
도(道) 경계를 넘어오다
갈림길(직진하면 석포, 오른 쪽 길은 소천-봉화읍으로 가는 길)
◇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병오천-백천계곡] ☞
백두대간 태백산 남쪽에서 흐르는 봉화 대현리 계곡의 물은 맑고 차다. 태백산에서 봉화 석포면 대현리를 거쳐 현달사 앞으로 흐르는 골짜기가 병오천-백천계곡이다. 수온이 낮아 백천계곡은 세계 최남단 열목어(熱目魚) 서식지(천연기념물 제74호)로 유명하다. 한여름 수온이 20도 이하인데다 용존산소량도 풍부한 덕분이다. 봄과 초여름 사이 산란하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열목어 떼는 장관을 이룬다. 병오천은 송정리천에 합류하여 이곳 도 경계 아래에서 낙동강에 유입된다.
* [낙동강 다리 아래 ―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 도로의 한 굽이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느닷없이 쌩쌩 질주해 오는 차들이 산천의 고요를 깬다. 도로는 일전의 폭우로 인해 물이 고인 곳도 있고 흙이 질척거리는 곳도 있었다. 강은 저만큼 멀어져 흘러가고 딱히 마음에 감겨드는 정감이 없는 노정이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묵묵히 걷고 걷는다. 눈 앞에 쫙 뻗어있는 직로(直路)의 길을 걷는다. 멀리서 보이던 다리,
한참을 걸어서 난간도 없는 콘크리트 다리[상황교]가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물이 맑고 넘실거려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신선한 낙동강 물이다. 내려가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등산용 스카프를 빨아 목과 얼굴을 닦았다. 물은 차고 깨끗했다. 내 몸이 처음으로 낙동강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뒤에 오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 망중한의 시간이다. 완만하게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옛날 성현께서도 저 강물을 보고 “물이여! 물이여!” 하고 깊이 탄식을 하셨다.
멀리 떨어져 오던 이상배 대장과 기원섭 대원이 다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앞세우고 걷는다. 오른쪽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2차선 도로의 가장자리를 걷는다. 길에도 사람이 없고 간간이 지나가는 노변의 집에도 인기척이 없다. 가끔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이 가속도를 붙인다. 팍팍한 여정이다.
* [910번 지방도로 갈림길(이정표) ― 오후의 맑은 햇살이 든 산천의 풍경]
☆… 오후 5시 46분, 삼척으로 가는 910번 지방도로 갈림길을 지났다. 갈림길을 지나 강줄기는 크게 휘어지면서 직선의 도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오늘의 목적지 ‘석포’는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 묵묵히 마음을 다스리며 걷는다.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친다. 해는 이미 강 건너 서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크게 휘어져 내려오는 도로와 강줄기가 시원하고 싱그럽게 보인다. 비온 뒤, 오후의 맑은 햇살을 받아 강 주변의 청산이 정결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낙동강
갈림길의 이정표 (좌측 도계-삼척으로 가는 910번 도로, 직진하면 석포)
뒤돌아 본 풍경(오후의 맑은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 [석포역 원경 ― 영풍아연 석포제련소]
☆… 오후 6시 정각, 한 구비의 길을 돌아나가니, 긴 공장 건물과 그 뒤쪽으로 수증기인 듯한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영동선 석포(역)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제련소’가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낙동강 상류의 협곡에 자리 잡은 영풍아연 석포제련소.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가는 그 바로 안쪽에 거대한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렇게 청정한 낙동강 상류에 이러한 거대한 공장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금반 ‘낙동강 종주 대장정’, 오늘 여기에 오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1970년에 설립된 영풍 석포제련소는 연 매출 1조 4000억 원의 아연을 생산한다. 생산량 국내 1위, 세계 4위의 비철금속 제련업체다. 이상배 대장의 말에 의하면, '여기 제련소에서 생산되는 아연이 아니면 포항제철을 비롯한 국내의 철광·자동차 산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기간산업 시설'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아연이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이었다.
☆… 한여름 지친 해가 서산에 기울어지는 이 시각, 긴 여정 지친 길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굴뚝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색(白色)의 연기였다. 언뜻 깨끗한 수증기처럼 보이는 저 하얀 연기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
알고 보니, 낙동강 상류의 청정지역에 위치한 이 공장은 일찍이 낙동강과 그 유역의 수질·대기·토양 오염을 유발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 청정하고 맑은 황지천-낙동강이 겨우 여기에 와서 인간이 배출해 내는 독소를 머금고 속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공장에서 배출하는 가스나 배출수가 낙동강 수역과 그 주변의 모든 생명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오염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석포 인근 주민들의 각종 질환, 농작물 피해, 낙동강 상수원 오염, 산림의 고갈 등 환경단체의 보고와 언론의 보도가 끊이질 않았다. 그 동안 제기된 내용은 매우 심각하다. 내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이라면 정부적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석포, 시골 면소재지 풍경 ― 오늘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다]
☆… 오후 6시 30분, 모든 대원이 석포(石浦)에 도착했다. 우리들이 석포에 막 도착하는 시간에 이진애, 김옥련 대원이 태백에서 차를 몰고왔다. 석포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시골 면소재지이다. 마을 중심도로가 1차선인데 그 좌우에 학교, 교회, 음식점, 다방, 이발관, 미용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동네 안쪽 깊숙이 들어가 '강변민박'에 숙소를 정하고, ‘오메가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산간 오지의 마을, 영풍제련소가 지역경제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석포에는 두 개의 지천(支川)이 낙동강에 합류해 들어온다. 그 하나는 석포 동북쪽에서 낙동정맥의 면산-민등산 사이의 계곡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석개천’이고, 또 하나는 동쪽에서 낙동정맥의 울진 민등산-백병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들어오는 ‘석포리천’이다.
☆… 오늘 예정한 낙동강 종주 태백시 황지에서 경상북도 석포까지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오늘은 대장정 제1구간 ‘태백시 영역’을 완전히 주파하고, 경상북도 최북단의 봉화군(석포역)에 진입했다. 장장 27.4km를 걸었다. 다리가 무겁고 몸은 지쳤지만 건강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