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씨는 세상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밝혀낸 이 신경 시스템을 독일어 약자로 ‘KSNS’라고 이름붙였다. 맨 앞의 ‘K’는 한국 사람 김씨(Koreaner Kim)를 의미하고 ‘SNS’는 안전보호 신경 시스템을 뜻한다. 그는 자신이 명명한 KSNS에 대해 기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치를 보이자 이렇게 설명했다. 무릎을 망치로 두드리면 다리가 저절로 튀어오르는 무릎반사신경의 경우 두뇌의 인지나 명령에 의해서 반응하지 않듯이 KSNS 또한 두뇌의 인식 체계와는 관계없이 조건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해봅시다. 맨 처음 사용되는 발의 근육부터 순서대로 그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두뇌는 단지 앞으로 걸어가라는 명령만 의식했지, 순서대로 어느 어느 근육을 움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KSNS에 의해 우리 몸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무의식 속에서 근육이 통제되고 조절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론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현실 세계에서 적용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법이다. 그의 의술론이 실제로 인체 건강에 어떻게 유효하게 쓰이고 있을까.
-KSNS 의술론을 환자의 질병 치료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독일에서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디스크, 허리통증, 관절염 등을 오랫동안 앓거나 천식, 축농증, 알레르기, 두통 등 원인이 발견되지 않은 신경계통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은 난치성 환자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단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KSNS가 고장난 바람에 적절한 통제와 조절이 이뤄지지 않아 생기는 병이에요. 예를 들어 무릎 관절염 환자의 경우 한쪽 무릎 관절이 심하게 마모돼 있는데, 이는 근육에 작용되는 힘이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고 근본적으로는 좌우 대칭을 이루도록 몸의 무게중심을 조절하는 KSNS에 이상이 생긴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저는 KSNS의 이상이 생긴 부분을 손으로 자극해 환자 스스로 몸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자신의 의술을 직접 시연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친지 집으로 지인을 부르더니 다리를 편하게 뻗으라고 하면서 간단한 손동작으로 몇 군데 포인트(KSNS 신경 시스템을 활성화해주는 지점)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진단과 치료가 끝났다고 했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시연을 받은 사람은 하체가 막힌 곳 없이 아주 시원한 듯하고 온몸이 날아갈 듯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의술은 독일의 유명 건강잡지(‘NEUE Gesundheit’ ‘Goldene Gesundheit’ 등)에 특집으로 소개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의술을 체험한 독일인들은 그를 ‘놀라운 치료사’라고 부른다. 오랜 세월 앓아온 통증을 아주 짧은 시간에 해소해주는 그의 손을 가리켜 ‘신의 손’이니 ‘마법의 손’이니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의 의술은 미국에까지 소문이 나 내과 의사와 방사선과 의사가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에 찾아올 정도다.
인생의 전환점
-독일에서는 KSNS 의술을 제도권 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까.
“독일의 유명 병원 원장이자 심장병 전문의인 프리벨 베트부어(Frivel Bettburg) 교수가 저와 함께 KSNS 이론을 의학의 영역으로 체계화하고자 작업을 했습니다. 프리벨 교수는 원래 허리 디스크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저를 만나 치료를 받은 후 두 발로 걸어서 다닐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의술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신뢰했는데 1년여 전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독일 교수들이 저의 의술을 책자로 내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 의술을 독일의 의술이 아닌 한국의 의술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의술명에도 코리안 김이라는 뜻으로 ‘K’를 붙였고, 한글로 제 의술 이론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부룩한 턱밑 수염이 인상적인 그를 찬찬히 살펴보니 외길에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들 특유의 눈빛이 강렬히 빛나고 있었다. 대개 이런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이 180도로 바뀌는 경험을 하고 참다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코스를 겪게 마련이다. 문득 그의 이력이 궁금했다.
-원래부터 독일에서 의술을 익혔습니까.
“아니오, 저는 기계공학자 집안 출신이고 독일에서 제 전공도 그쪽이었습니다. 일본에서 공학을 전공하신 선친의 가업을 이어 제 형님(김준연)이 한국에서 꽤 규모가 있는 기계공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지요. 형님이 독일에서 공과대를 졸업한 인연으로 저 또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독일로 날아가 기술연구생 자격으로 독일의 선진 기계공학을 익혔습니다. 그때 제가 개발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형님이 돌아가신 뒤 집안 사정으로 기계공학과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몇 년 동안 아내한테 빌붙어 허송세월을 했지요. 그때가 1980년대 초반입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겪은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김세연씨는 부인(김인순) 덕분에 자신이 의술에 눈뜨게 됐다고 밝힌다. 그의 부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피부미용을 전공했고, 현재 독일 쾰른에서 규모가 큰 피부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첫댓글 코리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