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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방법(빌4:6-7)-2015.11.8.
사람에게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마음과 생각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내 안에 있는 지체의 일부지만 내 마음대로 안됩니다. 솔직히 내 마음 나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제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자기 스스로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직한 자일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데일 카네기는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가난도 질병도 아닌 당신의 생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운명까지 결정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만사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는 자기를 강조하는 말이요, 또 하나는 마음을 강조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른바 자기 마음은 자기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내가 조절할 수 있던가요? 그럴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지만, 자기 마음이라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솔직히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범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악을 행할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수없이 경험하며 가슴아파하는 일들이잖습니까? 정말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육신이 연약하여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자기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과 생각은 지켜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무방비상태로 살수는 없습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을 장악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전쟁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격을 담고 있는 좌소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소유하시기 원하십니다. 물론 사단도 우리 마음을 도적질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적전쟁을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전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마음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의 자녀요, 마음의 주인이 사단이라면 사단의 종일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도 있고 영의 생각도 있습니다(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으로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생각이요, 영의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각입니다.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사55:8).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충돌합니다.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차단하고,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의 생각을 차단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만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산다할지라도 육신의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라도 싸우는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져 하늘장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영적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영적 전쟁에서 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 긴장을 늦추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내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과 생각을 자기 스스로 다스리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하지만 절대 안되는 것이 마음과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세상의 온갖 오물들로 가득 찬 쓰레기하치장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틈만 나면 내 마음과 생각을 타고 들어와 장난을 칩니다. 틈만 보이면 마귀는 마음을 도적질합니다. 때문에 자기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마음과 생각을 내가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지키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성전삼고 내안에 계신 주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지킴이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의 마음이 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마음 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육신의 생각을 차단해야 합니다(6절상)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려면 가장 먼저 육신의 생각을 차단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 육신의 생명에 온갖 지저분하고 더러운 생각을 집어넣고, 더러운 마음을 품게 합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염려입니다. 염려는 마귀가 우리 마음을 무너뜨리고 생각을 파괴하는 무기입니다. 사람은 염려를 통해서 마음이 병들고, 생각이 붕괴되며 고통을 당합니다. 때문에 염려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염려는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염려가 장차 일어날 확률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일어나지도 않을 염려와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병들게 합니다. 영육간의 손상을 입힙니다. 염려는 육신을 상하게 할뿐 아니라, 영을 파괴하는 악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염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염려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6장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를 입은 우리 인간에게 어찌 염려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주님이 우리의 상태를 모르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염려가 내안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차단하라는 것입니다. 감히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를 무슨 수로 우리가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일은 내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비록 내 마음과 생각을 타고 침투하는 염려가 내 영혼을 도적질하고 파괴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내 마음과 생각을 공격하는 악한 바이러스요, 내 영혼을 파괴하는 암 덩어리입니다. 사실 모든 염려는 탐욕이 불러오는 부산물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삶과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합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염려를 부추깁니다. 염려는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탐욕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차단해야 합니다. 육신의 마음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결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원수요, 기도의 방해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염려를 예수의 이름으로 차단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니까? 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직접 사망한 인원보다 간접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가족을 전쟁터로 보낸 후에 걱정과 근심으로 인해 사망한자가 전쟁터에서 죽은 인원보다 훨씬 더 많다는 통계를 아십니까? 그만큼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육신을 공격하는 모든 염려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차단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6절중)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먼저 육신의 생각을 차단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내가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누리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기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면 하나님이 내안에서 내 마음을 만지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게 됩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시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주안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서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주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믿음도 없으면서 주여 삼창한 후에 소나무 뿌리를 흔들면 뽑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하면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오직 내가 하나님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이 되면 하나님이 내안에서 기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그분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생수를 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수가 우리 안에 부어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지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내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통째로 기억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안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나 경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안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안되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일에 집중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이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한 마음 되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만 그분과 한 마음이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이 주시는 생명을 얻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일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름대로 경건의 훈련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경건의 훈련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누리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실재를 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자라는 것이 정상입니다. 특별히 영적 생명은 더 풍성히 자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3)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소유해야 합니다(7절)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실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영적 소경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듣지 못하는 답답함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답답하면 불안하고 마음의 평강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을 할지라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마음의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내적 평강이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은혜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은혜의 결과는 동일합니다. 내적평강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도 아니요, 입는 것도 아니며 마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무엇일까요? 내적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평강을 도적질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희락도 없으며 평강이 없다면 당신의 구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세상의 것으로 불안해하고 평화하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지금 누리는 천국입니다. 죽은 다음에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이라고만 말하지 마십시오. 마치 천국을 죽음이후에 보상받게 되는 보험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가 천국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천국은 소설 같은 이야기에 불과할는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천국 되어 살아야 합니다. 지금 천국 되어 사는 것은 나를 성전 삼고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요, 그분의 마음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이 새 언약이 복음이고, 이 새 언약을 믿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 복음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솔직히 당신의 마음에 아직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자가 하나님의 평강을 유지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의 마음 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소유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것이 평강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 내안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다. 내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 주님의 마음 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심지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내가 잘 드리겠다고 다짐을 하고 맹세를 하지만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겠다고 다짐하지만 말고, 오직 내가 하나님의 마음 되는 일에 집중하시면 우리 예배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어 진 줄로 믿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이해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올 때 잠을 자야지하면서 아무리 다짐을 해도 오히려 잠은 오지 않고 눈만 더 말똥말똥해지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잠을 자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제가 처방전을 하나 알려 드릴까요? 영적수면제를 드십시오. 여러분의 수면제는 성경책이 아닐까요? 차라리 성경책을 보시면 잠이 올 것입니다. 잠이 안와서 성경을 계속 보면 은혜요, 성경 보다가 잠을 자면 성공한 것 아닙니까? 웃자고 드린 말씀입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 마음이나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되면 그분의 은혜로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 되어 사는 일이요, 주님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 안에 새 언약의 복음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다. 새 언약의 복음은 하나님이 맹세로 약속하신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과 한 생명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성전 삼으신 주님이 성전의 머리가 되시고, 나는 그분의 몸이 되어 살게 해주신다는 것이 새 언약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고, 천국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그분이 주시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한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천국 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 마음과 생각은 지켜질 것입니다. 할렐루야!!!(20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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